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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국보법 칼날에 갈라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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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국보법 칼날에 갈라진 부부

[기자의 눈]'국보법 폐지' 큰 소리치던 의원들에게

21일은 '부부의 날.' 무슨 '날'이면 기념식에 분주한 국회에서도 이날 오전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부부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경축. 제13회 세계부부의날 국회 기념식'이 열렸다.

같은 시각. 복도 건너편 의원회관 로비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개인사진전'이 열렸다. 권영길(민주노동당), 김형주(열린우리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이번 사진전에는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시우 씨의 아내 김은옥 씨가 국회의원들에게 감옥 속 남편의 '억울함'을 알리고 있었다.

'부부의 날' 갈라져 있어야 하는 한 부부
▲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부의 날 기념식. ⓒ프레시안

민통선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대인지뢰 문제를 고발하는 사진으로 유명한 이 씨는 지난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뒤 현재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 중이다.(☞관련기사보기: '칼집에 못 들어간' 국가보안법, 되살아나나) 특히 이 씨는 검거 이후 "국가보안법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죽겠다"며 단식을 해오고 있다. 21일로 33일째다.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겁이 났다. 김 씨는 "남편의 사진은 물론 글도 모두 인터넷에 공개가 돼 있는데, 뒤늦게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남편에게 씌운 혐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특히 단식하는 남편이 '잘못될까봐' 겁이 나 사진전 기자회견에서는 "남편을 살려 달라"며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김 씨는 처녀 때 다니던 직장에서 이 씨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 씨는 사진과는 거리가 먼 풍물을 가르치는 지도자였다. 노조 문화부장을 하며 이 씨를 알게 된 김 씨는 '사람이 너무 좋아'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이 씨는 분단 현실과 미군문제를 고발하는 사진작가가 됐다. 민통선 분야에서는 '전문가' 급에 속한다. '돈 안 되는' 작품 활동을 하느라 집에 돈도 많이 벌어다 주지 못했다. 처녀 적에 노조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김 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김포의 한 휴대전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한 달에 100만 원을 받아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이시우 씨 사진전. ⓒ프레시안

그러던 중 이 씨가 덜컥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이 됐다. 김 씨는 그나마 생계를 유지해주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 씨의 석방운동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매일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이 씨 주변 인물들은 "이 씨의 사진만 봐도 이 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이 씨의 사진은 서정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름다운 우리 국토의 풍경사진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 씨는 그러나 그 풍경 속에 날카로운 갈퀴를 숨기고 있는 지뢰와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 현실을 담아 왔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씨에게 씌워진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현재의 국보법 체계라면 이 씨에게 얼마든지 유죄 선고를 내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씨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될까 걱정스럽다.

국보법 폐지 외치던 국회의원들은 모두 어디에?
▲ 눈물로 남편의 석방을 호소하고 있는 이시우 씨의 아내 김은옥 씨. ⓒ프레시안

지난 2003년 겨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는 1000여 명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단식을 하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했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 국회 안에서의 국보법 철폐 분위기도 상당히 무르익었었다.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국보법이라는 칼이 칼집에 넣어져 박물관으로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집요한 방해로 인해 국보법이라는 칼이 칼집에 넣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칼은 한 부부를 '남편은 감옥으로, 아내는 거리로' 갈라놓았다. 2003년 겨울 "국보법을 폐지하겠다"고 한껏 폼 잡던 국회의원들은 국보법 칼날에 갈라진 부부를 두고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03년 겨울. 국보법 폐지가 물거품이 된 그 이후. 국회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보법을 잊었고, 노력에 비해 결과가 참담했는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도 국보법 폐지 운동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DJ 이후 국보법 적용이 유연해졌다"며 스스로 자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국보법 문제에 침묵하는 사이, 국보법이라는 칼날은 반쯤 들어갔던 칼집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벨 목을 물색 중이다. 그 중에는 17대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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