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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자의 죽음, 이훈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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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자의 죽음, 이훈을 그리며

[특집] <마스카라>의 故 이훈 감독 10주기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차는 청계고가 끝을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신촌을 가려면…세종로로 빠져서 유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집에서 떠나 오기 전, 서대문 경찰서에 출입하던 후배의 전화가 생각났다. "어..선배..미안하네요. 맞는 것 같아. 선배가 얘기하던 사람…" 후배에게 다급하게 물었던 기억이 났다. "쯩이 나온 거야? 쯩 보고 하는 소리야?" 마지 못한 듯, 무엇보다 이런 얘기해서 미안하고 재수없다는 듯 후배가 대답했다. "내가 쯩 확인했어 선배. 미안하네.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요. 워낙 현장이 엉망이거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직접 확인해 봐요. 아닐 거야 선배. 선배 친구가 아닐 거야." 그래 맞다. 아닐 거다. 그럴 리 없다. 어제 이맘 때 아무 일 없이 헤어졌는데. 갑자기 이럴 리가 없다. 그렇게 몇 번을 되뇌이며 차에 올랐었다. 아무튼 간다. 가마. 이훈. 너 거기 있지마. 일단 니 쯩이, 아니 니 쯩과 비슷한 게 나왔다는 곳으로 내가 갈 테니 너 거기 있지 마라. 너하고 비슷한 사람이 누워 있다는 신촌 세브란스로 내가 갈 테니 제발 제발 너 거기 있지마라. 갔다 오마. 내 갔다 오마. 너 거기 있지 마라. 그렇게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거기 있는 '사람'이 그라면, 거기가 화재 현장이니까, 내가 그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럭 닥쳐왔다. 현장이 엉망이라고 했다. 그러면 얼마나 상했을 것인가. 얼마나 알아볼 수 없게 '탔을' 것인가. 너무 두려웠다.
이훈 감독 ⓒ프레시안무비
세브란스에 도착해서도 영안실 어딘가 시신들이 안치돼 있다는 곳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 영안실 밖,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재순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재순이 눈길을 피하면서 얘기했다. "만나고 와라. 훈이 보고 와." 그리고 그는 거기 그렇게 누워 있었다. 하얀 시트가 뒤덮여 있었지만 그게 그의 몸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차마 시트를 걷지 못했다. 시트를 걷지 못하고 대신 바깥에서 그의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아직도 그의 몸은 따뜻했다. 그는 마치 살아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시트를 걷고 그의 얼굴을 봤을 때 더욱 그랬다. 화재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굴만큼은 깨끗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 좀 자고 일어날께 하는 표정으로, 내 집 마루에서 어느 더운 여름날 자고 있을 때의 그 표정으로 그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오열이 터져 나왔다. 이훈은 그렇게 갔다. 나의 친구 이훈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을지 모르는 영화감독 이훈은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났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꿈꾸는 감독에겐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땅, 한국 영화계를 떠났다. 페이스 오프, 그는 어딘가 살아있다? 추석 연휴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신촌 록카페 '롤링스톤스' 화재 사고는 나의 친구 이훈을 앗아갔다. 1996년 9월 29일.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이다. 그날 그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 그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왜 혼자였을까가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 하던 점이었다. 그는 왜 그날 밤 혼자 거기에 갔던 것일까. 그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이훈이 죽은 후, 그가 그날 거기에 혼자 있었던 것을 존 프랑켄하이머의 1966년작 <세컨즈>로 풀어냈다. <세컨즈>는 현재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을 가짜로 죽인 다음 새 인생을 꾸미도록 도와주는 비밀 회사 얘기다. 주인공 록 허드슨은 얼굴이 망가진 시신을 골라 그 옷과 신분증을 바꿔치기 하는 식으로 의뢰인의 죽음을 창조해 내는데, 박찬욱의 분석대로라면 이훈은, 자기 인생 아니 국내 영화계에 막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롤링스톤즈'같은 외진 록카페에서 자신의 얼굴을 대신할 죽음을 찾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 약한 그가 그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겠지만 그날만큼은 그런 생각에 빠져 있고 싶었고, 운명의 장난처럼 그날 그런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박찬욱다운 영화적 추측이긴 했어도 문득 정말 그랬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정말,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 좌절하고 있었으니까. 주류 영화권에서 일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영화적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전혀 먹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고 있었으니까.
