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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명령한다 "남김없이 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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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명령한다 "남김없이 팔아라"

[한-EU FTA, 공공성을 파괴한다③] '물 사유화' 시도와 저항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일본 교토에서는 아시아개발은행(ADB) 40차 이사회에 대응하는 '민중포럼'이 열렸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세계은행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에서 개발을 위해 원조한다는 명분하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사유화를 주도하고 있다.

민중포럼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는 '물 사유화 반대운동'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필리핀, 일본, 한국, 홍콩, 네팔, 인도네시아 등지의 수도 관련 노동조합, 물 사유화 반대운동 단체, 국제네트워크, 연구소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물 사유화 반대를 주장했으며 대안을 모색했다.

한국의 '물 사유화 반대운동'은 이제 시작이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1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도 '물 사유화'는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토론에서 생생한 사례들이 발표되고 있다.

초국적 물기업-국제기구-정부, 사이좋게 '물 사유화'

1990년대 이후 전세계에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유화 바람'이 불었다. 초국적 물기업들은 제3세계를 중심으로 사유화를 추진했다. 그들은 "수도의 효율성과 수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며, 빈민들에게도 상하수도 서비스를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실패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서비스인 물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최대 목표였기 때문이다.

물 사유화는 초국적 물기업, 국제금융기구, 각국 정부가 손을 잡고 추진한다.
▲ 물 사유화의 문제는 제3세계뿐 아니라 전세계적 시민사회 내에서 부각되고 있는 관심사다. 캐나다의 한 시민단체가 만든 '물 사유화 반대' 포스터 ⓒcanadiandimension.com

물기업들은 이윤을 남기려고 국제금융기구나 각국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를 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은 제3세계 정부를 상대로 빈곤과 열악한 물 상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구조조정이나 사유화 정책을 내건다. 외채가 많고 재정이 부족한 정부는 때문에 대부분 이 조건을 받아들여 물 공급을 초국적 물기업에 넘긴다. 기업들은 대개 20-30년 계약으로 수도 공급을 맡는다. 필수 공공재인 물을 상품화해 세계 곳곳에서 장사를 벌이는 셈이다.

사유화된 세계의 물 시장은 프랑스의 베올리아(구 비방디)와 온데오(구 수에즈), 독일의 RWE, 스페인의 아그바, 영국의 유나이트드 유틸리티 등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베올리아와 온데오가 시장을 거의 양분하고 있는데, 베올리아는 100여개 국가에서 1억1500만 명에게, 온데오는 1억1400만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베올리아는 작년 한국에서도 상수도사업 민간위탁을 위해 인천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미 베올리아의 국내 자회사는 베올리아워터코리아를 비롯해 7개가 있으며, 지난 2000년부터 현대 석유화학, 하이닉스, 인천 송도·만수 하수처리, 금호 석유화학 등 산업용수와 하수처리 분야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베올리아는 2001년 마산시 상수도 민간위탁을 추진하다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공무원노조의 반대운동으로 실패하기도 했다.

"올리고 또 올려라"…이득은 누구에게?

물 사유화 정책이 실시되면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줄고, 기업의 이윤보상 요구 때문에 요금은 계속 상승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 시의 수도가 온데오와 RWE에 위탁되면서 2001년 35%, 2003년 40%, 2004년 30%가 인상됐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손실을 주장하자 자카르타 주지사는 2005년부터 6개월마다 자동적으로 요금인상 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즉 향후 남아있는 계약기간인 18년 동안 36번의 요금인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아공에는 '수에즈'가 들어와 요금을 600%나 인상하기도 했다. 이런 수도요금 인상은 결국 정부나 주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또 계약에 명시된 목표가 충족되지 않으면 기업의 요구에 따라 계약 자체가 변경되기도 한다.

더욱이 기업들은 불가피한 철수 시 천문학적인 보상금까지 요구한다.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는 영국의 초국적 물기업 '바이워터'가 2003년부터 10년간 상수도 공급을 한다는 계약을 정부와 체결했다. 그러나 이윤창출에 혈안이 된 바이워터는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 결과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탄자니아 정부가 계약을 해지했는데, 바이워터는 탄자니아 정부를 상대로 2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영국고등법원에 제기했다.

