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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이 땅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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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꿈꾸는 자 잡혀간다. 이 땅에서는"

[국가보안법, 나 잡아봐라!①] 미리 써보는 자술서

"국가보안법을 안고 함께 죽기로 각오했다."

16일 현재 27일째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19일 검거됐고, 같은 달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통일뉴스>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주한미군의 화학무기 배치현황 등 미군 무기와 군사기지 정보를 유출했으며, 간첩단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 온 해외인사, 민간 통일단체 간부 등과 접촉해 관련 자료를 공유했다"며 국가보안법 제5조(반국가단체 자진 지원 등) 및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다"고 말한다. 이시우 씨가 찍은 사진들은 그의 말마따나 "관련 당국의 허가 하에 취재한 것들"이었다. 또 이미 그가 보유하고 있는 수준의 자료와 정보들은 군사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을 비롯해 해외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국가보안법이 '평화활동가'이자 '사진작가'인 그를 한순간에 '범죄자'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27일째 묵비권 행사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돕기 위해 점차 많은 이들이 행동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구치소 앞에서는 '평화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가 주최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대책위는 오는 5월 31일부터 이틀간 국회에서 이시우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예술인들 또한 사진작가로서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이시우 씨의 구속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이번 사건을 작가 이시우 한 사람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시도"라며 "국가보안법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시우 씨를 돕고 국가보안법의 부당성과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예술인들이 행동에 나섰다. 문학, 음악, 미술, 만화, 사진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은 '국가보안법, 나 잡아봐라!'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릴레이기고를 연재할 예정이다. 그 첫번째 글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경동 시인이 보내왔다. <편집자>

지난 4월 19일, 한 사람의 사진작가가 구속됐다. 이시우 씨였다. 4월 23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영장이 발부됐다고 했다. 10여 년 전 그가 '사진연구소'를 할 때 이런저런 회의 자리에서 몇 번 그를 만났던 기억이 났다. 그리곤 4년여 전 한 벗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을 때 장례식장에서 스치듯 그를 만났던 기억이 났다.

그 외롭고 고귀한 마음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란다
▲ 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홈페이지 ⓒ이시우

도대체 무엇이 그를 가뒀는지 궁금해 지금도 버젓이 열려 있는 그의 홈페이지(siwoo.pe.kr)를 찾아가 보았다. 지난 몇 년간 그의 삶이 다소곳이 펼쳐져 있었다. 못 보던 새 그는 훨씬 더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한 점 한 점 사진들은 모두 외로워 보였고, 거기에 짤막히 덧붙여 놓은 잠언들은 시를 씁네 하고 다니는 내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질 만큼 깊고 고요한 사색의 바다에 들어 있었다. 무식한 국가보안법의 눈과 잣대가 아닌 창작자의 영혼에 비춰볼 때, 그는 이미 당대 역사와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구도자의 얼굴이었다. 어떤 깊은 슬픔이 그를 이토록 고독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이 고독의 내면을 쫓아 역사의 둔중한 무게에 깔려 있는 작은 것들, 묻혀 있는 것들, 터질 듯한 자유를 향한 열망을 거세당하고 인위적으로 막혀 있는 것들을 찾아 다녔다. 그 현장이 비무장지대였다. 그곳에서 그는 뻥 뚫린 가슴에 풀 한 포기를 키우고 있는 녹슨 포탄이 되고, 철조망 쳐진 가슴이 되고, 빗물에 씻기는 낡은 침목이 되어 누워야 했다. 대인지뢰에 잘려 뭉툭해진 팔과 다리가 됐고, 더는 오갈 데 없이 하늘을 물들인 붉은 노을이 됐고, 빈 나룻배가 됐고, 진창 위에 신기루마냥 잠시 맑은 얼굴을 내비친 여우비가 됐다. 가끔은 마침내 이 질곡 같은 땅을 벗어나 서해로 드는 지친 얼굴을 한 강물이 되기도 했다.

'혼자 떠난 3000리 걷기 구도여행'이 이적행위라고?
▲ 금강산선 철교. "침목이 썩어 가루가 된 자리에 새순들은 노래합니다. 사람에게 베어지고 다시 버려진 뒤에 풀에게 썩어가는데 침목들은 그저 침묵할 따름입니다." ⓒ이시우

그런데 이제 그 외로워서 고귀한 마음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 그 작품들이 군사기밀 누설로 '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제작된 이적표현물이라고 한다. 그이 사진에 찍힌 이름 모를 작은 풀 한포기, 저무는 하늘, 타는 노을, 검은 산, 진창 위에 고인 비 한 줄금 그 모든 것들이 '적을 이롭게' 할 군사기밀이라고 한다.

