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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거침없는 'FTA 정국', 브레이커는 없는가?

[한-EU FTA, 공공성을 파괴한다①] 협상 개시에 부쳐

한국과 유럽연합(EU)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미 FTA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시작된 한-EU FTA를 맞닥뜨린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 FTA의 모멘텀을 이어가야 한다"며 한-EU FTA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애초부터 '없는 절차'로 취급하며 밀어붙이는 태세다.

한미 FTA를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한-EU FTA는 한미 FTA와 함께 한국 사회를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즉 법과 제도를 자본의 요구에 맞게 고쳐야 하는 한미 FTA에 더해 수도, 교육, 보건의료 등 각종 공공서비스 개방을 노리는 한-EU FTA는 한국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공운수연맹, 사회진보연대, 문화연대, 환경정의 등 전국 27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물 사유화 저지 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행동'은 현재 한-EU FTA를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공동행동'은 한-EU 협상이 가져올 공공성 붕괴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고를 3회에 걸쳐 <프레시안>에 연재한다. <편집자>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FTA 협상이 공식 선언됐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6일 외교통상부에서 한-EU FTA 협상출범 선언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EU FTA 협상 출범을 선언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대의 자유무역협정"이라며 한-EU FTA 협상이 가진 차별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FTA에 대해 "지적재산권, 비관세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등 양국 제도의 투명성 제고를 포함하는 것"을 말하며 "한-EU FTA는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제고시켜 한국의 경제시스템을 선진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EU FTA는 한미 FTA의 연장
▲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연합뉴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자유무역협정"라는 립서비스에도 불구하고, 한-EU FTA가 한미 FTA 혹은 다른 FTA와 근본적으로 차별적인 특징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지적재산권 문제나 비관세장벽 철폐 등은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제기되었던 사안들이며, 또한 작년 12월에는 21개 정부부처 공동명의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정부는 애써 "한-EU FTA가 한미 FTA와는 다른 협상"이라며 게다가 "쉽고 이익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한-EU FTA는 한국이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로 자리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김현종 본부장의 언급처럼 사실 문제는 'FTA만이 살 길'이라고 강요하는 정부의 통상정책,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FTA를 계기로 한국 사회 자체를 자본의 구미에 맞게 뜯어고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한-EU FTA는 한미 FTA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며, 또한 한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FTA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이런 사실은 내용적으로도 확인된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지난 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EU FTA는 (한미 FTA 협상에서) 미흡했던 교육, 의료시장 개방의 디딤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EU FTA는 한미 FTA에서 미진했던(?) 부분에서의 추가적인 개방, 자유화 조치를 통해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보완하는 의미를 가진다. "EU에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는 한미 FTA의 최혜국대우 규정상 미국에도 동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 원장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해 준다.

한-EU FTA의 주요 쟁점

그렇다면 한-EU FTA에서 제기되는 쟁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크게 2가지다.

첫째, 비관세장벽 철폐 문제다. 한국 정부는 EU의 높은 평균 관세율(4.2%, 미국은 3.7%)과 특히 한국의 주력 상품인 자동차의 10% 관세가 철폐되면 수출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반면, EU는 관세 인하보다는 비관세장벽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자동차를 예로 든다면, EU는 한국의 가솔린 차량에 대한 미국식 배출자기진단장치(OBD) 설치 의무화 문제나 유럽식 자동차 안전기준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전망이다. 또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화장품 회사가 포진한 EU가 건강보험 관련 약가제도나 특허제도, 상품 표시제도 등의 투명성 제고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둘째, 서비스시장 개방 문제다. 정부는 "EU는 시청각 분야의 시장개방 확대를 제안하지도,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EU는 유통, 운송, 특송, 통신, 금융, 법률, 회계 시장 등 우위가 있는 서비스시장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전망이다. 이 밖에도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다국적 물기업의 국내시장 진출도 한-EU FTA를 계기로 가속화될 수 있다. 한편 EU는 서비스협상에서 '네거티브 방식'(유보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하는 방식)이 아닌 '포지티브 방식'(협상대상을 명시하는 방식)의 협상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외에도 외교통상부 및 언론에서 제기하는 추가 쟁점으로는 농산물시장과 지적재산권 문제 등이 있다. 즉 전통적으로 농업을 보호해왔던 EU이지만, 돼지고기, 위스키, 와인, 치즈 등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서의 개방 요구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며, 한국 또한 라면, 김치 등 가공농산물 시장개방 확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EU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지리적표시제 강화, 지재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장치 강화 등을 요구할 전망이라고 한다.

