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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후유증 남길 단식 투쟁…이제 그만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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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후유증 남길 단식 투쟁…이제 그만 밥 먹어요"

쌍용차 해고 노동자 12명 집단 단식 14일째에 부쳐

"밥은 먹었니?"

가까운 사이에 나누는 일상의 말이다.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은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어미가 되어 가장 힘든 일은 아이 밥그릇에서 밥 한술 덜어내는 일이었다. 식사량보다 꼭 한두 수저를 더 올려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술 덜기란 쉽지 않다. 혹시, 한 수저라도 더 먹을지 모르니까. 어미가 내게 했던 행동이다. 배부르다는 내게 "한입만, 한입만 더"를 반복하며 밥과 반찬을 계속 입에 넣었다. 입 벌린 새끼 새에게 계속해서 모이를 넣어주는 어미 새처럼. 엄마의 표정과 행동이 재밌기도 하고, 짓궂은 웃음이 좋아 투덜대며 못 이기는 척 받아먹었다. 그 덕에 배는 늘 불렀다. 그래서 내게 배부르다는 것은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다. 잔 손길이 많이 가는 산골살림. 엄마의 얼굴은 그늘지고 지쳐 보일 때가 많았으나 자식에게 음식을 넣어주는 순간만큼은 그늘은 사라지고 미소는 얼굴 가득 번졌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열흘가량 앞둔 지난 10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동조 단식자 12인이 집단 단식에 들어갔다. 밥숟가락을 놓았다.

10일 월요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 밤이 성급히 내려앉은 듯, 주위는 일찍부터 어두웠다. 방향 잃은 비가 지나가는 이들의 옷을 적시며 흩날렸다. 익숙하지만 오랜만이어서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곧 무리를 이뤘고 많은 카메라가 자리를 잡았다. 우산을 들었으나 온몸이 젖어버린 사람들. 하얀 일회용 비옷 속 사람들이 긴장된 얼굴로 서성거렸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2인 집단 단식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왜 집단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동안의 분노와 고통, 다짐들이 수십 분 동안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회견을 마친 12인은 단식 장소에서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시선을 돌리니 무리로 보이던 사람들이 한사람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길을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땅을 바라보거나 먼 허공에 시선을 맞추는 사람들, 눈빛만 봐도 긴장과 비장함이 느껴지는 이들, 함께 단식을 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어두운 얼굴로 한쪽으로 줄지어진 사람들, 흐르는 눈물을 참아보려고 눈에 힘을 한껏 주고 있는 시민들, 그리고 자신은 대한문에 일어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시작된 12인의 단식은 시간이 흘러 흘러 23일로 어느새 14일째에 접어들었다.

난 단식에 반대한다. 단식은 몸에 영양분을 넣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간디는 말하지 않았던가. 단식은 싸워야 하는 적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밥숟가락을 놓는 것이 지금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와 회사에 무슨 압력이 된단 말인가. '단식으로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단식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정우 지부장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41일 단식을 했다. 쓰러져 병원으로 향했던 지부장은 단식을 했던 기간만큼 묽은 죽을 먹으며 복식 기간을 가져야 했다. 지루하고 고된 복식 기간이 끝난 후에도 지부장의 건강은 전체적으로 퇴화해 잇몸이 모두 내려앉아 구치소 안에서도 약을 먹을 지경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를 위해 24일간 단식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밥 대신 면 종류만 먹는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은 그림의 떡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집단 단식에 돌입핸 이들 모두 "괜찮다"라고 한다. 배고파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몸이 쇠약해져 가도 괜찮단다. "괜찮다"만 되풀이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고통에 비하면 괜찮은 상황인가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식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잊히고 단식 후유증은 당사자에게 벗어날 수 없는 고질병으로 남아 평생을 괴롭힐 것이다.