더더욱 '적'이라니, 새가 웃을 일이다. 누가 '적'인가.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은 '회합, 통신'을 통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도대체 누가 '적'인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신뢰를 다져나가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구체적으로 북을 돕기 위한 수많은 물자들이 38선을 넘고, 남북 군사담당자들이 모여 서로 1급 군사기밀지역을 관통하는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운행을 합의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한강에서 띄워 보낸 평화의 배가 이적이고, 유엔사를 해체하고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혼자 떠난 '3000리 걷기 구도여행'이 이적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국론 분열하는 언론과 정치인들도 '이적 행위자'다
▲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27일째 단식 중인 사진작가 이시우 씨 ⓒ이시우

들어갈 수도 없는 저 철책선 바깥에서, 유엔사와 합참의 취재 허락과 지원을 받아 들어간 비무장지대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얼마나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 국무부에서도 비밀해제한 문서의 내용을 국내에 소개한 것이 이적인가? 그렇다면 이적이 될 줄 알면서도 문서를 공개한 미국무부가 이적인가? 1급 군사기밀지역을 '적'들에게 공개하기로 한 남측 군사담당자는 그렇다면 얼마나 이적인가? 더더욱 '이적'을 호시탐탐 잡아내고 때려잡는 무소불위, 단 하나의 법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서명한 국회의원 나리들은 그렇다면 얼마나 큰 이적행위인가?

과거 이적행위로 명백히 처벌받았던 자들을 이 나라 대통령으로 뽑고, 국회의원으로 뽑고, 경기도지사로 뽑은 국민들은 또 얼마나 위험한 자들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남북의 화해와 교류 소식을 전하며, 북이 이젠 더 이상 늑대의 얼굴을 한 '적'이 아닌 통일의 대상임을 간곡히 선전 선동하는 한국사회 모든 언론은 또 어떤가? 군사기지의 무슨 표지 하나가 아니라 미군 작전계획 5027이니 뭐니 하는 내용들이 버젓이 소개되는 이 모든 언론을 도대체 어떻게 할 셈인가?

국론 분열이 가장 크게 '적을 이롭게' 할 일임을 알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지역감정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제 정치적 잇속만 따라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며 이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회의만을 조장하는 이 정치인들을 어떻게 할 셈인가? 빈곤으로 내몰린 국민들의 체제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게 '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는 토양 조성임을 알면서도 85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내몰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이 불온한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을 어떻게 할 셈인가?

이렇듯 '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현실에서 오히려 '적'은 이렇듯 수많은 자가당착과 냉전적 사고로 똘똘 뭉쳐져 처치 곤란인 국가보안법, 바로 너다.

누군가 갇혀야 한다면 나 역시 구속하라

그만한 사유로 작가 이시우와 또 누군가가 갇혀야 한다면 나 역시 구속하라.

나는 북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야 할 사람들로 생각한다. 나 역시 미군이 하루속히 무장을 해제하고 제 나라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정전협정에 기반한 유엔사가 해체되고, 평화가 이 땅에 도래하기를 당연히 기원한다. 세상의 모든 군국주의와 그 무기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호혜와 평등, 다양한 인류의 다양한 협력과 조화만이 가득 찬 세상을 꿈꾼다.

누구만의 사유물일 수 없는 자연과 대지에 함부로 소유권을 붙이고, 그도 모자라 타인들이 피땀 흘린 결실들마저 초과착취하고 과도하게 독점할 수 있는 폭력과 반인권의 자유를 허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룰을 거부한다. 그 아름다운 꿈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며, 그런 사회가 내 영혼 깊숙이 심어둔 모멸감, 각종 열패감, 소외와 모순을 넘어 진정으로 해방된 사회의 인간이 되고 싶은 한 사람이다.

특히 나는 이런 내 사상과 상상력을 숨기지 않고 시로 표현해 왔다. 이시우가 찍은 사진보다 더 직접적이면서 덜 다의적인 '문자언어'를 통해 나를 표현해 왔다. 이시우가 분단의 현장을 쫓았다면 나는 소외와 착취의 현장을 쫓았고, 이시우가 군국주의와 유엔사와 대인지뢰와 핵잠수함과 열화우라늄탄만을 문제 삼았다면,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지키고 있는 핵심이 '자본주의'라고 여기고 그 해체를 주장했다.

