메인화면으로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이명박 시대, 기억해야 할 죽음들] 미등록 이주노동자

노무현 정부 5년의 기록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타살의 기록이 빠져선 안 된다. 잠시 언론에 알려졌던 그 이름들이 지금은 많이 잊혀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들의 영혼은 아직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죽음

2003년 10월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이 예고되면서 그 직후인 11월, 12월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죽음이 잇따랐다. 스리랑카 출신 다르카 씨는 단속의 공포 때문에 지하철 선로에 투신했고, 그 무렵 방글라데시 출신 비꾸 씨는 일하던 공장에서 목을 맸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씨는 맨 손으로 어쩔 수 없이 귀향선을 탔지만 비관 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브르혼 씨도 인천의 한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조합원인 자카리아 씨도 단속 기간 중 숨어 지내던 마석 성생공단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 인도네시아 출신 누르 푸아드 씨는 2006년 4월 단속반을 피해 이웃 건물 옥상으로 뛰어넘다가 추락해 숨졌다. 사진은 2006년 4월 30일 대학로에서 진행된 추모 콘서트 및 단속추방 중단 촉구 결의대회. ⓒ민중언론 <참세상>

이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2005년 베트남 노동자 응웬 치쿠에트 씨는 공장에 들어 온 낯선 사람들을 단속반으로 오인해 다급히 몸을 피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2006년 2월에는 터키 노동자 쿠스쿤 셀림이 수원출입국사무소 외국인 보호실 창문에서 투신해 목숨을 잃었고, 급기야 4월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누르 푸아드 씨가 공장으로 급습한 단속반을 피해 이웃 건물 옥상으로 뛰어넘다가 추락해 내장이 모두 파열되어 끝내 숨졌다.

죽음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정부의 단속 정책이 이들을 죽였다며 단속을 중단하지 않으면 더 큰 참사로 이어질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는 현실로 드러나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무려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범죄자도 아닌 이들에 대해 출입국측은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도주 우려'를 이유로 철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들은 2중 철창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쳤지만, 아무도 이들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끔찍하고 처참하게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강제 추방 정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막을 내리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탄압의 광기는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코스쿤 셀림 씨가 추락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셀림 씨는 6층 보호실의 깨진 유리창으로 투신했다. ⓒ민중언론 <참세상>

'세계 이주민의 날'에도 아랑곳없이 펼쳐지는 인간사냥

지난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었다. 이 날은 1990년 유엔 총회에서 모든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권리 보장을 위한 '유엔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날이다. 그러나 이 날도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단속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날들 중 하나였다.

이주노조 3인 지도부의 표적 '단속'과 강제추방, 이주노동자 단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그 시간에, 한국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 직원들과 경찰들은 단속에 여념이 없었다. 아침 7시 30분, 동두천 지역의 이주노동자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공장 지대 앞 길목을 막고 출근 길 단속이 벌어지고 있으니 인근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빨리 연락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미 이주노조의 한 조합원도 단속이 된 직후였다. 몇 시간이 지나도 이들 단속반은 그 길목을 떠나지 않았고, 이주노동자들은 집과 공장 문밖을 나설 수 없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던 시간,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광화문 정부 청사 앞 기자회견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대문 창신동의 한 이주노동자들 집에 '합동 단속반'이 쳐들어와 5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끌고 갔다는 소식이다. 아직 단속반이 이 지역을 떠나지 않았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급히 차를 타고 달려가 운 좋게(?) 단속반을 만날 수 있었다. 25인승 차량을 차도에 대놓고 단속반이 짝을 지어 여기저기서 단속한 이주노동자들을 차에 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무단 가택 침입과 적법 절차 위반을 항의하며 따져 묻자, 이들 단속반은 "불법체류자 단속하는 데 무슨 절차냐"며 우리에게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단속 차량 안 철창에 갇혀 있는 이주노조 조합원과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결국 그들을 그 자리에서 구출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소로 쫓아가 이들을 기다렸다. 서울출입국 사무소 단속 지휘자에게 유엔이 제정한 이주민의 날까지 단속을 해대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그는 "오늘이 이주민의 날입니까?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였다.