이훈 감독 ⓒ프레시안무비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그와 나는 지금은 없어진 강남 청담동 어디쯤인가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우연찮게도 나는, 그가 죽기 바로 직전에 만난 마지막 사람이 됐다. 그때 우리 둘은 비교적 자주 어울렸다. 그만큼 우리 둘이 서로를 절실히 원해서,였다기 보다는 사실은 애들 때문이었다. 5살이었던 내 딸 지혜는 유난히, 7살이었던 그의 딸 재인이를 따랐다. 둘이 참 잘 놀았다. 그래서 우리 둘은 종종 만났다. 친구가 없던 아이들을 위해서.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그가 이혼 후 혼자 살던 집에서 혹은 내 집에서 만났다. 애들을 서로 놀게 해주는 것 말고는 우리 둘은 꽤나 심드렁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이런저런, 되지도 않은 얘기를 나누면서. 그때 난 그가 좀 안돼 보였다. 영화감독을 한다고 하지만 그의 길은 조금 멀어 보였다. 난 그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인간, 고생을 더해야 하려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가 꾸는 영화의 꿈은 때론 황당하고, 때론 너무 비주류적이고, 또 때론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짓들만 골라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오히려 그런 내가 안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인간, 너무 빨리 닳고 닳아지는 거 아냐,하는 마음. 일찌감치 제도권화 돼버린 거 아닌가 하는 눈으로, 그는 나를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와 만난 마지막 날, 아이들은 레스토랑 어디선가 (뛰어다니고 있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무슨 장난을 치고 있었는지 마침 둘의 시야에서는 사라진 상태였다) 놀고 있었고 우리 둘은 또 지겨운 영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훈은 얼마 전 그렇게 그리던 35mm 장편영화 <마스카라>로 데뷔전을 치렀지만 참담한 결과를 맛본 상태였다. 아무도 그의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이훈이란 감독에게 주목을 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필리핀 섬을 갈려고 해." "지금 필리핀이라고 했어? 건 또 뭔 얘기여?" "필리핀 무인도에서 올 로케로 찍는 거야." "누드 촬영하겠다는 거야 지금?" "참 나 이거 왜 이래. 가만..에로틱하긴 해야겠지. 그 뭐시냐. 여자 드라큘라 세명이 나올 테니까. 여자 흡혈귀 얘기를 찍을 거야." "아 근데 그게 꼭 필리핀에서 올 로케를 해야 해? 거기까지 가는 돈은 누가 대고?" "얘기 잘 될 거야. 석도원 감독하고 얘기가 좀 될 것 같아. 만나기로 했거든." "(되기는 얼어죽을 뭐가 돼, 되긴) 석도원이라면 <맆스틱 짙게 바르고> 만든 사람이지? 웬일이야. 그 감독하고는 어떻게 얘기가 됐어?(만나지도 않았으면서 니가 혼자 괜히 그러는 거 아냐?)" "내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 "(좋아하기는..)" "우리 그 영화 만들 거야." "(얼씨구 우리라고라고라?) "미녀 흡혈귀 삼총사. 어때? 괜찮겠지? 재밌겠지? 야하겠지? 이번엔 흥행 좀 되겠지?" 속으로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날 만큼은 이상하게도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중간에 꽥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라고 하고 싶은 순간, 이훈은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진지하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나, 이제 영화 열심히 할거야. 아버지한테도 얘기할 거야. 도와달라고. 집에 돈 좀 쓸거야. 먼저 영화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그렇게 얘기하는 그의 표정엔 웃음기가 전혀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특히 그가 그날 했던 말중에 '집에 돈 좀 갖다 쓸거야'는 우리 둘 사이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말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잘 사는 집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빈 티 내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종종 나도 모르게 그런 얘기가 툭툭 나오곤 했었다. "거, 말도 안되는 아이템 가지고 돈 구하러 다니지 말고 일단 아버지한테 제작비 좀 대달라고 그래!" 평소 사람 좋기로 유명하고, 아무리 자기한테 날 선 얘기를 푹푹 쑤셔댄다 한들 '흐흐' 거리며 웃기 잘하던 그도 집에 돈 갖다 쓰라는 말에 만큼은 인상을 쓰면서 화를 내곤 했다. 친구란, 친구가 하기 싫어하는 행동과 말을 삼가는 법이다. 