그런 내 상상력과 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가르치는 자유와 평화와 평등의 내용보다 앙상하고 도덕군자연하는 것이면 어떡할까 부끄러워 수많은 참여와 실천을 통해 나를 담금질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공과를 넘어 이제 다른 세계를 꿈꾸는 수많은 불온한 서적들을 탐독하며 그 이행의 주체와 경로들을 찾으려 했다.

언제부터였냐고? 미안하지만, 그것은 아주 어려서부터였다. 내게 이 세계는 모두 벗어나야 할 수렁이거나 오랏줄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이미 온 것들을 떠나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꿈꾸었다. 그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때에 따라서는 이 지구를 떠나 다른 먼 별나라로 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내 '죄목'들을 국가보안법 네 앞에 나열해주겠다
▲ "나의 체포를 위해 궁금하다면 최근 몇 년 나의 작업들 중 몇 대목을 일별해 줄 수도 있다." ⓒ송경동

이런 내게 지켜야 할 국가가, 국가보안이, 하물며 '적'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소유가 어디에 있으며, 내 역사적 생명의 나이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내게 삶이 어디에 있으며, 죽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내 생명 어디까지를 너희가 붙잡아 가둘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내가 더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나의 체포를 위해 궁금하다면 최근 몇년 나의 작업들 중 몇 대목을 일별해 줄 수도 있다.

먼저 나는, 2002년 12월 1일 오후 2시 30분 종묘공원에서 열렸던 '국가보안법 장례식'에 참여해 국가보안법, 너의 죽음을 '허위 유포'한 사실이 있다. 죄로 치자면 말해 뭐할 건가. 전문이다. 이 시로도 충분하다면 다음 자백들은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되겠다.

<꿈이 아닌 날>

부고를 내어라
어둔 지하에서 양지를 그리며
내내 병상이던 국가보안법 돌아가셨다

조등을 달아라
저 바다 건너에서도 잘 보이게
삼천리 방방곡곡에 봉화를 내걸어라
동학농민의 피맺힌 함성, 그 핏빛 노을은 하늘에 올리고
식민지 독립투사들의 불씨들은 모아 백두산 상봉에 올려라
4.3, 여순 양민의 넋들이 한달음에 오르는 저기 한라산
사랑했던 사랑들이여 보이느냐!
4.19의 타다 만 젊은 숯들이 떼 지어 오르는 저 남산
5월 광주의 화톳불들이 모여 비추는 저 무등의 환한 얼굴
골리앗에 오른 젊은 노동자들의 불꽃이
동해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이 때

어서 빨리, 이 자 매달 칠성판을 내오너라
사지육신 결탁할 한지를 내오너라
한지로는 찢기고 찢긴
하얀 옷의 넋들을 내오너라
조봉암의 수의를 내어오고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이수병 우홍선 김용원
인혁당 내 푸른 청춘 여정남의 수의를 내어오너라
김상진 열사의 할복의 칼 끝에 구멍뚫린 내의를 가져오고
박종철 열사의 물에 젖은 내의를 가져와라
이한열의 이마를 닦던 핏빛 손수건을 내어와 잇고
지랄탄에 숨막히고 곤봉 앞에 피 흘리던
모든 청춘의 마스크를 내어와 이어라
이어서 이 망령된 자를 묶어라

상주로는 조선일보를 예 오게 하라
국정원 시경 공안과 비밀경찰 보안대 모두 예 오게 하라
그것을 낳은 친일 친미 망령들 죄다 불러 젯밥 먹이고
망령된 지식인들 죄다 불러
상차림 시키라. 꺼이꺼이 곡하게 하라
민중들 주리 틀려 탈진하던 긴긴 날 그리워
민중의 고혈로 영영 살지던 세월 그리워
곡하다 탈진케 하라

미워도 고와도
상여는 메어 주는 게 민중의 법
우리 등이 또 한 번 더러운 땀으로 젖고
고통전담으로 허물어질지라도
이 상여만큼은 우리가 꼭 메어야겠다
다시는 다시는 너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 앙다물고 메어야겠다

어화 가자 어화 가자
삼팔선 넘어 경의선 따라 동해선 따라
금강산 뱃길 따라 직항로 따라
그리운 북녘땅
어화 넘자 어화 넘자
만승천자 진시황도
불사약을 못 구했으니
가는 운명 서러워말고
이 땅 아쉬움 다 가져가