'딜브레이커'는 없다

한-EU FTA를 바라보는 정부 및 언론의 태도는 한 마디로 "크게 문제될 것 없다"로 요약된다. EU가 전통적으로 농업시장 개방의 민감성을 인정하고 있는데다가 EU 각 회원국들이 투자보장이나 문화 등의 분야에 대해 협상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있어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와 '방송' 등이 협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쟁점이 되고 있는 서비스협상이 '포지티브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영향(피해)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한미 FTA라는 '거사'를 이미 치르지 않았던가. 한-EU FTA에 더 이상의 '딜브레이커(Deal breaker·협상 결렬 요인)'는 없어 보인다.

맞다. '딜브레이커'는 없다. 하지만 쟁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FTA 확대만이 진리라고 믿는 한국 정부이기에 '딜브레이커'가 없는 것이다. 한미 FTA 협상 타결문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한-EU FTA 협상에 나선 정부에 '딜브레이커'라니. 한미 FTA 협상 타결문조차도 "아직 번역이 덜 됐다"는 이유로 공개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이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 앞에 사실 여타의 쟁점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FTA 올인'의 미래? 자본의 구미에 맞는 '사회 개조'

한-EU FTA의 문제는 한-EU FTA'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미 FTA와 한-EU FTA, 그리고 이미 체결된 한-칠레, 한-싱가포르 FTA, 현재 추진 중인 캐나다, ASEAN, 인도, 멕시코와의 FTA 등 정부가 추진 중인 동시다발적인 FTA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FTA 올인'의 미래는 무엇일까? 홍석만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장은 "확대되는 FTA는 '한국 자본의 이해와 활로를 찾는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FTA라는 칼뿐 아니라, 자본시장통합법, 공공서비스 종합대책, 경제특구를 통한 교육, 의료시장의 개방, 사유화 등 이른바 자발적 자유화조치도 한국 자본의 이해와 활로를 찾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목표는 바로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노동권의 축소에 있다. 이제 확대되는 FTA 속에서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요구가 순차적으로 개시될 전망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에 공공부문의 개방은 제외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물론 공공서비스 종합대책에서 밝힌 민영화와 그에 따른 매각계획도 존재하지만, 한-EU FTA는 공공부문을 주요 협상의제로 다루게 될 전망이다. 한-일 FTA는 철강과 자동차 등 제조업에 맞춰져 있고, 한-중 FTA는 한미FTA에서 드러난 농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함과 동시에 농산물 수급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으며, 한-ASEAN FTA는 동아시아 시장과 개성공단 원산지 확산이라는 전략적 선택 속에서 이루어 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국별 FTA에 따라 각산업별 구조조정 압박은 더욱 거세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미 FTA에서 빠진 영역이나 미진한 영역도 이후 각국별 FTA 체결에 따라 구조조정과 개방을 강요할 것이다. 때문에 한미 FTA만 놓고 산업별 피해대책을 따지는 일은 무망한 일이다. 또한, 한미 FTA는 안되고, 한중 FTA는 되고 하는 식의 선별적 FTA 도입도 비현실적인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각국별 FTA 대응도 한-EU는 공공부문이, 한-일은 제조업이, 한-중은 농업부문이 하는 식으로 따로따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 홍석만, <FTA,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 진보전략회의(준) 진보논평 중

정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경련이 주장하듯, 한-EU FTA를 통해 몇 %의 경제지표 성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자동차 수출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FTA의 미래와 본질은 경제지표와 자동차 수출이 아니다. FTA는 자본의 구미에 맞게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의식까지도 개조(구조조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자본의 마음에 드는, 경쟁력을 갖춘 산업과 기업, 개인만이 살아남는 사회를 만드는 것, 삶과 생존의 기준을 자본을 중심으로 세워내는데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이나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 발표, 그리고 EU가 교육과 의료시장 개방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정부가 "FTA 협상과 별개로 교육과 의료서비스 시장의 자발적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FTA 정국'의 브레이커가 필요하다

때문에 한-EU FTA는 별개의, 독립적인 FTA가 아니다. 한미 FTA의 연장이자 'FTA 정국'의 신호탄이다. 'FTA 정국'을 통해 한국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가장 적합한 형태로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와 자본의 계획에는 국민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생활과 생존에 대한 고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오직 '농업의 피해를 자동차로 보상받는' 식의 인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는 'FTA 정국' 자체에 대한 브레이커가 필요하다. FTA가 결국 국민들의 건강권, 교육권, 환경권, 노동권, 문화권 등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한미 FTA를 계기로 집중했던 시민사회의 역량을 다시 한 번 발휘할 때다. 그리고 이를 통해 FTA가 강요하는 미래가 아닌 '다른 세계'를 위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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