그래서 난 입 밖으로 그런 얘기가 터져 나오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그가 스스로, 그 얘기를 했다. 집에 돈 갖다 쓰겠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안됐다는 생각. 그래서 결국 그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래 가라. 필리핀이든 어디든 가. 가서 영화 찍어. 에로영화든 섹스영화든 무슨 지랄 같은 영화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영화 만들어. 꼭 만들어. 소원이다. 니가 영화만드는 게 소원이다 난." 그랬다. 정말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소원은 결국 소원으로 남았을 뿐이다. 엉뚱하고 기괴한, 그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훈의 유작 <마스카라>는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딱 마주하고 앉아서 차분하게 응시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금은 정말, 컬트 가운데 컬트가 된 이 영화 <마스카라>는 들쭉날쭉하는 이야기 구조에다, 엉성한 캐릭터, 싼 티가 팍팍 나는 로케 촬영, 되는 대로 이어 붙인 듯 보이는 마구잡이 편집 등등 결코 속 편한 심정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 미간에 주름살이 잡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영화 되게 웃긴다.
마스카라 ⓒ프레시안무비
그렇다. <마스카라>는 정말 되게 웃긴 영화다. 한 남자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옆집 아저씨(박찬욱 감독)때문에 성에 눈을 뜬다. 그리고 점차 게이로 변해 간다. 이 남자 아이는 결국 게이청년(당시 실제 트랜스잰더였던 하지나)으로 성장해 룸살롱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이 룸살롱의 사장(장두이)은 조직 보스(곽재용 감독)와 선이 닿아 있다. 그러던 어느날 이 트랜스젠더는 몇 명의 동네 깡패(그중 한명이 이무영 감독)들에게 사실상 강간을 당하게 된다(강간을 하려고 옷을 벗기지만 남성 성기가 나오자 오줌을 갈기는 등 잔인하고 극도로 모욕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수치심과 복수심에 칼을 갈던 이 게이는 일본으로 건너가 성기를 절단하는 성전환 수술과 성형수술을 거쳐 완벽한 여자(장송미)가 되서 돌아 온다.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자들을 찾아 잔인한 복수극을 벌인다. 곧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 '여인'의 주변을 탐문하던 형사(윤태용 감독)는 당구장 등을 뒤지다가(당구치는 양아치는 음악감독 조영욱) 결국 범인을 찾아 내 체포한다. 지금은 이미 세계적인 감독에다 세상이 알아주는 영화감독이 됐거나 음악감독이 된 친구들 곧 곽재용, 박찬욱, 윤태용, 조영욱, 이무영 감독 등의 기괴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매우 특이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어쩌면 그리도 적절한 캐스팅이었는지 참으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이무영은, 지금은 그렇게 점잖은 척 껄껄대며 살아가지만, 진짜 깡패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진짜 나쁜 놈같고, 진짜로 강간을 하게 생격먹었다. 뉴욕에서 연극 공부를 하며 살다 11년만에 한국에 왔던 이무영은 처음엔 원래 이름 송충섭으로 평화방송 등에서 라디오 프로 등을 진행하다가 이훈과 가까워졌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는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2> 등에서 조역으로 나왔으며 '연기는 못하지만 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마스카라>에 캐스팅됐다. '마스카라의 나쁜 놈' 이무영은 이훈이 죽은 후 배우로 써주는 영화가 아무 데도 없자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무영은 <휴머니스트>로 데뷔했고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브이 소녀>를 만들었으며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 참패했다. 지금은 새 작품 <아버지와 마리와 나>의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이무영이 영화마다 망하고 남들하고 다른, 엉뚱한 영화를 만들며, 나름대로 힘들게 사는 건 순전히 이훈 탓이다. 이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B무비스러움' 탓이다. 이무영 역시 여전히 이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무영 뿐이겠는가. 