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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이 모이면 합법이고, 수십명이 모이면 불법이냐"

집시법 개정 요구 빗속 야간집회, 경찰원천봉쇄로 무산

봄의 마지막을 알리는 비가 하루종일 내린 28일 오후 6시반. 서울시민의 휴식과 문화의 공간으로 올해 새롭게 마련된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빗속에도 불구하고 20명 남짓한 사람들과 수백명에 이르는 경찰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이미 전의경 차량으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어 광장 밖에서는 광장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청앞 야간집회 시도, 경찰 원천봉쇄로 무산**

20명 남짓한 사람들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되어 3월 발효된 개정 집시법에 대해 불복종을 벌이는 '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이번 개정 집시법이 상당부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회신고거부' 운동, 80데시벨 이상을 금지하고 있는 개정 집시법에 대해 집회 실제 '소음측정운동‘ 등을 벌여 왔다.

이날 행사는 개정 집시법의 독소조항 중 하나인 사실상의 야간집회금지조항에 대한 불복종 차원에서 기획됐다.

이날 행사는 오후 6시 문화제로 시작하기로 계획됐으나, 30분이 지나도록 행사는 시작 못했다. 주제준 상황실장은 "경찰들이 행사용 방송차량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이날 준비된 퍼포먼스 등 문화행사는 취소되고 방송차량 없이 오후 6시30분부터 육성 기자회견이 대신했다.

***경찰 "깃발, 구호 외치면 불법집회"**

기자회견을 막 시작할 즈음, 광장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의경 병력들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이닥쳤다. '연석회의' 측이 준비한 상징물인 '깡통탑'이 "기자회견에 어울리지 않는다", "집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철거하기 위해서다. 이내 깡통탑을 철거하려는 경찰들과 이를 '사수'하려는 연석회의 측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힘이 역부족인 상황. 10분만에 깡통탑은 무너지고, 연석회의 한 회원은 "집회시위 자유보장하라", "도대체 누가 어떤 판단을 근거로 기자회견을 막느냐"며 울부짖었다.

깡통탑을 뺏긴 채로 연석회의 측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박래군 인권활동가 등이 개정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개정될 때까지 불복종운동을 지속할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발언 중에 경찰 측은 선무방송으로 '집회해산'을 간헐적으로 종용했다.

"깃발을 든 행위는 기자회견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집회로 간주합니다. 해산하십시오."
"구호를 외치지 마십시오."

기자회견이 불법집회로 규정되는 순간이다. 이에 대해 주제준 상황실장은 "경찰은 자의적으로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규정하지 말라"며 "깃발을 내리면 기자회견이고, 깃발을 올리면 불법집회라는 판단은 도대체 누가 어떤 근거로 하는지 말해달라"며 항의했다.

***시민사회단체, "경찰의 자의적 법집행도 문제"**

연석회의 측은 개정집시법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 법집행을 하는 경찰당국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집시법 10조에는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일몰 시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야간집회가 허용된 적은 지난 탄핵무효 촛불집회를 제외하고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대규모 촛불집회의 경우 주최 측이 '문화행사'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정치적 주의주장이 담긴 발언들과, 구호, 깃발 등 집회의 성격이 다분했지만, 경찰은 어떤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석회의 측은 '수만명이 모이면 문화제, 적은 사람이 모이면 집회'라고 판단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야간집회를 봉쇄한 경찰관계자는 "현행 집시법상 야간에 2인 이상이 모여서 정치적 주의주장을 펼치면 경찰로서는 막을 수밖에 없다"며 "경찰의 법집행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말고 국회 가서 이의제기하라"고 말했다. 그는 "질서유지인을 둔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무질서해지고 주변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야간집회를 허용하기 매우 힘든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의 이런 주장에 대해 연석회의측은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지만 않으면, 집회가 무질서해지지 않는다"며 "20여명 남짓 모여서 어떤 무질서한 행동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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