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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봄'은 대추리를 피해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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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봄'은 대추리를 피해갔는가?"

[아! 평택] 80년 '서울의 봄'보다 짧았던 '대추리의 봄'

일 년 전 이맘때, <프레시안>에 '봄을 지키기 위해, 들을 빼앗길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영농발대식을 하고 모판에 상토를 담던, 그때 이야기였다. 곧 행정대집행이 들어온다는 흉흉한 소문은 돌았지만 들을 지키는 것이 투쟁이니까 열심히 농사 지을 준비를 하자, 그렇게 들떠 있던 시간이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르자 명치가 뻐근하고 심장부근에 저릿한 통증이 다가온다. 미치도록 지키고 싶었던 그 봄…, 아니 그 들을 이제 바라볼 수조차 없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용산 미군기지가 서울을 떠납니다. 진보진영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평택기지 건설을 반대해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이를 지원했습니다. 주한미군 나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고 가능한 일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유렵순방을 떠나기 전 작성했다는 청와대 편지의 한 구절이다. 진보진영이 무조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려고 타당하지도 않게 평택미군기지이전을 반대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4년 동안 예순이면 젊다할, 칠순 팔순의 노인들이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고 외쳤던, 전 세계 양심들이 전략적 유연성에 근거한 전쟁기지 총집결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전혀 들어보지 않았나 보다.

"저는 흔히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불만을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떻든 이것은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보기에는 이 모두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까?"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표현도 썼다. 하지만 대추리가 대한민국 지도에 없는 마을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곳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자랑스러워할만한 민주주의는 없었다. 그것이 절차적이든 내용적이든 대추리는 '여명의 황새울'로 대변되는 국가폭력만이 횡행하는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2006년 '대추리의 봄'은 1980년 '서울의 봄'보다 훨씬 짧은 시간동안만 유효했다.

참여정부가 파괴한 대추리의 봄, 그 민주주의에 대해
▲ 2006년 5월 평택 황새울 들판 ⓒ프레시안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한미동맹은 정부수립이래 단 한번도 도전받지 않은 국시였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은 용공으로 내 몰렸고, 일가친족까지 연좌제로 꽁꽁 묶여 처벌받아 왔다. 그래서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총집결하고, 옮겨오는 기지의 성격이 '동북아 전쟁'에 사방팔방 끼어들 수 있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의한 것이라, 평화적 생존권을 부인 당한다 할지라도 이를 반대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정부, 여당, 야당까지 모두 한 목소리가 되었다. 국시를 어기는 것은 '반역'이고 이를 도모하는 것은 '역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2006년 5월 국방부장관은 "정부가 주민들과 150여 회에 달하는 대화를 했으며, 김지태 위원장을 비롯한 범대위 간부들과도 38회에 걸친 대화를 진행하는 등 충분히 노력해 왔다"고 밝혔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2004년 미2사단과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문제가 여론화 되면서 국방부 장관과 면담 요청을 했지만 이에 대해 국방부는 '평택시장, 시의회의장, 지역 국회의원 등과 면담해 평택시민의 뜻을 전달 받았기 때문에 모든 단체의 면담 요청을 일일이 수용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내 왔다. 주민들과 면담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사업은 같은 해 8월, 349만 평에 대한 수용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완결되었다.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간절함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과 시장, 지방정치인들의 결정과정에 단 한 번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는 해당 지역 주민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국가폭력의 종합선물세트
▲ ⓒ프레시안

주민들의 반대의사에 부딪히자 국방부는 형식적 공청회와 이주대책 주민 설명회를 강행했다. 그 이후 정부는 주민들과의 대화를 약속한 순간에도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행정대집행 예행연습을 진행했다. 그리고 3월과 4월, 수천 명의 경찰과 용역직원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이 시작됐고 급기야는 5월 4일, 80년 광주항쟁 이후 처음으로 군인에 의한 대민간인 체포 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동원된 경찰이 1만 2000명, 철거전문 용역 1500명, 특공대를 비롯한 군 병력 3000명이었다. 이들은 대추초등학교를 완전히 파괴하고 논에 철조망을 쳤다. 그리고 논두렁을 경계 삼아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선포하고 황새울 일대 285만 평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여명의 황새울' 작전은 마구잡이 연행, 무방비 상태의 여성들을 포함한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테러, 성추행 등으로 국가폭력의 종합선물세트가 됐다. 이날과 다음날 연행된 이들은 630명,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부상자만도 200여 명에 이르렀다. 주민대표인 김지태 이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주민들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했다. 이장 집 우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올랐고 도두리 마을에는 군인들이 마을 수도를 끌어들여, 단수사태가 벌어졌다. 군인들은 소송이 끝나지 않은 비닐하우스를 부수며 집주인의 접근을 막았다.