사유화 이후 정부들은 기업의 행태를 통제할 권위나 능력이 부족해졌다. 빈민들에 대한 물 공급도 확대되지 않았다. 또 사유화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노동조건 악화 등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켰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온데오(구 수에즈)가 물 관리를 넘겨받은 후, 물 관련 노동자 7600명 중 4000명이 명예퇴직을 당했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탈 사유화' 외치는 각국의 민중들
▲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물 사유화'를 둘러싼 갈등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바이워터', '온데오' 등 외국 기업에 민간위탁을 하려 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가나인들은 '물 사유화 반대 연맹'을 만들어 대응했다. 2005년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시위를 벌이는 가나인들의 모습 ⓒwww.ghanaweb.com

물 사유화에 맞선 대표적 사례는 볼리비아다.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지방 상하수도 서비스는 세계은행의 압력과 비밀 입찰을 통해 1999년 9월 미국의 초국적기업 벡텔에 매각됐다. 수도요금은 급증했고 벡텔은 순익 15%라는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2000년 1월 수도요금이 35% 인상되자 코차밤바의 수만 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도시는 4일 동안 마비됐다. 시민사회단체, 노조, 농민들이 결성한 '물과 생명수호를 위한 연합'이 주도한 당시 시위의 주요 목표는 "지역의 물을 '탈사유화'하고, '물과 생명'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2000년 4월, 코차밤바 전역을 마비시킨 일주일간의 총파업으로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무자비한 정부의 탄압에 수백 명이 부상당하고 17세의 어린 소년이 사망했다. 결국 정부는 패배를 인정했고 물 사유화에 대한 입법을 철회했다.

이후 정부는 물 서비스를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손에 맡겼으며 주민들은 상하수도 서비스 회사의 이사진을 새로 선출했고 새로운 운영방침을 채택했다. 이는 △효율적이고 부패가 없는 운영 △노동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운영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정의에 입각해 우선적으로 공급해주는 운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촉진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물 사유화 금지' 헌법으로 만든 우루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수에즈가 물 공급을 맡으면서 수도 요금이 대폭 인상됐다. 곧 농촌 지역공동체 뿐 아니라 도시 흑인지역까지 전국적인 요금납부 거부 사태가 일어났다. 정부는 인상된 요금을 지불할 여유가 없는 민중들에 대한 물 서비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000만 명 이상이 물 서비스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대응해 '사유화 반대포럼', '물 사유화 반대연합' 등은 공공연하게 선불계량기(미리 지불한 돈 만큼만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를 파괴했다. 정부는 이들을 범죄자와 무정부주의자로 낙인찍고 수백 명을 체포했지만 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2002년 정부는 부분적인 무료 물 공급 정책을 수립했지만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이들은 운동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다.

우루과이에서는 물 사유화에 반대해 2002년 '물과 생명수호를 위한 전국위원회'가 결성됐다. 사유화 이후 10배 이상 상승한 수도요금으로 인해 경제적 여유가 없는 많은 이들은 식수 접근이 차단됐다. 전국위원회는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발의했으며 2003년 23만 3000명의 서명이 의회에 제출됐다. 결국 2004년 국민투표에서 65%의 지지로 이들의 안건이 통과됐다. 개정된 헌법은 "물은 생명을 위해 필수적인 자연자원이다. 상하수도에 대한 접근은 기본적인 인권의 일부", "수자원의 공공 관리는 시민의 참여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와 통제, 공공성 강화가 대안이다
▲ '물 사유화 반대' 캠페인 포스터 ⓒwww.citizen.org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에서부터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에서 물 사유화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홀 외, <세계화와 물> 참조).

이들 투쟁의 공통적인 결론은 "사유화는 대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자본에게 물은 석유보다 더 큰 먹잇감이 되고 있지만, 민중에게 물은 생명이자 기본적인 인권이다. 물은 민중의 참여와 통제에 기반해 깨끗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대안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와 헤시피에서는 참여예산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지역공동체를 위한 수도사업의 우선순위를 직접 결정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엔론의 자회사인 아주리를 쫓아내고 노동자들이 수도시설을 접수해 직접 운영한다. 실제로 이 같은 조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높여 상하수도 운영 환경을 개선했다.

한국 정부는 물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수자원공사와 같은 국내 기업을 초국적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하수도를 기업에 넘겼을 때 발생하는 사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외 기업에 맞서 국내 기업을 육성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초국적 기업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서 물장사를 하자는 것인데, 왜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피해를 줘야 하나?

물을 공적으로 책임지고 누구나가 깨끗하고 값싸게 공급하게 만드는 것은 기업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맡을 일이다.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협정(FTA)의 파도에 맞서 스스로의 삶과 권리를 지키고 더 나은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국제적인 경험과 사례들은 그만큼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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