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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단식? FTA가 몰고 올 고통보단 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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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길 위의 단식? FTA가 몰고 올 고통보단 덜해"

[한미FTA 뜯어보기 193 : 현장] 민노당 의원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 9명이 한꺼번에 노상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언론들은 이들이 왜 단식을 하는지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는 '민노당 또 명의이전 편법시위'란 기사에서 한 줄, <동아일보>는 '범국본 오늘 민노당 집회 끼어들땐 강제해산'이란 기사에서 한 줄 언급했으며 <조선일보>는 '민노당, 또 단식 농성인가'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에서 이를 비난했을 뿐이다

지난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비리 특별검사제 도입을 거부한 것에 반발해 단식투쟁을 했을 때, 최 대표의 특별기고까지 받아가며 관심을 보이던 때와는 너무 다르다.

한미 FTA 6차 협상이 진행되면서 당국이 '신금융서비스' 시장이 개방되고 무역구제 분과를 사실상 포기하는 등 미국 측이 요구한 협상시한인 2-3월 타결을 위해 졸속협상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의원 9명 전원이 협상장인 신라호텔 근처인 장충체육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언론의 무관심과 한미 FTA 협상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17일 오후, 농성장을 찾았다.

권영길 "우리의 공무집행 방해에 대해서도 사과하라"
▲ 한미 FTA 6차 협상 둘째날인 16일 오전 협상장이 마련된 장충동 신라호텔 앞 길위에서 단식농성중인 민노당 의원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노숙 단식 농성 3일째. 이들은 경찰과 경찰버스에 첩첩이 둘러싸인 채 서울 남산 밑 장충체육관 앞 공터에 앉아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10여 대의 경찰버스에서는 끊임없는 엔진소리와 함께 매연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당초 신라호텔 로비에서 농성을 진행하려던 의원들은 경찰에 의해 쫓겨나 신라호텔이 코앞에 보이는 이 곳에 침낭을 깔았다.

"이것 참, 국회의원도 별 것 아니네요. 허허."

지지방문을 위해 농성장을 찾은 한 방문객이 멋쩍은 농담을 건네며 의원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의원들의 어깨가 웃음으로 잠시 들썩였다. 6차 협상 개시와 동시에 그나마 풀린 날씨였지만 찬바람은 여전했다. 몸이 얼어붙을만도 한데, 방문객들과 담소를 나누는 의원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권영길 의원은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별 것 아니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두번 해본 단식도 아니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도 곁들였다. 그가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짚은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번 우리의 연좌 농성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회의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을 방해받은 것은 엄연한 공무집행 방해라는 점입니다. 흔히 정부가 하는 말처럼 우리도 공무집행을 방해받았습니다. 책임있는 정부당국자가 사과해야 할 문제예요.

둘째로 기존의 주도 언론들, 스스로 메이저 언론이라 칭하는 방송이 FTA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모든 통로가 막혔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그 통로를 봉쇄하고 있어요. 영화인, 농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개진도 막고 그들이 만든 광고까지 제지하고선 일방적으로 방송과 신문을 통해 자신들의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운동의 의미는 효과로 따질 수 없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노회찬 의원 역시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집회도 못하게 하고 기자회견도 못하게 해요. 유신 반대를 탄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농성을 진행 중인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한미 FTA 협상 개시 이후 FTA에 반대하는 이들 역시 끊임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라는 이름 아래 모인 전국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을 '불법집회 참가단체'로 몰아세웠을 뿐이다.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개진된 의견을 청취한 것도 아니었다. 정부는 협상 체결에는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대화 요구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민노당 의원들의 이 같은 노력도 정부의 태도를 얼마나 변하게 할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기자의 우려에 대해 노 의원은 "운동의 의미는 효과로 따질 수 없다"며 잘라 말했다.

"역사는 한번 어떻게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3.1운동과 4.19항쟁이 무슨 의미였습니까. 쉬운 길이 아닙니다. 밤낮 쉬운 길 가는 사람들이 어려운 길 가는 사람을 괴롭히는 꼴입니다. 이 정도의 희생과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미 FTA가 잘못 체결됐을 때 당하는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요."

심상정 "민생을 잡겠다던 한나라당, 뭐하고 있나?"

심상정 의원 역시 "힘들어도 FTA가 졸속 체결될 때 겪을 고통과 아픔에 비한다면 국민의 대표로서 이 정도의 어려움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뉴시스

"지금 이 시점에서 협상은 막바지로 가고 있고, 고위급 협상에서 비밀리에 백기투항식 타결이 염려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은 개헌 등 다른 문제에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고 졸속 타결을 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한미 FTA 체결에 경계심을 갖도록, 또 반대와 비판의 입장에 선 국민들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단식을 결정했어요. 이 시점이 투쟁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심상정 의원은 정책 감시 활동에 앞장서야 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태도가 어이없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지난 15일 논평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여러 개로 쪼개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민노당의 무책임한 분신술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16일 진행된 민노당의 FTA 반대 집회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12월 이후 경찰이 "범국본 명의로 개최하는 집회는 모두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뒤 한미 FTA를 반대해 왔던 민노당은 자신들의 명의로 집회를 열었고 범국본은 같은 자리에서 연이어 집회를 개최했다.

"한나라당은 불법 집회의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반응 자체가 국민들의 민생을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미 FTA는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현안인데 민생을 잡겠다는 제1야당을 포함해 다른 대선 후보로 대두되고 있는 이들도 FTA에 대해 한마디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어요. 한나라당은 스스로 능력없는 정당임을 자인하는 것이고 민노당에 대한 반응은 적반하장의 태도죠."

천영세 "방송 개방, 중요성 비해 가볍게 치부되고 있다"

천영세 의원 역시 다른 당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그가 속한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조창현 방송위원장에게 "FTA에서 방송 개방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문했다. 그러나 의원 개개인의 주장에 그쳤을 뿐 실질적으로 각 정당의 입장 변화는 전무했다.

"총체적으로 FTA를 바라보고 그에 대한 방침이 어떤건지 세워야 되는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아무런 당론이 없습니다. 의원 자신의 생각이 있으면 동료를 만나서 설득하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저 정치공세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예요.

일반 국민들도 관심 갖는 쪽이 주로 쇠고기, 자동차, 개성공단, 섬유 부분입니다. 방송, 통신, 영화, 문화부분은 가볍게 처리되고 있고 정부는 하나의 협상카드로 이들 분야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사안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와 모든 관계들이 미국화되는지, 안 되는지가 걸린 사안이예요. 대단히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입만 열면 '민생' 외치던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 시간 가량 이들 9명 의원의 농성장소에 머물던 기자의 눈에서는 매연 때문에 찔끔찔끔 눈물이 나왔다. 6시가 넘자 몇몇 의원들은 잠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단식 중이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드신다"며 한 보좌관이 귀띔했다. 한미 FTA 졸속 추진 반대에 동참하는 한의사들이 왕진을 했는데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다며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들은 6차 협상이 끝나는 19일 오후 3시에 같은 장소에서 해단식을 가진 뒤 5시 경 단식을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협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우리 정부가 무역구제 분과의 요구사항들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졸속 추진'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듯 하다. 평소 입만 열면 '민생'을 얘기하던 그 많던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날도 여당은 통합신당을 추진하겠다면서 각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했고, 제1야당은 대권주자들 간의 신경전으로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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