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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 한국의 '블루 골드'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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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 한국의 '블루 골드' 노린다

[한-EU FTA, 공공성을 파괴한다②] 이윤놀음과 생명 사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직후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유럽연합(EU)간 FTA 협상에서는 특히 공공서비스에 대한 유례없는 공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높은 수준의 한미 FTA를 지켜본 EU와 유럽계 초국적 자본들은 이미 그 이상의 FTA를 요구하고 있다.

'최혜국 대우 원칙'을 포함하고 있는 FTA의 속성상 협상 대상국들과 초국적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다시피 더 높은 수준의 FTA를 요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한-EU FTA를 통해 공공서비스가 개방될 경우 미국 자본에도 공공서비스를 개방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미 정부와 관련 연구소, 재계는 EU가 서비스 부문을 지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 의료,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서비스 분야 역시 가능성이 크다. 한-EU FTA가 우려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공공서비스 부문의 대표적인 예는 상수도 자유화다. 초국적 물기업 중 상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의 대다수가 유럽계인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에 상수도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이미 국내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물 사유화' 정책과 결합돼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도 공공서비스가 노출될 수 있다
▲ ⓒwww.craftskills.biz

물 사유화? 많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것이다. 우리의 머릿 속에 '물'이란 공공적 자원을 특정 기업이 독점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석유가 '검은 금'이라 일컬어지듯, 물은 전세계적으로 '블루 골드(푸른 금)'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막대한 규모의 시장에서 초고속 성장을 약속하는 초국적 물기업에 투자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할 정도다. 물 없이는 인간이 생존할 수 없다는 '상품성'을 이용해 이윤을 챙기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물 사유화를 위한 기반 조성은 이미 2001년 시작됐다. 정부는 당시 수도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는 상수도를 수자원공사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고, 2005년 12월과 2006년 6월 각각 수도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민간위탁의 폭을 대폭 넓혔다. 수자원공사뿐 아니라 기준에만 맞으면 누구나 상수도를 운영·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해외 기업도 국내기업과 합작하는 형식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법제도적인 개혁을 기반으로, 현재 전국 164개 지방자치단체 상수도사업 중 9개가 수자원공사에 위탁됐고, 33개가 수자원공사와 민간위탁을 위한 기본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인천시는 2006년 7월 초국적 물기업인 프랑스계 베올리아 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현재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부 "물은 공공서비스 아닌 산업적 서비스"

이처럼 정부는 이제 개별 지자체별 민간위탁을 넘어 범정부적 차원에서 물을 사유화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상태다. 2006년 2월, 산업자원부, 환경부, 건설교통부 공동명의로 발표한 '물 산업 육성방안'의 핵심 내용은 △현재 10조 규모의 물 산업을 10년 후 20조 규모로 키우고 △세계 10위권 물 전문기업을 2개 육성하며 △상하수도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단행하고 △먹는 샘물에 대한 세계적 브랜드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은 "'물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국부를 창출하고, 우리나라 물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하수도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며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상수도를 포함해 물을 상품화, 시장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수도사업 구조개편' 부분이다. 정부는 "상수도가 '보편적 공공서비스'라는 인식은 과거의 패러다임"이라며 "이제는 경쟁과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산업적 서비스'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간위탁을 더욱 확대하고 민간자본의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물 산업 육성방안' 추진과 동시에 한-EU FTA 협상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 법과 제도를 바꾸면서 외국 자본도 자유롭게 상수도에 진출할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EU FTA는 한미 FTA 못지않게 위험하다.