그 사이에도 수십 대의 포크레인이 논을 파괴했고 군 헬기는 저공비행으로 마을 상공을 비행했다. 사복형사들은 무리지어 마을을 사찰하고 다녔으며 주민들을 협박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그리고 사태해결을 위해 제 발로 걸어 간 주민대표 김지태 이장을 구속, 이주협상 타결 전까지 정치적 미끼로 이용했다. 마을 고립을 작정한 경찰은 마을 입구 3곳에 검문소를 설치,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는 구실로 주민들과 가족들의 출입까지 빈번하게 통제했다.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한 짓은 야만 자체였다.

부정당한 평화적 생존권
▲ ⓒ프레시안

대추리 주민들은 일제시대, 미군정 시절 두 차례나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땅을 빼앗겼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 국책사업의 피해자가 되어 집단적 이주를 당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 온 대로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며 살고자하는 생존방식을 부정당했으며 수십 년을 이어 온 농촌 공동체는 이주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국방부의 이간질로 파괴됐다.

그러나 위협받는 평화적 생존권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인 평화적 생존권은 평택미군기지에 배치되는 신속기동군 형태의 주한미군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주한미군이 중국을 겨냥하고 동북아 지역의 분쟁에 개입할 경우,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정부는 전쟁을 통해 얻는 국익이 무엇인지, 그것이 전쟁위기에 노출된 국민들의 평화보다 앞서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스스로 민주주의가 된 주민들과 지킴이들
▲ 경찰과 군은 평택 들판에 깊게 골을 파고 그 안에 철조망을 집어 넣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프레시안

국가에 의해 부정당한 민주주의는 주민들과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은 이들의 연대에 의해 지켜졌다. '올해도 농사짓자'가 구호가 되었던 지난 세월의 투쟁은 민주주의의 학교와 같았다. 삶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빈집을 치우면서 이주한 이들이 생겨났고 멀리 프랑스에서, 또는 미국에서, 일본에서 보내온 연대의 메시지는 황새울을 끊임없이 울렸다. 체포와 연행, 구속을 각오하고 마을로 들어선 이들은 논을 파헤치는 포크레인 위에 올라섰고, 수로를 막는 레미콘을 세웠다. 주택을 철거하기 위해 2만 명의 경찰이 마을에 들어 왔을 때, 옥상에서 자기 몸에 쇠사슬을 감고 마을을 지켰던 이들의 간절함은 무엇보다 강했다.

마늘을 심고 농사를 짓는 것이 생존의 이유였고 투쟁의 근거였던 대추리에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싹을 틔웠다. 1000일을 하루 같이 촛불을 밝힌, 평범한 이들의 가르침은 이 시대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 보상도 무엇도 아니고 내가 살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소박한 소망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한미동맹의 사슬을 멈추게 했었다. 그래서 이미 이 싸움은 이긴 것이다. 주민들이 노화리와 송화리로 이주하고 황새울에 더 이상 벼가 자라지 않는다 한들,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비행기 활주로가 될지 모를 황새울에, 그러나 봄은 찾아올 것이다. 파괴된 수로에 벼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날아온 들꽃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들판을 훨훨 태우는 노을을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붉은 노을은 대지를 적실 것이다. 참여정부가 파괴한 대추리의 봄, 그 민주주의를 지킨 주민들의 소망은 대추리를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울려 퍼질 것이다.

명예로운 사회가 되느냐 진지하지 못한 사회가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떤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지 않는다. 사회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역사 속에서 우리가 그것을 형성해 가는 과정 안에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윤리적인 책무가 있다.

투쟁은, 오늘에 만족하면서 미래의 도래를 가능한 지연시키고 어떠한 실질적 변화라도 가로막으려 애쓰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오늘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열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다.

-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파울로 프레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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