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사장에게 '혼'은 전혀 새로운 용어가 아니지만 그가 요즘 부쩍 강조하고 있는 '과거와의 단절'을 매개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보였다.
그가 "개발독재와 시멘트, 부동산 거품, 양극화로 정의된다"고 한 과거는 "자산축적은 되지만 소수에게 집중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시멘트보다는 사람의 창조력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인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시멘트로 상징되는 개발주의의 연장선 상에 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한 말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국가의 조직과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일자리와 복지, 중소기업에 둬야 한다"며 "과거처럼 학연과 정실에 의해, 정략적 수단에 의해 21세기 한국경제를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구(舊)여권의 대선 전망에 대해서도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문 사장은 "누가 누구를 이길까에만 관심이 있지 어떻게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단절할지가 부족하다"며 "불신이나 무능으로부터 단절시켜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여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정치권의 문턱은 아직 높아 보였다. 정치권의 러브콜에 대해선 "내가 경제인이고 시민운동을 20여 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면서 직접적인 정치참여 여부는 "세상을 쉽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거리를 뒀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정책적 조언자"로 규정했을지언정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특히 "과거로부터 단절하려고 할 때 너무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려고 한다거나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은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면서 "국민적 기대를 활용하려면 신뢰받는 그룹과 창조적인 전문가 그룹이 힘을 합해야지 한두 사람에 의존하는 재래식 방식, 만병통치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책적 조언자' 이상의 역할로 넘어설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그는 특히 "국민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식상한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역설했고, "우리 국민은 훨씬 현명한데 지도자들이 20세기 형 성장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밋빛 홍보하던 사람들은 1년 뒤 국민들을 어찌 대하려고…"
한미 FTA는 올해 대선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사장은 "지금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식상한 정치가 아니라 경제인데 한미 FTA로 만일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면 어떻겠느냐"며 "현명한 국민들은 이를 선거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통합적 리더십 속에서 새로운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란 "통상만이 아닌, 문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라며 "혼이 있는 경제를 이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미 FTA 협상 자체에 대해선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쟁력인데 경쟁력 강화도 없이 마치 미국이 우리 혼자만의 시장이 된 것처럼 몰아가면 1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수입이 더 많지 수출이 얼마 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며 "장밋빛으로 좋은 점만 홍보하던 사람들은 그때 국민들을 어떻게 대하려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다들 중국과 일본보다 관세 측면에서 유리하게 진출한다는 이야기만 하지 준비 안 된 우리 쪽으로 얼마나 많은 미국 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올지를 얘기하지는 않는다"며 "한미 FTA로 대미 무역흑자가 적자로 바뀔 것이 확실해지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우려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 사장은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의 대내적 협상 실패로 인한 국론 분열을 우려했다. 그는 "국가적 분열과 혼란 때문에 향후 10년 간 2%라는 GDP 상승효과는 상쇄될 수 있다. 플러스보다 마이너스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농업과 농촌은 문화적, 역사적, 생태적 가치이자 우리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고향이 조금 어수룩해 보인다고 이를 버리는 쪽으로 간다면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다만 향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착실한 준비를 전제로 일부 제조업 분야의 관세인하 효과에 따른 기회요인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에 대해선 "우리가 사생결단 식으로 개성공단 문제에 국민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 미국이 북미수교를 검토하는 판에 거절할 명분이 없어진다"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도약하게 되고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가고 외교적 위상이 공고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음은 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 일문일답.
"한미FTA,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큰 문제 생길 것"
프레시안 : 최근의 현안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미 FTA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문국현 : 우리는 무역을 통한 수출 지상주의로 살아 왔다. 그러다보니 내수산업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농업도 포함될 가능성이 많다. 농업은 특수성과 지역성이 있다. 그 국가만의 문화적 가치와 생태적, 환경적 가치가 큰 곳이다. 이것이 자칫 수출지상주의 때문에 희생될 수가 있다. 앞으로 8~10개의 FTA가 남아 있지만 농업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게 이번 한미 FTA가 아닌가 싶다.
농업은, 농촌은 문화적, 역사적, 생태적 가치이자 우리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고향이 조금 어수룩해 보인다고 이를 버리는 쪽으로 간다면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긴다. 근본이 흔들리는 문제다. 이를 도외시하고 수출만 본다면 그렇게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국론이 크게 분열할 수 있다.
다만 중국, 일본과 미국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제조업 등은 관세혜택 면에서 일본과 중국에 3년가량 앞서는 효과를 가져온 점이 있다고 하니 한미 FTA는 위기이자 기회다.
