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코오롱 사태'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코오롱 사태'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나?

[기자의 눈] '과격노선의 실패'가 아니라 '무시전략의 성공'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코오롱 노조(위원장 김홍렬)가 21일 상급단체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코오롱 노조에 따르면, 지난 20~21일 조합원 799명을 상대로 '코오롱노조 규약 제1항의 상부단체 가입 조항을 삭제하는 규약 변경의 건'에 대해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투표율 98.9%(790명 참가)에 찬성표를 던진 조합원은 95.4%(754명)였다.

이로써 지난 7월 '노사 화해와 상생'을 걸고 당선된 현 집행부에 의해 한때 민주노총 내의 핵심투쟁 사업장으로 불리던 코오롱 노조가 민주노총 화섬연맹을 탈퇴하게 된 것이다.

코오롱 노조, 지난 7월 집행부 교체에 이어 민주노총 탈퇴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은 21일 성명을 통해 "삼엄한 경계와 계엄령과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된 투표"라며 "현재의 집행부는 선거 결과의 불법성을 가리는 '선거무효 확인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이번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유영구 화학섬유연맹 교육선전실장은 "현 집행부는 2005년 당선된 최일배 위원장이 지난 4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정당한 정리해고라는 판단을 받아 조합원 자격을 잃자 그해 선거 자체가 무효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선된 집행부"라고 강조했다.

또 유 실장은 "지난 2005년 집행부 선거에서 회사 관리자에게 자신이 어느 후보를 찍었는지를 보여줘야 했을 정도로 사측의 방해가 심했지만 전 집행부가 당선되었던 것"이라며 "확인해 본 결과 이번 규약 변경과 관련한 투표에서도 이같은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 대부분의 언론들은 '민노총 안 변하자 탈퇴 도미노', '국내 노동계 과격투쟁 구심점 붕괴' 등의 제하의 기사를 통해 "대림산업건설 노조(2006년 5월 민주노총 탈퇴), GS 칼텍스 노조(2004년 10월) 등 대기업 노조들이 잇따라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있다"며 그 원인을 코오롱노조와 민주노총의 '강경한 투쟁 노선'과 '남발되는 정치 파업'으로 몰았다.

사측의 '합의 파기'에 이은 두 차례 구조조정이 코오롱 사태의 시작
▲ 지난 5월 26일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이 청와대 인근의 한 공사장 내 크레인에 올라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 시위를 벌였다.ⓒ연합뉴스

그러나 코오롱 노사가 걸어 왔던 최근 몇 년간의 사태를 곰곰히 따져 나가다보면 과연 이번 '코오롱 노조 사태'의 진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2004년 12월 말부터 시작된 코오롱 노사갈등은 어느덧 꼬박 2년이 됐다.

지난 2004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려고 하자 노조는 64일 간의 파업으로 맞섰다. 노조는 파업을 정리하면서 파업 기간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임금 동결 등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측으로부터 "인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5개 월여만에 약속을 보란듯이 뒤집고 431명을 '희망퇴직'시켰다.

회사는 1년 만에 또 한 번 약속을 뒤집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노조는 회사 측에 임금 15% 삭감과 상여금 200% 반납, 2005년 무교섭 타결을 내주고 구조조정 중단을 약속받았지만 합의에 이른 지 불과 17일 만에 회사는 또 78명을 정리해고했다.

그 이후 노조는 '지난한 투쟁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복직을 요구하며 노조는 구미공장 송전철탑에서 농성을 벌였고 코오롱 본사 로비를 점거하기도 했으며 이웅렬 회장의 집에 조합원 10여 명이 담을 넘어 들어가 만나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3명의 조합원이 청와대 근처 타워크레인에서 11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강자는 언제나 '장기전'을 선택한다

코오롱 노동자 신태석 씨는 지난 7월 정리해고 500일을 맞으며 <프레시안>의 '전태일 통신'에 기고한 글을 통해 "노사간 대화가 그렇게도 어렵냐"고 호소했다. 오직 바라는 것은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회사의 무관심으로 일관한 태도에 대한 절규였다.

싸움이 오래 될수록 약자는 불리하다. 역사책에서 주요 대첩으로 기록되는 사건들이 주는 교훈도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힘이 약한 편일수록 단시간에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문제는 강자도 약자만큼이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강자들은 대개 '장기전'을 선택한다. 노사관계에서 상대적 강자인 사측의 선택도 늘 마찬가지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세상의 관심은 줄어들고 이 상황에서 노조는 날로 더 강경한 투쟁 전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코오롱 노조도 길게는 2004년 말부터 시작된 싸움의 기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싸움의 수위는 날로 강도를 더해가 노조 위원장이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이 회사보다 더 강력한 노동자의 적이 된다. 그 패배감과 자포자기가 오늘의 코오롱 사태를 불러온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역순으로 시간을 반추해가면 이 사태의 불씨는 '무시전략'으로 일관한 사측이 먼저 놓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코오롱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노조의 강경노선의 패배'가 아니라 '사측의 무시전략의 성공'이라고 할만한 것이다.

노동계의 깊은 고민은 분명 필요하나…

물론 이번 사태를 통해 노동계 역시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사측의 방해공작과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설사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코오롱 구미 공장은 3조 3교대로 이렇게 높은 투표율이 나올 수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남발되다시피 하는 총파업으로 세상을 멈추기보다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조롱마저 받고 있는 것이 오늘 80만 조합원을 가진 민주노총의 현실이다. 설사 장기적으로는 역사의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얼마나 될까. 사회는 개별 노사관계에 지독히도 무관심하다. 연말연시를 맞아 들뜬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25일이면 KTX 여승무원들이 파업 300일을 맞으며 기륭전자, 하이닉스-매그나칩 등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조용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측뿐 아니라 사회로부터도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고독한 싸움, 그리고 그들의 패배감과 허무주의와 오늘의 노동운동의 위기. 이로부터 우리 사회 역시 한 켠의 짐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