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압승, 민주당 참패. 6.13 지방선거 결과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한나라당 압승을 이끌어 낸 한나라당의 자체 변수는 별로 없다. 민주당이 참패하게 된 민주당의 내부 요인들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 압승은 '한나라당이 잘 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못 해서'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잘한 측면은 '별 일 없었다'는 정도다. 지난 4년간 당을 이끌어 온 이회창 후보가 무난히 대선후보 경선을 통과했고, 당 내분을 마무리 지었으며, 이에 따라 지방선거체제로의 전환이 순조로웠다.
반면 민주당은 정말 '별 일이 많았다'.
대선후보 경선구도의 급변, 그에 따른 경선 후유증, 잇따른 비리게이트, 대통령 아들 구속, '노풍'의 급속한 퇴조 등등 지난 3월 이래 정치면 기사의 제공처는 주로 민주당 쪽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이번 참패의 복합적 배경이다.
게다가 월드컵으로 인한 투표율 저조까지 겹쳐 민주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국민경선에 매몰돼 지방선거 준비 소홀**
이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 내부로 본다면 대선후보 경선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만하다.
우선 애초 대선후보 경선에 너무 많은 후보가 나서면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들의 발목을 스스로 잡은 셈이 되었다. 수도권의 경우 경선과정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정동영 서울시장, 김근태 경기지사' 등의 카드를 구사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또한 최초로 이뤄진 국민경선제, 그리고 '노풍'의 등장으로 인한 경선구도의 급변 때문에 모든 관심이 대선후보 경선에만 집중되어 지방선거 후보경선은 그만큼 소홀해졌고, 그래서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시키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한편 대선후보 경선구도가 급변하면서 경선후유증도 극심해졌다. 또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퇴한 한화갑 대표의 대표경선 참여로 인해 당 대표 경선 역시 후유증이 컸다.
결과적으로 불과 수개월 전만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노무현-한화갑 체제가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졌고, 그래서 아직도 노-한 체제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일사분란한 선거체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잇따른 부패 스캔들에 대한 대응 잘못**
잇따른 부패스캔들은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 걸림돌이었다.
'대통령 아들 구속, 또 다른 아들의 수사진행중'이라는 상황은 애초에 선거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선거기간 내내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단 하나의 구호만으로 득표전을 편 것은 손쉽게 말해서 '그럴 만 했다'.
게다가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도 완전 무대책이었다. 사실 노무현-한화갑 체제의 등장은 민주당의 중심이 동교동 구주류에서 신주류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따라서 하기에 따라서는 청와대의 비극을 민주당이 고스란히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당은, 다시 말해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 모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명한 선을 긋지 못했고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다.
'부패의 원조는 이회창'이라며 역공을 폈지만 유권자들은 이런 민주당의 공격에 동감하지 않았다. 남을 탓하려면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하는 법이거늘 노-한 체제로 새로 짜여진 민주당은 스스로에 대한 '세탁' 과정이 단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거 막판에 가서야 이런저런 특단의 대책 논의가 있긴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노풍' 스스로 꺼뜨려 마지막 희망 상실**
이러한 여러 최악의 조건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노풍', 이것 하나만으로도 선거는 충분히 해 볼만 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노 후보는 '노풍'을 스스로 꺼뜨렸다. 비리 게이트 등으로 인해 '노풍'이 꺼졌다는 분석도 가능하긴 하지만 이것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 후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노풍'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식상함과 변화에 대한 바람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지난 과거가 그러한 변화와 도전을 상징했다. 그러나 후보 확정 이후 노 후보는 계속된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변화'의 실체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대신 현실정치 속에 갇혀 있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밑바닥에서부터 대선후보의 자리에까지 오를 동안에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노 후보의 거침 없는 언술과 행동이 이젠 역으로 노 후보의 약점이 되었다.
집권여당의 대선후보, 그것도 지지도 면에서 상대 당 후보를 20%나 상회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사실 현 대통령보다 힘센 자리다. 이 자리에 오르는 순간부터 노 후보는 '도전'이 아닌 '수성'의 위치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언술과 행동은 여전히 '도전자'의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노 후보의 도전적 언술과 행동이 가시적 성과와 함께 이루어졌다면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노풍'을 더더욱 최고조에 달하게 만드는 최대 강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정계개편을 성사시켜 낸다거나, 새로운 지지세력을 만들어 내는 등의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노 후보가 말하고 행동한 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사실상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때부터 노 후보는 상대 당이나 특정 언론 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은 이미 '수성'의 위치에 올라 있으면서도, 미래지향적 변화를 선도하는 '도전자'의 모습도 아닌 그저 과거의 일로 남을 비판하는 '도전자'의 모습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거친 모습' 만을 연출했다. 그도 현실정치인이고 '현실 정치' 구도 내에 있다는 점은 분명 인정된다. 그러나 그 기성의 질서를 깨고 단호하면서도 세련되게 변화를 선도해 내는 연출에 실패했다.
결국 노 후보 스스로 '노풍'을 꺼뜨렸고, 이것이 그나마 민주당이 기대해 볼 수 있었던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린 것이다.
***향후 정국의 첫 관심사, 노-한 체제의 다음 선택**
위와 같은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지나치게 노무현-한화갑 체제 스스로의 잘못 만을 부각시킨 분석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대신 대통령 아들 비리, 월드컵으로 인한 투표율 저하 등 민주당 노-한 체제 외부의 요인이 더 컸다는 분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은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 전초전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분석이다. 6.13 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인 한 그 결과에 대한 분석 역시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실효성이 있다.
이제부터 본격화될 대선정국은 어차피 노무현-한화갑 체제가 풀어나가야 한다. 정계개편을 하든, 신당을 만들든, 심지어 후보를 교체하든 이제부터 그것은 모두 노-한 체제의 정치력에 달린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의 모든 책임은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어떤 시기에 내리느냐가 대선구도를 새롭게 규정할 첫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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