위기 부분을 잘 다스려야 한다. 국내적 대화와 협상을 통해 혜택 받는 산업과 피해를 입는 산업 사이에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들어가는 미래위원회에서 농업과 농민, 농촌, 그와 연관된 복합적 가치를 지키는 전략과 방안을 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다른 FTA 체결할 때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미래위원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기회 쪽은 개성공단을 완전히 배제시키지 않아 원산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점이다. 원산지를 인정받는다면 이는 미국이 인정하는 남북경제협력이 되는 것이고, 북미수교로까지 이어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군사적 대치관계를 풀고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이 경제협력을 이루는 게 아주 중요하다. 러시아와의 자원협력까지 합쳐 남.북.미.일.러의 새로운 경제협력 체제를 만들면 효과가 크게 된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도약하게 되고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가고 외교적 위상이 공고해지는 효과가 있다. 북한이 확실히 비핵화를 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질 때 개성공단은 빛이 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미래위원회는 문 사장의 제안인가?
문국현 : 우린 늘 경쟁력 위원회나 사회갈등 조정 위원회에 많이 참여해 왔다. 입법만 하는 국회의 위원회와는 달라야 한다. 국회의 많은 분들이 참여하되 더 큰 측면에서 피해산업과 수혜산업을 조율하는 방법이 뭔지 찾아야 한다. 앞으로 8~10개 남은 FTA를 앞두고 부실했던 내부 협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범국민적인 전문가 참여가 필요하고 그런 일이 있다면 나도 당연히 참여할 것이다.
프레시안 : 개성 공단 문제에 대해선 당초 기대수위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있는데.
문국현 : 아예 협상에서 빠진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역외가공위원회가 없으면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있음으로 개성이든 나진, 선봉, 고성, 신의주, 남포 어디든 논의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 우리가 사생결단 식으로 개성공단 문제에 국민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 미국이 북미수교를 검토하는 판에 거절할 명분이 없어진다. 그 혜택은 전 세계 소비자가 같이 받는 것이다.
"노대통령, 목표달성 과정에서 아쉬움 많이 남겨"
프레시안 : 국론 분열에 대한 우려가 큰 것 같은데 국내 협상의 실패가 향후 어떤 상처를 남기게 될까?
문국현 : 농촌의 복합적 가치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이나 보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분열로 가는 길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분열의 효과는 대외경제협력연구원에서 예상한 향후 10년 간 2%의 GDP 상승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2%라는 것도 매년 5~8%를 성장해야 하는 판에 작은 수치다. 국가적 분열과 혼란 때문에 2%는 상쇄될 수 있다. 플러스 효과보다 마이너스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절차와 내부 협상이 중요했던 것이다. 혜택 받는 사람과 피해 받는 사람 사이의 대화와 조율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또한 내용은 시장의 문이 열린 것인데 장밋빛 홍보만 했다. 일부 분야에서 관세인하 효과가 있지만 중국은 아직도 우리보다 20~30%가량 가격경쟁력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한미 FTA가 돼도 중국과는 여전히 가격 갭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쟁력인데 경쟁력 강화도 없이 마치 미국이 우리 혼자만의 시장이 된 것처럼 몰아가면 사람들은 정말 그런 줄 안다. 1년이 지나면 수입이 더 많지 수출은 얼마 늘지 않았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장밋빛으로 좋은 점만 홍보만 하던 사람들은 그때 국민들을 어떻게 대하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다들 수입 쪽은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보다 관세 측면에서 유리하게 진출한다는 이야기만 하지 준비 안 된 우리 쪽으로 얼마나 많은 미국 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올지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는 수입만 폭증하지 수출이 줄면서 대미 무역적자가 2008년부터 확 늘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대미 무역흑자는 160억 불밖에 안 된다. 중국 만해도 1800억 불, 독일은 2100억 불의 무역흑자가 난다. 한미 FTA로 우리나라에서 대미 무역 흑자가 적자로 바뀔 것이 확실해지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만약 국론 분열의 상처가 잘 치유되지 않는다면 다음에 추진하는 FTA에 대해서도 극단적 거부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적 대화와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이 알아서 다 따라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는 안 된다. 통합적 리더십 속에서 새로운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로 가는 길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역풍이 불 수 있다.
프레시안 : 경제적 가치만 따져도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는 것 같다.
문국현 : 많은 분들이 경제적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기적으로도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날 것 같다.
