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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킬러,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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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킬러, 신하균

[핫피플] <예의없는 것들>의 신하균

신하균이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화성으로 간 사나이>로 흥행에서 고배를 마실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2003년 5월의 일이다. 신하균은 안전한 상업영화보다 경계에 서 있는 작품들을 선택하는 경향을 선보여 왔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영화들은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자신의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하는 데는 적절한 작품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이 그랬고 <지구를 지켜라!>가 그랬다. 그는 어쩌면 애초부터 관객 동원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켜 서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신하균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신하균이 정작 스타파워를 앞세워 관객 동원 능력을 선보여야 했던 영화는 <서프라이즈>와 <화성으로 간 사나이> 같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평범한 연기 이상을 선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서프라이즈>에서의 신하균은 영화 속 인물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는 순수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건 꼭 신하균이 아니어도 가능했던 배역이었다. 신하균 특유의 과잉과 절제를 오가는 독특한 연기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좋은 영화란 결코 스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연기자가 만드는 것이다. 좋은 배우는 쉽게 키워지지 않는 법이다. 신하균을 버리면 제2, 제3의 신하균을 키워내기 위해 우리 영화계는 abc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그건 지나친 비용의 낭비다. 몇 편의 영화에서 실패했다 한들 그래도 신하균은 신하균이다. 신하균을 버리는 건 자칫 국내 영화계가 중요한 재목을 잃는 것과 같다.
위 글을 다시 읽어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신하균의 흥행력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했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건 틀렸다. 신하균은 이후 <우리형>과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자신의 흥행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하균의 흥행 잠재력에 대해 판단 미스를 한 것까지는 인정하더라도 연기자로서의 신하균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때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신하균이 가장 신하균스러운 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과잉과 절제를 오가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과잉과 절제가 부딪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신하균은 늘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번 영화 <예의없는 것들>이 딱 그렇게, 신하균스러운 영화다. 잔인한 킬러이면서도 혀짧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컴플렉스 때문에 아예 입을 닫고 살아가는 소심증 환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능숙한 '칼질'의 대가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눈길 한번 제대로 부딪히지 못하는 숙맥. 그는 늘 키스를 하는 쪽이 아니라 키스를 당하는 쪽 입장에 선다.
신하균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당신은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 신에서도 여자를 어루만지고 씻어주는 쪽보다는 여자가 당신 등을 밀어주는 쪽을 택한다. "아니 뭐…그건 내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하지만 연기할 때는 그게 편한 것 같다. 리드를 당하는 쪽이. 근데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러네?" - 이번 영화만큼은 결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주인공인 당신이 여자와 행복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 뭐…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감독이 결정하는 거니까…근데 당신 생각엔 해피엔딩이 좋을 뻔 했다고?" - 그랬다. 대중영화가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히어로우 네버 윌 다이'다. "이 영화에서는 꼭 주인공이 영웅처럼 그려지는 게 아니니까." - 그래도 착한 사람이니까. 착한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거니까. "그래도 그러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뭐…지금의 결말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하균은 늘 그런 식이다. '아니 뭐..나야 그냥 연기만 하는 거니까'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던 이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영화에서처럼 광포하게 바뀌어서는 가슴에 비수를 들이댈 것같이 느껴진다. 선인과 악인, 정상과 비정상, 지킬과 하이드. 신하균은 가슴 속에 야수 한 마리를 키우고 살아가는 듯한 배우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영화 <예의없는 것들>은 가슴이 턱턱 막힐 만큼 충격과 파격, 새로움이 돋보이는 영화가 아니다. 제목처럼 이 세상 예의없는 것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을 펼치지도 않는다. 이건 사회드라마인가 지독한 러브 스토리인가. 영화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다소 방황하는 듯한 인상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신하균의 마음속 흉포함을 100% 살리지도 못했다. 영화는 좀 더 잔인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신하균을 (적어도 살인을 할 때만큼은) 좀 더 잔인한 캐릭터로 그렸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신하균을 재발견한다는 데 쏠쏠한 재미를 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 맞다 우리에게 이런 배우가 있었지,하는 생각 혹은 안도감 같은 걸 준다. 바로 우리 자신 같은 인물, 자신이 선택을 주도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끌려가 일을 벌이는, 사실은 매우 어눌한 인물. 우리 옆에서, 늘 우리 같은 마음으로, 우리 자신의 얘기를 해주는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신하균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하여, 이 영화가 대박 흥행을 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개성있는 연기라면 마다하지 않는 신하균의 '인디적' 자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 고민없이 충분히 티켓을 사줄 만한 작품이다. 아니 이번만큼은 얼른 그의 영화를 보러 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예의없는 것들'이라며 화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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