표현의 자유 고문하던
모든 형틀도 함께 가져가
기만적인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착취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반체제로 모는
허울뿐인 민주주의
생존권을 무참히도 짓밟던
모든 공권력과 함께 가
정부가 만나면 통일운동
민이 만나면 반체제 운동
이 모든 어불성설도 모두 가져가

타는구나 잘 타는구나
농민들 죽을 상이다 해도 이적
공장불 켜진 걸 보니 밤에도 일한다 해도 이적
하다못해 유엔 가입한 주권국도 이적단체
그 무식이 그 안하무인이
그 형용모순 논리모순이
잘 타는구나 잘 타는구나
54년 분단세월 54년 침묵세월
그 오욕의 역사 분노의 세월

이제와 말하지만
제국주의 총칼 자본의 야욕 없었으면
국가보안 왜 필요해
잘 가거라 잘 가거라
가서 다니는 이 땅의 한 점 바람에도
한 점 햇빛에도 한 점 물결에도
한 점 생명에도 깃들지 말거라
어화 해방세상 들래
어화 통일세상 들래
나의 운명 우리의 운명
우리가 들래


다음은 2005년 6월 25일, 오후 2시경 충주시청 앞에서 열렸던 '김태환 열사 살인만행 규탄 및 특수고용직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읽었던 시다. '시가 아니라 이 놈 아예 빨갱이네' 해도 좋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목적이 그것이니 오히려 다행이겠다. 알려졌듯 김태환 열사는 충주에서 비정규직의 한 형태인 특수고용직 레미콘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다, 사측의 입장에 선 레미콘의 바퀴에 깔려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이다. 미선이 효순이 때도 그랬지만 육중한 바퀴에 깔려 죽어 간 이를 떠올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프고 치떨리는 일이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속해 줄 수 있는 최대의 말을 찾다보면 필요 이상 과격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실제 과격한 것은 이 사회다. 초과착취에 열을 올리는 자본의 숨 가쁜 시계초침을 따라가다 1년이면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가는 사회다. 일자리를 제공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복지를 제공받지 못하고 삶의 벼랑으로 밀려 아이들을 껴안고 자살하는 이들도 해마다 꼬리를 잇고 있는 사회다. 미필적 고의를 넘어 나는 그것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합법적인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아 있다 해도 거개가 정신적 내상에 시달려야 하는 장애의 천국이다. 심리치료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이젠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모두 정신병 치료에 나서야만 하는 사회다. 내가 넘어서고 싶은 사회는 이런 부조리한 사회다.

<탱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당신의 머리를 짓이기고 간 것은
레미콘의 바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이 땅을 돌리고 있는
저 거대한 자본의 수레바퀴
착취의 수레바퀴다

비정규직은 그냥 짓이기고 가도 된다는
무서운 경고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미 짜여진 각본
팥죽도 진흙탕도 아니고
노동운동쯤은 그렇게 우습게 짓이겨 버리고 갈 수 있다는
그렇게 짓이기고 가도 아무 일 없다는
계획된 살인
예비된 침탈

그래서 우리는 선포한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 하나의 죽음이 아님을
이 싸움은 1500만 노동자 전체의 자존심을 건 싸움임을
800만 비정규직, 200만 특수고용직
80만 한국노총, 70만 민주노총
400만 농민, 100만 실업자, 수급자, 불량자, 자살자
이름을 빼앗기고
이 땅에서 쓰레기 인간으로 천대받는
모든 민중의 분노를 담은
결사항전, 불퇴전의 항전임을

우리는 선포한다.
우리는 너희가 보낸 무지한 레미콘 바퀴 하나와 싸우지 않고
우리 또한 너희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너희의 맨 윗대가리를 짓이겨
민중 앞에 사죄케 하리라
착취의 수레바퀴보다
더 거대한 노동자 민중해방의 수레바퀴로
너희를 밀어버릴 것이다


다음은 국론으로 추진해 가고 있는 한미 FTA를 거부할 목적과, 그 이상의 꿈꾸기를 '선전 선동'하기 위해 썼던 시다. 처음으로 읽혀진 곳은 2006년 3월 28일 오전 11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이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읽혀졌다.

