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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윈터바텀과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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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윈터바텀과 김기덕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마이클 윈터바텀과 김기덕 감독은 닮은 꼴이다. 일단 감독한 영화 편 수만 해도 그렇다. 윈터바텀은 우리에게 자신을 처음 알린 1997년 작 <쥬드>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까지 무려 1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 전의 작품까지 합하면 거의 스무 편에 육박한다. 그건 김기덕도 마찬가지다. 김기덕 감독 역시 1996년 <악어>로 데뷔한 후 얼마 전의 <시간>까지 13편이나 만들었다. 두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속도까지 비슷하다. 빠르면 2년에 3편, 아무리 늦어도 1년에 1편씩은 꼬박꼬박 새 작품을 내놓고 있다. 두 사람이 똑 같은 건 그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난다긴다하는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이다 심사위원대상이다 해서 주요 상이란 상은 다 휩쓰는 것 같지만 정작 자국의 영화 관객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는 점 또한 똑같다. 그렇게 자국 영화 관객들에게만 인기가 없으면 좋으련만 해외 관객들도 이들 영화를 보러 극장에 잘 안 오기는 매한가지다. 윈터바텀이나 김기덕이나, 둘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름하여, 평론가 나부랑이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이나 마이클 윈터바텀이나 두 사람의 영화들을 죽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 정말 대단한 인간이구나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많이, 그렇게 빨리 영화를 만들면서 이 둘은 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윈터바텀이 김기덕에 비해 약간은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인다. 윈터바텀의 영화들은 최근작을 대할 때면 늘, 단순하게 새롭다는 것을 넘어서서 전작과 백팔십 도 다른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오인 받아 미군에게 붙잡힌 후 생지옥을 경험하는 파키스탄 청년 세 명의 이야기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보고 있으면 전작인 <나인 송스>와 완전히 다른 작품 세계관이 느껴진다. <나인 송스>는 두 남녀가 벌이는 리얼 섹스의 모습을 통해 파편화되고 단절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적막함을 그린 작품이다. <나인 송스>를 보고 있을 때면 또 근미래의 유전자 복제 이야기를 그린 전작 <코드 46>와는 완벽하게 다른 느낌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코드 46>은 <코드 46>대로 그 전작인 <인 디스 월드>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뭔가. 자신 안에 어떤 괴물을 담고 살아가기에 이렇게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고 관심이 많을까. 무엇보다 왜 이렇게도 열심히 세상의 모습을 진실되게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고 현재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아무리 흥행이 안 돼도, 마이클 윈터바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촬영감독과 함께 카메라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용기 있게 얘기하지 못할 때 그는 '관타나모로 가는 길' 한가운데에서 부시에게 인권유린은 그만하라며 삿대질을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까지 달랑 6mm 카메라 한대를 들고, 소년의 뒤를 좇아 '이 세상 속(인 디스 월드)'을 전전하며 왜 중동 무슬림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지를 밝히려 애쓴다. 그 고통스런 제작과정을 거쳐 작품을 내놓지만 사람들은 별로 그의 작품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윈터바텀이 자국 내 영화 개봉을 포기하겠다거나 혹은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대중 관객을 원망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작가는 영화로 말하면 된다. 영화를 만들어 내는 의지와 태도로 세상과 교유하고 대중과 소통하면 된다. 윈터바텀과 김기덕. 윈터바텀을 보고 있으면 김기덕이 생각나고 김기덕을 보고 있으면 윈터바텀이 생각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기사는 주간 '무비위크'에 게재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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