영화속 형사마냥 평소에도 진짜 형사 같은 윤태용 감독 역시 쉽지 않은 영화인생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그는 데뷔전을 힘겹게 치렀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법한, 그러나 독특한 영화였던 <배니싱 트윈>으로 데뷔해 서울극장에서 이틀 걸렸다. 첫 작품에서 두번째 작품인 <소년, 천국에 가다>까지도 어려운 행보를 겪었고 이 작품은 작품성 못지 않게 흥행성 또한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무영이나 윤태용이나 각기 자신만의 개성이 너무 강한 탓이다. 주류 영화권을 지향하면서도 그 어쩌지 못하는 비주류적 심성들. 우리는 그걸 과거엔 '이훈스러움'이라고 불렀다. 그러니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이훈 탓이다. 하지만 이훈이 살아있다면 단박에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도대체 성공한다는 게 뭔데?" 우리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박찬욱과 조영욱이라는 점에 있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찬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이제 지겨운 일에 속한다. 조영욱은 <접속> OST를 시작으로 음악감독으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지금은 제법 이름도 얻고 돈도 많이 벌었다. 이훈의 영안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 그의 주검을 확인했던 이재순도 이훈의 영화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재순은 박찬욱의 역작 가운데 하나인 <복수는 나의 것>을 시작으로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나 이후 몇 편의 영화가 실패하고 엎어지는 바람에 지금은 청담동 구석에서 바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 이름은 '체'다. 체 게바라의 체. 세상을 앞서 달리다 자빠진 사나이 등장인물 얘기를 하다 보니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렀지만 어쨌든 <마스카라>는 시간과 세상을 앞서갔던 영화였다. 1996년은 헌법재판소의 검열위헌 판정이 막 내려진 해였다. 그 직전까지 영화는 여차하면 가위질을 당했다. 장선우 감독이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심의불가 판정을 받다가 우여곡절 끝에 상영됐던 때가 1999년. 그러니까 그로부터 3년 전이 일이다. 지금이야 하리수 같은 연예인이 자신이 성전환수술자임을 드러내 놓고 다니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트랜스젠더 얘기를 장편 극영화에 끌어들여 일반 극장에 버젓이 걸려는 생각은 가당찮은 일에 속했다. 10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짧은 세월이 아니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시기다.
ⓒ프레시안무비
트랜스젠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말고도 이 영화의 주된 설정 가운데 하나인 '페이스 오프(face off)' 역시 지금에서야 다른 감독들이 죄다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빨랐던 얘기였다. 얼마 전 선보인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 등장인물들이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난리 부르스를 치지만 이훈의 <마스카라>에서 보여지는 난리 부르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강간과 복수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스카라>에는 강간이 있고 복수만 있을 뿐, 후회나 연민, 동정, 자비, 무엇보다 구원 따위의 얘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쿨하게 모든 것을 처치해 버린다. 쿨하다는 것. 지금에야 박수 치고 좋아할 정서지만 10년 전에는 낯설고 생경한 정서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안될 수밖에. <마스카라>는 너무 빠른 영화였다. 너무 조급한 영화였으며 너무 빨리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영화였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너무 앞서가면 다치는 법이다. <마스카라>가 그랬고 이훈이 그랬다. 생각해 보면 <마스카라>는 재능있는 한 영화광 감독의 치기 어린 데뷔작인 만큼 여기저기서 베껴 온 흔적도 만만치 않다.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박찬욱의 말마따나 존 프랑켄하이머의 <세컨즈>를 연상시키고 한 여인의 강간 복수극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메이르 자쉬 감독의 1983년작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닮았다. 