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들은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야당의원들은 완력과 폭력을 동원해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국민들은 촛불 하나씩을 들고 거리에 모여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표현했다. 수십 만 명이 모였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촛불시위로 인한 마찰이나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오래갈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집회금지법이나 다름없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촛불집회가 현행법 위반이라며 정부의 단속을 독려한 신문사들 때문이다. 질서유지가 보장되면 야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한다는 집시법 조항은 모른척하고, 야간옥외집회는 불법이라고 우겨댔다. 결국 검찰은 촛불집회 주동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시민단체들은 촛불집회의 종결을 선언해야 했다.
현행 집시법은 지난해 12월 개정되었다. 16대 국회에서 집시법이 개정된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직후였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외교기관 건물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집시법을 개정해 국민들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라는 것이 헌재 결정의 취지였다.
그러나 헌재 결정 후 국회에서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국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장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회와 시위를 하기 어렵도록 법이 개정된 것이다. 갖가지 구실로 집회와 시위를 제한했고, 야간 옥외 집회도 여전히 제한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핵심적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0년 전 이 점을 분명히 선언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탄핵반대 촛불시위와 같은 정치적 집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있어서 집회의 자유는 불만과 비판 등을 공개적으로 표출케 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며, 이와 같은 자유의 향유는 민주정치의 바탕이 되는 건전한 여론표현과 여론형성의 수단인 동시에 대의기능이 약화되었을 때에 소수의견의 국정반영의 창구로서의 의미를 지님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불안만 우려해서 무조건 집회-시위를 '터부'시 할 것이 아니라 비폭력적이고 질서파괴의 것이 아니면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위축시켜서는 안될 기본권으로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신문사들의 시각은 헌법재판소와 정반대였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혼란'과 '위법'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들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촛불집회가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며 경찰의 단속을 촉구했다. 촛불시위를 제일 먼저 문제삼고 나온 것은 소위 '조중동'이었다. 그들은 수십 만 명의 국민들이 평화롭게 촛불집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려 들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촛불집회가 허용되면서, "불법강행, 탈법 방치의 무법사회로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불집회로 인해 "저녁시간 광화문 일대의 교통이 막히는 등 시민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며 출퇴근 편리함을 위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중단시키라고 요구했다. 중앙일보는 "찬성이든 반대든 탄핵과 관련된 의사를 표출하는 시위는 자제되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다른 신문들도 조중동의 장단을 따라갔다. 한국일보 사설은 "문화의 형식을 빌린 정치행위"라면서 단속을 요구했다. 문화일보도 촛불집회가 "명백한 위법행위"라면서 경찰의 대응조치가 합당하다
고 옹호했다. 국민일보 사설은 촛불집회가 "혼란의 악순환을 조장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서울신문은 "또 다른 분란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신들은 지극히 사소한 불편마저도 언론자유의 침해라고 반발하는 한국언론,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기본권을 포기하고 악법을 준수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에 대한 언론의 반인권적, 반민주적 논조를 보면서, 지금의 한국 언론이 왜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인권운동사랑방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