프레시안 : 국민적 설득도 충분하지 못했고, 경제적 이익도 확실하지 않은데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한 배경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문국현 : 미국 의회가 정부에 부여한 스케줄에 쫓겨 간 게 원인이다. 또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샌드위치 상황에 대한 압박이 컸던 것 같다. 2~10%가량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대일본, 대중국 선점 효과를 보려한 것 같다. 그런데 시간에 쫓기다보니 대내 협상이나 업종 간 조율, 준비해야 할 것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집토끼부터 지키고 바깥 토끼 잡으려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목표 지향적인 분이다보니 목표달성을 위해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프레시안 : 김영삼 정부 시절 OECD 가입 때와 비교해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문국현 : 그 때는 해외 진출 기업들이 대거 실패했고 때마침 일어난 일본의 금융위기로 인해 일본이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에 투자한 돈을 급속히 회수해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외채도 적고 기업은 100조가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 걱정은 국내의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91년부터 13년간 지속됐던 부동산 거품과 금융의 위기가 소비의 급속한 감축으로 이어지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다만 부동산 거품을 빼고 보면 한미 FTA는 OECD 가입 때보다는 좀 낫다. 많은 제조업들의 기회를 어떻게 극대화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노력을 보인다면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단점은 단점대로, 피해는 피해대로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건 식상한 정치가 아니라 경제"
프레시안 :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를 이끌 통합적 리더십을 강조했는데, 이런 리더십의 요건은 무엇이 될까?
문국현 : 물자 중심적 개방만을 강조하고, 수출을 많이 높이려고만 해선 안 된다. 고부가가치, 예컨대 디자인이 수준 높은 제품이 나와야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코리안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존경받는,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친화적이면서 인권 침해가 없는 제품이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통상만 가서는 안 되고 문화가 뒤따라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세계의 글로벌 트랜드와 이슈를 우리가 선점해갈 수 있는 투명성이 관건이다. 지식 근로, 혼이 있는 경영, 혼이 있는 경제를 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구촌 전체의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공동 대처한다든가, 생물 종 다양화나 사막화 진행에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갖춰가면서 개방하고 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적 리더십 없이 그냥 개방만하고 통상만 하는 것으로는 존경받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프레시안 : 한미 FTA가 올해 대선일정과 맞물려 있어 조금 더 민감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올해 대선에서 이 문제가 국민들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문국현 : 그렇다. 지금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식상한 정치가 아니라 경제다. 쉽게 말하면 일자리를 누가 더 만들어낼 것인지, 누가 경제사회의 양극화를 완화시킬지, 젊은이들이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용기를 갖게 하는지 등이다.
그런데 한미 FTA로 만일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면 어떻겠나. 실제로 일자리 증대 효과는 적다. 앞으로 남은 몇 개월 사이에 실망으로 바뀌면 한미 FTA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주 대처를 잘해 나가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입품을 최소화 하는 반면 수출이 중국과 일본을 어느 정도 따돌린다면서 3~5년을 거치면 일부 상승기를 맞을 수도 있다. 앞으로 대선까지 8개월 동안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명한 국민들은 이를 선거에 반영할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대선에서 문 사장의 역할이 관심 중의 하나다. 일단 '정책적 제안자'의 역할은 하겠다고 했는데?
문국현 : 시민운동을 20여 년 간 해 왔다. 시민운동에는 홍보도 있고 시민참여도 있지만 외국의 앞선 제도라든가 정책을 연구해서 한국 형편에 맞게 적용하는 것도 있다. 그런 것을 계속 하겠다는 의미이다.
프레시안 : 올해 대선에서 이것만큼은 반영하자고 하는 정책이 있다면?
문국현 :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흘러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누구를 이길까에만 관심이 있지 어떻게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단절할지가 부족하다. 불신이나 무능으로부터 단절하고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나갈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로 돼 있다. 100대 대기업만 있어서 뭐 하나. 법적 대기업을 다 합해봤자 130만 명에 불과하다. 2000만 명 이상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있다. 지금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대기업은 초국적 기업이 됐다. 유한킴벌리만 해도 24~25개국에 수출한다. 삼성과 현대도 마찬가지다. 초국적화된 기업은 다 큰 아들과 같다. 아직 공부가 안 끝난 자녀인 중소기업에 신경을 써야 한다. 중소기업에 2000만 명 이상이 있는데 생산성은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되니 위기 아닌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늘리려면 전국가적 노력을 통해 생산력을 갖게 해줘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럼 어디에 물건을 파느냐고 되묻는데 팔 곳은 세계시장이다. 팔 데가 없어서 생산성을 높이거나 고부가가치로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과거에 매달리거나 옛날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생각은 빨리 버려야 한다. 새로운 지식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가 육체 기반, 시멘트 기반이라면 21세기는 창조성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끌어가야 한다. 중소기업과 젊은이들의 국제 경쟁력을 2배 이상 높여줘야 한다.
프레시안 : 범여권은 외부의 후보들이 무언가 정치적 결단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역할을 해 볼 의향이 전혀 없나?
