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발언, 그러나 돌발은 아니다. 2026년 8월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은 짧았지만 파장은 짧지 않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매우 좋은 관계"를 이유로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연합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 발언은 연례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개시 당일, 그것도 북한이 이 훈련을 앞두고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나흘 만에 나왔다. 그는 훈련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부담해온 점, 그리고 한국이 이란 비핵화 공조에 동참하지 않은 점까지 함께 거론했다.
이 세 문장짜리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김정은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나 '트럼프 특유의 돌발성'으로 읽는 것은 사태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이 발언은 ① 미국이 실제로 처한 군사적 과부하, ②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반복되어 온 대북 접근의 문법, ③ 동맹을 손익계산서로 재구성하려는 거래적 안보관, ④ 글로벌 이슈 공조를 지렛대로 삼는 압박 외교, ⑤ 2026년 미국 국내정치의 함수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로 읽어야 한다. 다섯 겹의 논리를 하나씩 풀어보자.
첫 번째 변수: 이란전(戰)이 만든 군사적 과부하
가장 저평가되고 있지만 실은 가장 구조적인 변수는 미국의 군사자원 고갈이다. 미국은 2026년 1월 26일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이래 지금까지 반년 가까이 중동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3개 항모강습단과 육해공 특수전 전력이 이 지역에 장기 투입되면서,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공군의 작전 예산 일부가 회계연도 말 고갈을 앞두고 있으며, 실제로 미군의 전투태세 유지 훈련 자체가 도처에서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 하원은 73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국방예산 승인을 추진 중이지만, 민주당은 확전 차단을 명분으로 이를 저지할 태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미연합훈련 축소 지시는 김정은에 대한 '선물'이기 이전에, 다른 전구(戰區)에 자원을 재배치해야 하는 미군 지휘부의 현실적 필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조치다. 트럼프가 즐겨 쓰는 '대북 친분 과시'라는 정치적 포장은, 실은 예산과 전력이 바닥나는 상황에서 나온 자원 재배분 결정에 정당성을 입히는 서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이번 지시는 대북정책의 문제라기보다 미국이 두 개의 전선(戰線)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는 전략적 과잉확장(overstretch)의 징후로 먼저 읽혀야 한다.
두 번째 변수: 2018년의 재현, 대화 재개의 사전 정지작업
물론 대북 신호 효과를 배제할 수는 없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소환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그는 2018년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 직후에도 연합훈련을 "매우 도발적이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비판하며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전격 중단시킨 전례가 있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그 8년 전 패턴의 반복이며, 북한이 연합훈련을 '침공 예행연습'으로 규정하며 반발해온 상황에서 대화 재개의 명분을 선제적으로 제공하려는 신호로 기능한다.
다만 2018년과 다른 점은, 지금의 유화 제스처가 과거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동전 장기화로 발목이 잡힌 미국 외교안보 자원의 재배치 국면에서 부수적으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향후 미북 대화가 설령 재개되더라도, 그 동력이 한반도 문제 자체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 상승이 아니라 미국의 다른 전선 부담 경감이라는 부차적 동기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판이 다시 열리더라도 미국이 이 판에 쏟을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은 2018년보다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변수: 거래적 동맹관과 방위비 청구서의 예고편
훈련이 "비용이 많이 들고 대부분 미국이 부담한다"는 트럼프의 언급은 그의 일관된 동맹관을 재확인시켜준다. 한미 양국은 이미 2026~2030년 특별조치협정(SMA)에 따라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연간 약 10억 6천만 달러를 부담하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으로 지칭하며 연간 100억 달러 규모의 부담을 공언해왔다. 이는 현행 합의액의 열 배에 달하는 수치다. 나토 회원국들에 대해서도 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율 상향을 강하게 압박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훈련 축소 발언은 '비용 대비 효용'이라는 프레임을 한미 안보협력 전반에 재차 각인시키는 사전 포석으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이 압박이 역설적 구조를 띤다는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훈련 참여를 줄이면서 '비용 부담이 크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방식은, 향후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주둔비용이나 확장억제 유지비용의 증액을 요구할 때 쓸 수 있는 정치적 레버리지를 동시에 축적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훈련을 줄이는 행위 자체가 '동맹의 비용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는 다음 협상의 서두를 여는 셈이다.
