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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인선 게임, 노대통령의 '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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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총리 인선 게임, 노대통령의 '완승'

[분석] 노대통령이 한명숙을 택한 이유는?

'예기치 못한 불운'으로 시작해 '의도된 행운'으로 끝났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3.1절 골프 파문'으로 이해찬 전 총리가 물러나고 한명숙 신임 총리 후보가 지명되는 과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골프 스캔들'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실세 총리'인 이해찬 전 총리를 끌어내려 '승기'를 잡은 것 같았던 한나라당은 후임 총리 인선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정교하게 진행한 수순에 말려 오히려 수세를 헤어나지 못했다.

***노대통령, 서둘러 이해찬 거취 정리해 국면 전환시켜**

노 대통령이 24일 새 총리 후보로 한명숙 의원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중에서 한 의원을 택하자 한나라당은 당혹스런 분위기가 완연하다.

한나라당은 "당적 정리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한 의원을 내정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한 의원의 '당적' 문제를 걸고 넘어졌지만 여당뿐 아니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까지 일제히 나서서 이구동성으로 '여성총리' 지명을 환영하는 바람에 묻혀버렸다. 오죽했으면 이재오 원내대표가 "당적을 영원히 갖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선거가 끝나면 회복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는 대안까지 내놓았을까.

이런 곤혹스런 상황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를 끌어내렸으면 진격해야 하는데 도리어 후임에 걸려 넘어져 후진하는 모양새"라고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당초 이 문제를 우리 페이스로 끌고가지 못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게 당적 없는 사람을 하자는 것이었다"면서 "그것은 애당초 국민들 귀에 그리 호소력을 갖기 힘든 우리들만의 현안이었을 뿐"이라고 사후 평가했다. 그는 "특히 당적을 갖고 문제 삼으려면 최소한 유시민 복지부 장관 정도로 최전선에서 싸우던 전사여야 국민들이 반이라도 고개를 끄덕인다"며 "한명숙 의원처럼 조용히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걸로 알려진 사람한테 '열린우리당 소속이라서 안 된다'는 건 국민들 눈에는 생트집으로 보일 것"이라고 향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의 당의 입지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나라당, 노대통령 '장단'에 맞춰 춤추다 보니...**

지난 3월 1일 이해찬 전 총리의 '부적절한 골프'에서부터 시작되어 24일 한명숙 총리 후보자의 지명에 이르기까지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이 '총리 정국'은 이처럼 여권의 완승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은 몇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은 지난 14일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해찬 전 총리의 사퇴를 결정함으로써 정국 흐름을 수세에서 자신의 페이스로 전환시켰다. 한나라당이 이 전 총리를 쥐고 흔드는 국면을 서둘러 정리하고 대통령 자신이 '후임자'를 물색하는 국면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야당은 청와대의 일거수일투족에 목을 매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노 대통령의 두 번째 전략은 후임 총리 후보를 최대한 빨리 노출시킨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초청해 만찬간담회를 갖고 총리 인선 문제를 협의했다. 여기서 노 대통령은 "야당 마음에 쏙 드는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등 야당으로선 거부하기 힘든 몇 가지 인선 기준을 밝혔다.

이어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후임 총리 후보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전윤철 감사원장 등 비정치인 출신 관료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됐다. 그 중에서도 김병준 실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일과 이병완 실장을 통해 "정치인이든 비정치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원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명숙 의원도 뒤늦게 최종 후보군에 포함됐다. 특히 이 실장이 21일 "야당의 전폭적인 지지는 아니더라도 선선하게 큰 반대 없이 인준 동의를 해줄 수 있는 분을 총리로 지명할 것 같다"고 밝히면서 무게 중심은 한명숙 의원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이날 "이해찬 총리의 후임에 여성 인사를 기용할 것을 건의했다"며 보조를 맞췄다. 한나라당은 이런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하지만 연극으로 치면 바로 종장으로 향하지 않고 반전 내지는 파국에 해당하는 국면이 그 다음에 찾아 왔다. 노 대통령은 22일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서 여전히 고심 중"이라며 무게중심을 다시 원점으로 옮겼다. 노 대통령은 최종 결정을 내리는 24일까지 "계속 고민 중"이라며 후임 총리 인선을 둘러싼 '안개 정국'을 최대한, 그러나 국민들이 혐오스러워 하지 않을 만큼 지속시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노 대통령의 마음이 '김병준→한명숙→김병준·한명숙'으로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나라당도 덩달아 부화뇌동한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한 의원이 급부상한 지난 21일엔 "당 대표가 여성인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번 총리지명에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한다"며 한 의원 쪽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22일엔 "두 사람 중 선택해야 한다면 당적을 보유한 한 의원은 절대 안 된다. 야당과의 대화라는 측면에서도 김 실장이 낫다"고 김병준 실장 쪽으로 돌아섰다. '박근혜 대표'의 여성 프리미엄이 희석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최종 의견'을 무시하고 한명숙 의원을 새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앞서 "여성총리를 임명해달라"며 '한명숙 카드'를 덥썩 물었던 한나라당으로선 "야당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임명한다고 하지 않았냐"며 따질 수도 없는 신세가 됐다.

이병완 실장은 24일 간담회에서 "지금 언론에 나타나는 것만 봐도 야당이 최종 후보인 한 의원과 김 실장에 대해 거센 반대를 하는 것 같지 않더라"며 "야당은 한 의원에 대해 처음에 꽤 호의적인 반응이었고, 김병준 실장에 대해서도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김병준 실장과 한명숙 의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총리 인선 방향타를 어지럽게 돌리면서 한나라당을 교란시킨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이런 교란작전에 빠져 방향타를 잃고 두 명의 최종 후보 모두에게 호의적 입장을 밝혀 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쯤 되면 상황은 이미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 대통령에게 총리 인선은 최종 낙점의 순간에 누구를 택하더라도 한나라당이 강력하게 반대할 명분이 없는, 바둑으로 치면 일종의 '꽃놀이패'에 해당하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한나라 "김병준은 터뜨릴 게 많은데 한명숙은…"**

노 대통령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해도 무방한 상황에서 한명숙 의원을 택한 것도 다분히 전략적이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강력한 명분은 다른 많은 정치적 공세를 차단한다. 한나라당 엄호성 전략기획본부장은 24일 "다분히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략적인 인선"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한명숙(총리)+강금실(서울시장) 카드'를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여성표를 끌어 보자는 전략"이라고 해석하며 "그런 점에서 한명숙 총리는 단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처럼 여권에서 여성정치인들이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최연희 성추행 사건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에게 큰 부담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여성정치인의 대명사격인 박근혜 대표의 '강점'이 상쇄되는 효과도 있다.

또 그간 여권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왔던 한 의원은 김 실장에 비해 '약점'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여성운동가 출신인 한 의원은 도덕적 흠결도 도드라지지 않는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김병준 실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터뜨릴 만한 게 많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의 공세가 '색깔론'으로 흐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 본인이 19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른 데에다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도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복역했다. 또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살아 온 경력을 보면 이해찬 전 총리 뺨칠 정도로 정치적 지분이 만만치 않은 인사"라며 한 의원의 '이력'을 문제 삼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한명숙 의원의 재야운동 경력을 걸고 넘어져 수구보수정당의 면모를 드러내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 어쩌면 이미 승기를 잡은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마련한, 총리인선정국의 마지막 수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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