수도법 개정, ISO 국제표준, FTA…상수도 개방을 위한 만반의 준비
▲ 설령 한-EU FTA 서비스 협상에서 상수도가 직접 개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자체적 개혁, 즉 수도법 개정으로 외국 기업도 상수도 위탁운영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에비앙

설령 한-EU FTA 서비스 협상에서 상수도가 직접 개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이미 하수처리의 경우 초국적 기업이 국내 기업과 합작 회사를 설립해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또 한국 정부의 자체적 개혁, 즉 수도법 개정으로 외국 기업도 상수도 위탁운영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수도사업이 서비스분과 협상을 통해 개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간접적 경로를 통해 유럽계 초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관철될 수도 있다. 한미 FTA에서도 그랬듯이 내국민 대우, 투자 및 경쟁, 정부조달 부문 자유화 등을 통해 한국의 공공서비스 부문 진출을 노릴 수 있다.

다른 한편 올해 7월에는 상하수도에 대한 ISO 국제표준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는 상하수도 사업 운영에서 국제적 비교평가가 가능한 단일한 표준을 만들어 각 국가에서 이를 공식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ISO 국제표준은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프랑스계 기업이 상하수도에 보다 원활히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민간기업에 운영을 넘기면 문제가 해결될까?

정부는 한편으로는 상수도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FTA를 체결해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상수도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효율성이 증대할 것이라고 한다. 또 37.7%밖에 안 되는 농어촌 지역 보급률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자체는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기업에 위탁하는 방법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수도에 대한 운영을 기업에 넘기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현재 지자체들은 과도한 수도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상수도 예산을 보조하고 있다. 전국 평균 수돗물의 톤당 생산원가는 680원이지만 요금은 563원을 받고 있다. 톤당 117원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이 운영을 맡으면 손해를 보면서 장사할 리 없다. 수도요금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최초로 수자원공사에 위탁된 충남 논산시 상수도는 1인당 연간 평균 수도요금이 2만1983원에서 2005년 말 현재 3만8482원으로 75% 상승했다.

보급률은 좋아질까? 민간위탁을 실시하고 있거나 계획하는 곳을 보면 농어촌이나 산간 지역은 위탁계획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런 지역 역시 '돈 되는 장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재정부담이라도 줄어들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막대한 위탁비용 때문에 지자체는 더욱 허덕이고 있다. 논산의 경우 위탁비용은 당초 30억이었으나 2006년 말에는 53억으로 76.6%나 상승했다. 게다가 시설투자는 고스란히 지자체 몫이다.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도 물 사유화 계획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공공부문을 사유화하는 목적은 효율성을 개선한다는 미명 하에 기본적으로 비용, 특히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데 있다. 하수처리, 쓰레기수거, 검침 등 지자체가 담당하던 여러 업무를 현재 위탁하거나 외주 용역화하고 있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당하고 비정규직화되고 있다. 장기간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쌓아 온 상수도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등 고용불안정도 닥쳐 올 것으로 예상된다.

물 사유화·FTA 막고 공공적·친환경적인 대안 고민하자

물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자 생명 그 자체다. 그렇기에 상수도에 대한 공공적 소유와 운영, 통제가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에 대한 민간위탁, 외주용역, '구조개편'과 경제적 효율성에만 혈안이 돼 있고, 국민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 FTA를 체결하겠다는 정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물론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 상수도에도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 '물 양극화'가 여전히 심하고 돈이 없어 시설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물을 기업에 넘기고 이윤놀음에 내맡겨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공공적이고 친환경적인 대안이다. 수돗물의 질을 향상시키고 시민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조치, 농어촌 지역이나 빈민층에 대한 보급률 확대와 지원, 노후관 교체와 시설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예산 배정, 상수도 사업에 대한 민주적인 운영, 공공적 통제 및 규제 시스템 구축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국회에 물산업육성법(가칭)을 상정하고 법제화한다고 하며, 한미 FTA 체결과 국회 비준 동의, 한-EU FTA 협상을 조속한 시일 내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물 사유화와 FTA의 본질에 대한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설 때다.

* '물사유화 저지·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행동'은 현재 28개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정당 등으로 구성됐다. 2006년 9월에 출범해 지역별 순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공공적 수도사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사업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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