내 가슴에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나도 / 여느 시인들처럼 /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라는 구절이지만, 보안 당국에서 관심있게 볼 부분은 "오호, 민중이여! / 이제 우린 다시 갑오농민전쟁가를 불러야겠구나 / 오호, 다시 오늘의 이 땅을 죽음이라 부르고 / 87년 6월과 7,8,9월의 함성을 준비해야겠구나"라고 읊었던 부분이겠다. "빌어먹을 이런 개똥같은 게 세계화라면 / 나는 내 온몸에 불을 싸질르고라도 / 전 세계의 반민중적 세계화를 반대한다"라고 썼지만 끝내 나는 나약한 소시민이었고, 분신을 결행한 이는 택시노동자 '허세욱 열사'였다.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잔의 진한 커피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늘 거리에 서야만 한다
너희가 쓰다버린 850만 비정규직 쓰레기인간들에 대해
노래해야 하고, 일손을 빼앗긴 350만 농민의 시퍼런 절망에 대해
노래해야 한다. 미군기지에 밀려 다시 세 번째 생의 이주를 앞두고 있는
팽성 대추리 노인들의 얼굴 위에
너희들이 늘씬 퍼부어주던 포탄 선물을 받으며
피투성이로 울부짖던 이라크 아이들의 얼굴을 겹치며
다시 나는 거리에 서서 분노와 증오로
피 어린 시를 써야만 한다

그렇게 너희는 가만히 있는 나에게서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간다
아름다운 시를 빼앗아 가고
내가 좋아하는 내 영화를 빼앗아가고
내 친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이젠 그도 모라자
내가 쓰는 전기를, 통신을, 언론을, 가스를, 물을, 약품을
송두리째 모두 너희의 것으로 내어놓으라 한다
100원에 쓰던 것을 1000원에 사라하고
1000원으로 살 수 있던 생태적 삶을
10000원짜리 경제적 삶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라 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젠 모두
너희의 허락을 맡고 써라 한다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라 한다

빌어먹을 이런 개똥같은 게 세계화라면
나는 내 온몸에 불을 싸질르고라도
전세계의 반민중적 세계화를 반대한다
이것이 21세기 선진 세계시민사회라면
난 정중히 그 세계시민사회에
아니오 라고 말할 것이다

한 손으론 미사일 버튼을 잡고
한 손으론 조약서를 들이미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인가
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완용의 잔재들이여
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
을사조약은 여전히 구국을 향한 결단이었으니
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김영삼의 잔재들이여
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 IMF 신탁통치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세계화의 대세였으니
오호, 민중이여!
이제 우린 다시 갑오농민전쟁가를 불러야겠구나
오호, 다시 오늘의 이 땅을 죽음이라 부르고
87년 6월과 7,8,9월의 함성을 준비해야겠구나

너희가 준비한
퇴행의 세계화 무장한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 양극화의 세계화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획일의, 통제의, 부자유의 세계화에 맞서
평등 평화의 세계화를
다양한 인류의 다양한 세계화를
웃음과 사랑과 연대와 나눔을 실현하는 민중의 세계화
변혁의 세계화를
이제 곧 준비해야겠구나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만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해방된 사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거리에서 보낸 오늘 하루
나의 젊은 날도 헛되지만은 않으리
한낮의 꿈만은 아니리
아, 변혁을 노래하고 싶은 밤
아, 해방을 사랑하고 싶은 한 밤


잡혀가려면 더 고백해야 하나, 3년여 걸쳐 투쟁 중인 월급 67만 원짜리 비정규직 인생 노동자들인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참여하고, 비정규직차별 철폐만이 아니라 더한 해방의 길로 그대들이 가주어야 한다고 '고무 찬동'하기 위해 쓰여졌던 <너희는 고립되었다>라는 시는 어떤가? 찾아봐 주길 바란다. 영상과 함께 '인권영화제'에도 출품됐다고 하니 찾기가 어렵지는 않겠다. 나는 아직도 한번도 못 찾아 봤다. 그 밖에도 나의 작업들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상에 마련된 내 '칼럼방'을 참고해주길 바란다.

그 외에 무엇을 더 고백할까. 반자본, 반전평화 등 새로운 삶과 사회를 구상하기 위한 기치로 노동문학운동의 새로운 교류 연대를 위해 진보문학매체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할까. 무엇을 더 고백해야 이 백주대낮 민주주의 사회에 누가 되어 잡혀갈 수 있을까. 군국주의에 반대해서 평화를 노래하고, 사회양극화, 빈익빈부익부의 사회에 반대하여 골고루 평등한 사회, 성별과 종교와 피부색과 빈부를 넘어 모두가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는 일이 어떻게 하면 잡혀갈 수 있을까?