문국현 : 정치는 경제보다는 복잡한 것 같다. 그래서 잘 모른다. 다만 일반 유권자나 시민의 한사람으로 말한다면 과거 방식을 단절하겠다는 의도는 좋은 것 같다. 과거 방식이란 경제사회의 양극화를 강화하고, 부동산 거품만 늘리고,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고, 젊은이들이 좌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단절하고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용기까지는 좋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부패, 불신, 무능, 분열이라는 과거를 단절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있는지 모른다. 일부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는 정말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보자고 한다. 과거에 끌려가는 방식에 한국의 미래를 맡기는 것보다 21세기의 창조적 변화를 이끌어보자는 것이다.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시민사회나 학계의 의지는 좋다고 본다.
다만 그런 것을 할 때 너무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려고 한다거나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은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사람들이, 통합적이고 창조적 리더십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과거 방식으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면 그게 과연 몇 달이나 갈까. 옛날식 관성의 노예가 될 것이다. 과거 지도자들을 보면 모두 개인은 훌륭했는데 나중에 보면 성과는 높지 않은 경우 많았다. 관성의 포로가 돼서 그렇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에서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 국민적 기대를 활용하려면 신뢰받는 그룹과 창조적인 전문가 그룹이 힘을 합해야지 한두 사람에 의존하는 재래식 방식, 만병통치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 생각한다.
"국민은 현명한데 지도자가 20세기형"
프레시안 : 올해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국현 : 과거는 개발독재와 시멘트, 부동산 거품, 양극화로 정의된다. 자산축적은 되지만 소수에게 집중되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악화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21세기는 전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보니 지식 경제가 필요하고 혼이 있어야 한다. 시멘트보다는 사람의 창조력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다. 대기업의 규모나 경직성보다 중소기업의 다양성과 창조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잘 읽는 사람은 딱딱한 데 투자하기보다 혼이 있는 경영, 창조경영과 창조 경제에 국민적 노력을 기울이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최근 정치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청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문국현 : 정치권에 제 친구들이 수십 명이 있다. 학계에서 들어갔거나 기업에 있던 친구, 시민운동 하던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보다 만나는 빈도가 5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만나면 정치적 해석을 하니까 그렇다. 지난번엔 오랜 친분이 있어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났는데 (언론이) 이상한 관심을 갖더라.
프레시안 : 사적인 만남일 수도 있지만 문 사장의 도움과 역할을 요청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듯한데.
문국현 : 이 사람들이 장난하는 건지, 언론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신뢰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경제인이고 시민운동을 20여 년 한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과거와 체계적 단절이 필요하다고 하고 이 사회를 미래 지향적인 세계적 개방형 통상문화국가로 만들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이 왜 가만히 있느냐고 한다. 또한 유한 킴벌리가 신뢰의 상징이어서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세계적 기업과 경쟁해서 수입품을 다 몰아낸 유일한 기업이고, 우리 제품이 아시아 23개국에 확장되는, 세계화 장점만 이루는 회사이니 시민사회에서도 노하우를 좀 공유하자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쉽게 보는 사람들 이야기인 것같다.
프레시안 : 정말 농담으로만 받아들이나?
문국현 : 하도 갑갑하니까 술자리에서 하듯이 도와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도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 있나. 친구 만나면 다들 도와달라고 하지.
프레시안 : 정치권이 과거와 체계적 단절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미숙한 구석,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는 모습도 보인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이고, 과거와 체계적으로 단절하는 방법을 정치권에 조언한다면?
문국현 : 독일 총리인 엥겔라 메르켈이 이야기했듯이 국가적 아젠다 세팅이 필요하다. 국가적 관심의 최우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메르켈은 일자리 창출이 지상과제라고 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500만 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없어지고 고용률이 올라가고, 평생학습과 지식기반 사회의 창조경제로 간다. 그런 방식으로 국가적 방향설정을 잘해야 한다. 지식경제, 창조경제, 혼이 있는 경제로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옛날에 국가가 대기업을 도와주듯이 중소기업을 도와주면 우리 중소기업들을 독일과 일본의 중소기업처럼 발전시켜 갈 수 있다. 그런 비전과 사명감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세계화를 통해서만 많이 배우고도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젊음과 혁신역량을 바칠 데가 생긴다.
그러려면 정부가 먼저 모든 국가의 조직과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일자리와 복지, 중소기업에 둬야 한다. 중소기업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건 대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다리가 하나뿐인 우리나라에 두 다리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부만 하기엔 부족하니 기업도 과거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거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인권과 노동권 존중, 환경보호, 반부패 등 4대 방침은 세계 경제포럼과 유엔이 2000년부터 전개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책임에 기업이 적극 참여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처럼 학연과 정실에 의해서, 정략적 수단에 의해서 21세기 한국 경제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끌고 갈 수는 없다. 우리 국민은 훨씬 현명한데 지도자들이 20세기 형 성장 전략을 쓰고 있다. 이제 21세기형 경제, 혼이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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