복수의 주체를 여성으로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여성성을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는 아벨 페라라의 <복수의 립스틱>을 생각나게도 한다. 이런저런 영화를 베꼈다 하지만 이들 영화 모두 비주류이긴 마찬가지다. 영화광들이 아니라면 쉽게 눈치챌 수 없는 영화들을 고르면서 이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퍼즐 퀴즈를 내는 기분으로. 요건 모르겠지 하는 기분으로. <마스카라>에서 트랜스젠더로 나왔던 실제 게이 하지나의 캐스팅 과정도 한마디로 요지경이었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술을 밝혔던 나는 하지나의 캐스팅을 위해 이태원의 게이 바 '여보여보클럽'을 이훈과 들락거렸다. 이훈이 그랬다. 거기서 한 여장남자를 만났는데 니가 한번 봐 보라고. 너는 여자 보는 눈이 있지 않냐며. 그렇게 만난 하지나를 난 한번도 성기가 달린 남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훈만큼 미쳤던 나는 하지나가 영화를 찍고 나서 당시 일하던 YTN같은 보수적인 방송매체의 스튜디오까지 끌고 나가 대담을 시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고 미친 행동이었다. 하지만 하지나는 영화 <마스카라>때문에 게이 커뮤니티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됐다. 하지나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이훈이 죽고 2,3주쯤 후였다. 술이 만땅이 돼 혼자 '여보여보'에 가서는 고래고래 하지나를 찾았다. 중간중간 끊어지는 기억 속에서 하지나와 나눴던 대화는 이랬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편의 코미디같았다. 슬픈 코미디. "너…이…(끅)….나쁜 년, 장례식 때는 왜 안왔어." "(흑흑) 제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갈 수 있겠어요. 감독님한테 안 좋았을 거에요. 나 같은 애는 안가는 게 나아요." "(끅.흑.끅) 나쁜 년. 이 나쁜 년. 너 오늘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야돼." "안돼요. 이러시면 안돼요. 감독님을 생각하시면 이러시면 안돼요." 다음 날 아침 엉망이 된 상태로 집에서 눈을 떳을 때(하지나하고는 어떻게 됐을까?) 나 역시 이훈의 죽음처럼 한 구석이 죽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내 30대 초반, 청춘이 이미 지나갔음을 느꼈다. 한국의 에드 우드로 기억되다 16mm 작품이었던 <달콤한 포로>는 이제 영화사에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 작품이 됐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부자집 딸(방은희)가 있고 이 여자를 어떤 남자(조선묵)가 납치하는데 정작 여자의 아버지는 납치범에게 몸값을 지불하기를 거부한다. 딸이 몇 번이나 거짓으로 납치 소동극을 벌였기 때문이다. 자포자기한 두 남녀는 별장에서 지내다가 서로 눈이 맞게 된다. 정작 살인극은 다른 데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나 리마 신드롬이란 말의 개념도 모른 채 종횡무진, 왔다리갔다리, 좌충우돌했던 이 영화는 결국 <나쁜 남자> 같은 영화의 원형격 작품이었던 셈이다. 이 영화도 역시 빨랐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렇게 찍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돈 많이 쓰고 삐까번쩍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해괴하고 기괴하게, 거칠고 투박하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맞다. 돈 많이 써서 때깔은 좋지만 이놈 저놈 다 할 수 있는 얘기를 만드는 것보다 보기에는 좀 그래도 독특한 얘기를 만나는 게 관객 입장에서도 낫다. 이훈이 추구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난 그가 살아있으면, 과장이 아니라, 한국의 에드 우드가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그만큼 엉뚱했고, 광적이었으며, 反자본주의적 혁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살아있었으면 아마도 에드 우드 마냥 끝까지 초저예산 영화를 고집하며 영화판에서 상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기인의 감독이자 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여, 이훈의 죽음은 물신주의에 의해 척박해진 이땅의 영화판을 더욱더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죽지 않고 살았으면…눈물이 나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 이 글은 격주간 영화전문지 프리미어 5호에서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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