하기야, 이들에게 그런 인정(?)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연말까지 박차를 가해 인간사냥 실적을 높이는 것이 최대의 과제인 이 자들에게 '이주민의 날' 따위가 무슨 고려사항이겠는가? 출입국 단속반은 최근 교회까지 쳐들어가 이주노동자들을 잡아들이려 했고, 이 사건으로 결국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사과까지 했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또 다시 '인간사냥' 단속은 되풀이된다.
▲ 지난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민중언론 <참세상>

후안무치한 법무부

12월 13일, 정부와 법무부는 이 '인간사냥'을 방해하는 세력은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이주노조 3인 지도부 '표적' 단속과 강제 추방 집행으로 확인해 주었다. 국가인권위가 이 사건에 대해 진정을 받아 조사를 진행 중이었지만, 이것은 전혀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이 3인의 변호인단이 소송 제기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이것도 고려 사항이 되지 않았다. 이들 3인에 대한 석방 촉구 목소리가 커지고, 이주노동자들의 항의 농성까지 벌어지자 정부는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이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 기습적으로 이 3인을 추방해 버렸다. 법무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신속히 추진되었을 강제 추방 집행 과정은 '정말 이 정부 대단하구나'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다. 이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추방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맞닥뜨리자 구금된 사람들의 탈출 방지를 위해 만들어 놓은 외국인보호소 밖 경계 철창을 뜯어내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했다. 이것이 '법질서 확립'을 주창하는 대한민국 법무부, 정부의 모습이다.

그리고 정부는 내친 김에 출입국관리법 개악도 추진하고 있다. 인간사냥 단속반에게 단속 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무제한 사냥 허가증'을 발급해 주기 위해서다. 법무부가 마련한 이 개악안이 통과된다면, 이제 단속반은 거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공장이든, 길가든, 집이든 '불법체류자'라고 의심되면 언제라도 심문하고 단속할 수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한국은 피부색만으로 외국인들이 납치되듯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지는 끔찍한 인종차별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서구의 경험에서 보듯, 정부의 이런 제도는 인종주의자들이 자라날 토양과 먹이를 제공해 줄 것이다. 소규모이지만 더욱 강력한 '불법체류자 단속 추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이런 우려 역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 올해 초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영정 ⓒ민중언론 <참세상>

살아있음을 알리는 절박한 이주노동자들의 호소

이 글을 쓰는 지금,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누구보다 새로 등장할 정부에게 할 말이 많고 요구할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이지만 이들은 선거가 치러지는 기간에는 분명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다. 기득권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이주노동자 문제는 선거 운동 기간에 사람들에게 인심을 사기 위해 한 마디 내뱉으면 끝나는 그런 문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모순을 드러내 주는 집단이다. 자유로운 임노동 계약 관계조차 허락하지 않는 노예제같은 노동력 수입 제도, 인종차별적인 끔찍한 억압과 규제가 이 사회의 치부를 선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3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국 땅에서 죽어갔다. 이름이 남겨진 이들만 이 정도니,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헤아린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사실 지금 살아있는 한국의 40만 이주노동자들 중 절반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산목숨'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들과 생존의 권리는 출입국관리법상 적법한 체류 자격을 상실한 순간과 동시에 박탈된다. 집 앞과 공장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단속반 때문에 문 밖을 나서지 못하고 몇 시간이고 공포의 시간을 견뎌내기를 수 년을 지속해 온 한국 땅의 이주노동자들,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에 타 죽어간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보며 그게 자신들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충격과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살아있지만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살아있는 인간임을 알리는 길은 단속반의 '표적'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 이 야만에 맞서는 것뿐이다. 이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야만에 맞서온 이주노동자들과 그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 이주노조의 주요 활동가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해 왔고, 급기야 이주노조 지도자 3인에 대한 '표적' 단속, 뒤이은 강제 추방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놀랍게도 아직 이주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지는 살아있다. 이들의 저항 때문에 한국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적 정부라는 지탄과 항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의 저항은 한국 경제의 밑바닥을 채우며 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정부가 발본색원해 척결하려는 '불법체류자 집단'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3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농성 이후, 또 다시 지금 기독교 회관에서 15일 째 농성을 벌이며 정부에 항의하는 이주노동자들은 23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살아있는 목숨'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의 저항은 정부의 추방 정책으로 이미 이 땅에서 쫓겨난 1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과 수천 명의 죽음을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보태는 것이 죽어가는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을 그나마 되살리는 출발이 될 것이다. 이것만이 정말 유일한 희망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