네 번째 변수: 이란 이슈, 글로벌 공조 불응에 대한 응징적 연계
트럼프가 한국의 '이란 비핵화 비협조'를 굳이 함께 언급한 대목은 이번 발언에서 가장 이례적인 부분이다. 지역 안보 사안(한반도)과 글로벌 이슈(이란)를 하나의 문장 안에서 연결한 것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글로벌 안보 어젠다에 대한 동맹국의 협조 여부를 지역별 안보 공약과 교환 가능한 카드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한국으로서는 대이란 관계, 에너지 수급, 국제사회에서의 균형 외교라는 독자적 고려에서 나온 판단이었지만, 워싱턴은 이를 '동맹으로서의 순응도 시험'으로 재규정하며 압박 수단화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한국이 마주할 외교의 성격 변화를 예고한다. 대만 문제,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중동 문제 등 한반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에서의 '선택'이, 대북 억지력이라는 한국의 사활적 안보 이익과 연계되어 청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계 압박이 반복될 경우, 한국은 개별 사안마다 독자적 국익을 판단할 여지가 점차 좁아지는 구조적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다섯 번째 변수: 2026년 미국 국내정치의 함수
마지막으로 이 모든 변수를 관통하는 것은 트럼프 2기 집권 2년 차, 중간선거를 앞둔 국내정치의 시간표다. 중동전 장기화로 국방예산과 여론의 피로도가 동시에 높아지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내가 김정은과의 관계를 통해 한반도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서사를 선제적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확전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계심이 커지는 시점에, 새로운 전선을 여는 대신 기존 동맹 부담을 줄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축소 지향적이되 성과처럼 보이는' 국내정치적으로 값싼 카드다. 동시에 동맹에 대한 비용 청구는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행정부가 유권자들에게 '무임승차 동맹을 손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효과도 낳는다.
한국의 선택: 능동적 자율성과 평화 재설계의 길
결국 이번 조치는 단일한 의도가 아니라, 중동전이 만든 자원 제약, 대북 대화 재개의 오래된 문법, 동맹 비용 재협상의 사전 정지작업, 글로벌 이슈 연계 압박, 그리고 국내정치적 계산이 한 문장 안에 압축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김정은을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한국을 향한 청구서의 초안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는 이 다층적 청구서 앞에서 어떤 전략적 대안을 세워야 하는가?
첫째, ‘동맹의 수동적 소비’에서 ‘국방 자율성 및 독자적 억제력’으로의 전환이다. 미국이 전략적 과잉확장과 비용 논리로 연합훈련을 축소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 지표에 온전히 의존하기보다는, 한국군 주도의 독자적 감시·정찰(ISR) 및 억제 능력을 조기에 강화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둘째,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한 대북 직간접 대화 채널의 복원이다. 북미 관계가 미국의 자원 재배치 과정에서 부차적인 유화책으로 재개된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도권이 또다시 외세에 휘둘릴 수 있다. 이번 8.15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바대로 한반도 당사자로서 한국이 먼저 대북 긴장 완화와 리스크 관리 대화를 적극 제안하며, 북미 대화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우리의 국익이 담긴 협상 구조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셋째, 구조화되는 '연계 압박'에 맞선 연대 외교와 중견국 전략이다. 미국이 중동, 대만, 대중 통제 등 글로벌 이슈를 한반도 안보 공약과 연계하는 압박에 단독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유사한 구조적 딜레마를 겪고 있는 유럽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견국들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국익에 기반한 명확한 원칙외교를 통해 미국의 일방주의적 거래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는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의 훈련 축소 카드는 한미동맹의 기존 관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단순한 방어적 대응을 넘어, 한반도 안보 지형의 구조적 변화를 능동적으로 선도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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