'적을 이롭게' 하기엔 너무 허술한 나의 양심을 어떻게 규명할까

이쯤에서 나는 그만 자백을 멈출까 한다. 나에 대한 고발을 멈출까 한다. 기실 나의 진짜 죄는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보자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공식적이고 가식적인 나의 면모만을 자백했다는 데 있다. 아마도 거짓말탐지기를 대고 "위에 밝힌 모든 자백이 사실이지"라고 내 가슴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내 가슴은 "예"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질문을 다르게 해서 "위에 밝힌 모든 자백이 진실이지"하면 내 가슴은 "아니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누구보다 내가 알고, 다음으로는 나와 가장 가까운 벗, 아내나 친구들이 안다. 나는 '적을 이롭게' 하거나, 혁명을 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고, 나태하며, 교만하고, 가부장적이며, 이율배반적이고, 체제내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혼돈스럽고 기기묘묘하며 복잡다단한 자아의 양심을 어떻게 규명하겠다는 것인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심히 궁금하고 우려스럽지만 한편, 기대된다. 잘 됐다. 나도 이 기회에 모 아니면 도, 단순명료한 정체성을 갖고 싶다. 정말이지 늘 답은 없이 질문투성인 영혼이며, 배신과 우여곡절의 연속인 삶이 나도 이젠 견디기 어렵고 싫다.

사실과 진실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더 많은 시간을 진짜 나의 적인 '나'와 싸운다. 나는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한계와 모순과 무지와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누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이거나, 나아가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희뿌연 안개 속의 나와 맑게 대면하기 위해 고투하고 사색한다. 해방은 내 안에서 오지 밖에서 오지 않는다. 아마 이시우 씨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그 속을 너의 그 밴댕이 속아지가 어찌 다 알리요만, 그런데도 이시우 씨와 그런 비슷한 꿈을 꾸었던 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나 역시 잡아가다오. 늘 꿈꾸되 나에게 오는 것은 평등과 평화였으면 좋겠지만, 그 길이 다시 가시밭길이라면 부끄럽게도 그 길을 가겠다.

관성은 진보를 모르고, 정치는 예술보다 더디다지만…

한편 모든 예술의 역사는 오독(誤讀)의 역사였다고도 하니, 크게 안타까울 까닭도 없다. 어디까지가 사실과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라는 경계가 예술작품의 어디에 그렇게 선명하게 나와 있더냐고 물어볼 힘도 없다. 기자회견문에도 썼지만 조선시대 화가 최북은 오랜만에 주문을 받아 산수화 한 점을 그려주고는 도리어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산수(山水)화에 왜 산만 있고 물은 없는 거요?" 짜증이 난 최북이 얘기했다고 한다. "야, 이눔아 화폭 밖이 다 물이여. 그게 보이지 않어."

최북은 '조선의 고흐'로 후대가 기억하는 이다. 몇 푼 그림 값으로 술 먹고 돌아오다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 성스러움에 맞서 비속한 사람들 곁을 떠돌던 고갱의 죽음은 간신히 성당 묘지 뒤끝에 묻혔고, 초기 피카소의 그림은 벗들에게서조차 그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집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지금은 천억 대에도 팔리는 뭉크의 그림들이 당시에는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샤갈은 러시아 혁명 1년 후 150m나 되는 천에 혁명기념화를 그렸다가 오히려 혁명분자들로부터 경멸받았다. 150m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옷 몇 벌을 만드는지 아느냐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래저래 예술의 역사는, 무릇 민중과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렇듯 수난사였다. 관성은 진보를 모르고, 대부분의 정치는 예술보다 한참 후지거나 더디다. 이미 백년 후, 천년 후를 경계 없이 사는 예술을 당대의 편협한 잣대와 잇속으로만 재려는 모든 아둔하고 치졸한 역사적 시도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교훈을 언제쯤이나 이 역사는 가슴에 새길는지, 쓸쓸하다.

이시우 씨의 짤막한 잠언 몇 마디 첨언하며 마친다. 아무리 봐도 그는 훌륭한 사진작가, 평화운동가, 통일문제 전문기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참 좋은 시인의 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오늘까지 하면 27일째던가. 외롭게 단식과 묵비권을 행하고 있을 그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빛에 젖는 어둠과 / 어둠에 적셔지는 해 / 그 격렬한 고요."
"상처는 아픔이면서도 교훈입니다. / 용기만이 제 상처에서 교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2001년 <실천문학>과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과, '삶이 보이는 창' 편집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꿀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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