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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말엔 늘 '권력의 집중'이 화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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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 임기말엔 늘 '권력의 집중'이 화 불러

[기자의 눈] 청와대 개편 내용이 우려되는 이유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사의를 표명한 황인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후임에 이정호(47) 제도개선비서관을 내정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문재인 민정수석과 김완기 인사수석의 후임으로 각각 내정된 전해철(44) 민정비서관, 박남춘(48) 인사관리비서관과 함께 이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임기 후반기를 이끄는 40대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한 사람이 됐다. 이번 청와대 비서실 개편의 내용은 인사추천회의를 거쳐 3일 오후 공식 발표된다.
  
  '코드 인사'와 '정실 인사'의 차이
  
  자칫 레임덕에 빠지기 쉬운 대통령 임기 후반기의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이 가장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은 과거 정권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말인 2002년 3월 자신의 '오른 팔' 격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다시 불러들였다가 2002년 4월부터 김대중 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게 했다.
  
  권력의 '제2인자'를 두지 않은 노 대통령이 택한 임기 후반기 청와대 비서실 운용 방법은 노 대통령이 신뢰하는 40대 비서관을 전진 배치시켜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국정치를 전공한 부경대 정외과 교수 출신인 이정호 비서관이 시민사회수석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 비서관은 연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뒤 신라대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부경대 정외과 부교수 등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손위처남인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부산 선대위 정책본부장으로 부산ㆍ경남 지역에서 교수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고, 2003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무위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 이정호 비서관이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일하게 된 것과 관련해 '정실인사' 의혹을 제기하자 노 대통령은 "교수 직함 가진 분을 인수위원도 아닌 전문위원으로 한 데 대해 격이 떨어져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었다.
  
  이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균형발전위ㆍ동북아시대위 비서관을 거쳐 제도개선비서관으로 일해왔다.
  
  이 비서관뿐 아니라 전해철 비서관과 박남춘 비서관도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전해철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한때 속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변호사 출신이며, 대선자금 수사 당시 안희정 씨의 변호인 중 한 사람이다.
  
  또 박남춘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총무과장으로 같이 일했었다. 박 비서관은 이광재 의원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던 시절 선임행정관으로 일했고, 이 의원이 국정상황실장에서 물러나면서 박 비서관을 천거해 후임 국정상황실장이 되기도 했다.
  
  '껄끄러운 목소리'와 '손 안의 칼'
  
  이렇듯 레임덕의 방지를 위한 자구책으로 청와대 비서실을 대통령 직할 체제로 꾸려가겠다는 의도 자체는 비판할 수 없다고 보여진다. 더욱이 최근 청와대 행정관들의 아내 살해 사건, 음주운전 및 폭행 사건, 청와대 비서관의 대기업 간부 골프회동 등 공직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징표인 사건ㆍ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스타일을 잘 아는,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용하겠다는 '코드인사'와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이끌려 원칙을 저버리는 '정실인사'는 엄연히 다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재야ㆍ시민운동을 해 온 황인성 시민사회수석 후임이라고 하기에 이정호 비서관의 경력은 그리 걸맞아 보이지 않는다. 시민사회와의 인연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임기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상태에서 시민사회와 관계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단체가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 비서관이 시민단체와 청와대의 의사소통 통로 역할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오랜 재야ㆍ시민운동 경험에 기반한 독자적 판단력과 시민단체와의 신뢰 관계가 있었던 황인성 수석은 지난 연말 '황우석 사태'가 터졌을 때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와대 내에서 줄기세포 논문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의사 결정구조가 독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견제 역할을 톡톡히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통령이 그런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다는 흔적은 별로 없지만 황 수석이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 했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약 이번 시민사회수석 인사가 그런 '껄끄러운 목소리'를 내치고 '손 안의 칼' 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취한 결과라면 대단히 우려스럽다. 과연 이정호 시민사회수석 내정자가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권력의 집중'과 '권력 내부의 경쟁' 사이에서
  
  40대 비서관의 전진 배치로 인해 청와대 비서실의 '세대교체'로 해석되는 이번 개편에서 청와대 내부 권력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문재인 민정수석을 주축으로 하는 '부산파'와 연ㆍ고대 인맥이 주축을 이루는 '서울파' 간의 세력 균형이 깨졌다. 문재인 수석이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산대 출신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신임 시민사회수석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정호 비서관에게 밀렸다. 반면 이번에 영전한 세 명의 40대 수석 모두 공교롭게도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다.
  
  청와대 내 '부산파'와 '서울파' 간의 세력 경쟁은 부정적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상호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임기 후반기 들어 이 같은 균형이 깨진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는 않는 곳에선 늘 전횡과 부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씨 사건'. 김대중 정부의 '3홍 비리' 등 스캔들이 모두 임기 후반기에 '권력 주위의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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