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30일 독자세력화의 깃발을 든다. 손학규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은 이날 발족식을 갖고 중도노선에 동의하는 정치권 안팎의 세력규합에 나설 예정이다. 한나라당 탈당 40여 일만에 손 전 지사가 대선 행보를 본격화함에 따라 4.25 재보선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은 범여권의 대권경쟁에 미칠 파급력이 주목된다.
화두는 '새로운 중심'
4.25 재보선은 손 전 지사에게 재기의 활로를 열어줬다는 평가가 많다. 한나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확인된 점은 그의 한나라당 탈당의 정당화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손 전 지사 측은 "한나라당의 구태적인 정치행태에 대해 국민들이 심판을 해야 한다는 민의가 담긴 것"이라며 "탈당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 게 아니냐는 평가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노비한(非노무현-非한나라당)'으로 설명되는 제3지대 깃발 꽂기 경쟁에서 손 전 지사의 움직임이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전 지사는 선진평화포럼 발족식에서 '새로운 중심'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지사 측은 "4.25 재보선에서 무소속이 대거 당선된 것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세력과 새로운 중심에 대한 갈망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손 전 지사는 당분간 범여권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한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정치권 외곽의 유력주자들을 대상으로 공생관계 형성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 전 지사 측은 "새로운 정치세력에는 정운찬 전 총장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며 "새로운 정치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는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기존 대선주자들과 중진들이 추진하는 '대선후보 연석회의'나 정동영 전 의장이 은연 중 강조하는 소위 '정(동영)-정(운찬)-손(학규)' 연대보다는 '손학규-정운찬 2강 연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손 전 지사는 30일 지식인 중심의 선진평화포럼 발족에 이어 5월말이나 6월초 께 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 인사들을 모아 '선진평화연대'를 출범시켜 전열을 가다듬은 뒤, 범여권의 대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DJ와 거리좁히기
이에 따라 선진평화포럼의 발족은 손 전 지사의 이 같은 계획의 첫 단추 끼우기로 볼 수 있다. 발족식에는 탈당 직후 만난 김지하 시인, 박형규 목사를 비롯해 소설가 황석영 씨, 만화가 이현세 씨, 화가 임옥상 씨 등 교수, 문화예술인, 전문가, 기업인을 중심으로 7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포럼은 미리 배포한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아직도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잣대로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재단하고 있다"며 '정치적 중도'를 표방하는 한편 "아직도 지역주의라는 구태정치가 활개치고 있다"고 한나라당과 범여권의 지역기반 정치를 비판했다.
'외곽 지원부대' 발족과 함께 손 전 지사의 정치적 행보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 전남대 특강(5월1일)을 비롯해 대구(2일)와 부산(3일) 특강 등 대도시 특강정치 일정이 빼곡하다. 광주에선 '중도세력의 기득권을 버린 통합'을 역설하는 한편, 대구와 부산에선 지역주의를 비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달 9일부터는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계획도 잡아놨다. 그는 '동아시아미래재단'과 북측 민화협이 주최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토론회'에 참석해 최근 그가 강조해 온 '한반도 평화 경영전략'을 주장할 예정이다.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햇볕정책 계승을 고리로 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거리 좁히기'로 보는 해석이 적지 않다. 특히 4.25 재보선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일정부분 확인된 데에다 DJ의 정치노선인 '중도통합'이 손 전 지사의 중도노선과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다분하다.
선진평화포럼도 창립선언문에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는 감성적 민족주의나 이념적 대결주의의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는 안으로는 우리 경제의 제2의 도약을 위한 주춧돌이고 밖으로는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적 당위"라고 강조했다.
정운찬은 문국현에 관심
하지만 이같은 손 전 지사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손학규 시나리오'의 키는 현재로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운찬 전 총장이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후계구도 구축에서 궁극적으로 손 전 지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그리고 정운찬 전 총장이 손학규-정운찬 연대에 가담할 것인지 등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 전 총장은 기존 정치인들과의 연대보다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외부의 신흥주자들과 손잡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범여권의 대선체제 정비 과정까지는 한 발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손 전 지사의 처지에선 독자세력화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얻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김부겸 의원 등 일부가 친(親)손학규 인사로 분류되긴 하지만 범여권 내의 손학규 지지파는 아직까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손 전 지사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 데에는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가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이 후유증을 봉합하고 전열을 정비해 낼 경우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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