대한문은 정리해고로 시작된 사회적 타살, 쌍용차 희생자 24인의 죽음을 1년 6개월 동안 추모하던 장소다.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 정치권까지 뜻을 함께하며 공감했던 장소다. 물품과 옷가지를 챙겨 입을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중구청은 분향소를 통째로 쓰레기차에 쳐넣어 버렸다. 항의하거나 그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다수가 연행되었고 김정우 지부장은 여전히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만든 화단은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경찰은 국가보안을 뒤흔드는 기밀이라도 지키려는 듯, 화단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감옥처럼 둘러싼 경찰 버스는 행인들의 시야를 가려 답답함과 위압감을 줄 뿐만 아니라 24시간 경철 버스 공회전으로 발생하는 매연은 공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대한문 수문장 행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쌍용차 해고자들은 어쩔 수 없이 경찰 버스 앞에 있어야 한다. 한 시간만 있어도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공회전을 자제하라는 요구에 '버스 안에 장비들이 꺼져서 안 된다', '불만 있으면 정식으로 고소해라',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 버스의 소음과 매연이 일상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리고 내 안타까운 시선은 "괜찮다"고 말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머문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긴박함과 중요성은 사회적 공감을 일으켰다. 청문회에서는 회계 조작에 의한 정리해고 의혹까지 제기됐다. 대선 후보들조차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제가 쌍용차 국정조사였다. 이런 상황인데도 집단 단식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감행하는 현실은 정말 이해 안 되고 화가 나지만, 집단 단식이라는 결정을 한 조합원들은 얼마나 더 고민했을까. 그래서 "오죽하면…"이란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되고 김정우 지부장이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무렵, 어깨를 늘어뜨린 내게 초등학교 6학년 막내 아이가 쌍용차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근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고자질하듯, 답답한 심정과 쌍용차 아저씨들의 어려움을 낱낱이 쏟아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비장한 얼굴로 "엄마, 내가 상황을 한 번 봐야겠어. 같이 가" 했다. 작은 아이의 그 한마디에 눈물이 뜨겁게 고였다. 이야기를 들어준 위로와 뭔지 모를 든든함까지 생기자 막내를 앞장세워 대한문으로 향했다. 막내는 진지하게 화단과 경찰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바라봤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와줘서 고맙다는 말에 멋쩍은 미소가 돌아왔다.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말을 건넬 때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웃어줘요. 씩씩하게 말해줘요. 자주 얼굴을 보여줘요. 그게 우리를 기운 나게 해주는 거예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인사치레라 생각했던 그 말들이 이제는 진심인 것을 안다.

대한문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단식하는 이들의 고무신을 예쁘게 꾸며주겠다고 한밤에 모였던 이들과 포근한 베개를 직접 만들어온 이도 있다. 추석음식 준비로 바빴을 텐데 정성스럽게 명절 음식을 준비해오는 주부들도 있었다. 모금함에 주머니 속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넣으며 힘내라는 말을 전하는 행인들도 끊이지 않는다. 단식이 안타까워 옆에서 함께 수저를 놓는 연대인도 있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169일을 지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매일 미사가 있다. 항상 옆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12인이 집단 단식으로 말하고 있는 힘겨운 이야기에 당신도 귀를 기울여 달라.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사회 정의는 세워질 테고 약속은 지켜질 테니 밥숟가락을 놓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달라. 나는 오늘도 잘 지내고 있지 못한 그들에게 밥을 권하러 대한문에 간다.

어깨가 반으로 움츠러든 득중씨, 지부장의 빈자리에 어깨가 무겁지요. 그동안 안 해본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거 알지만, 인제 그만 밥 먹어요. 배가 홀쭉해진 동민아, 추석에 온 가족이 모여 네 앞에서 밥 먹는 모습에 배불렀니? 그랬을 거야. 너도 밥 먹으며 하자.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호민아,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도 항상 조합원들 사이에 웃음을 번지게 하는 네 모습이 정말 좋았다. 밥 먹고 예전처럼 말 좀 해라. 얼굴에 보조개가 생긴 윤수 씨, 더 멋있어졌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어요. 우리 밥 먹어요. 점점 작아지는 남오야, 네 앞에서 밤을 까먹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뒤돌아 오며 가슴이 계속 저렸다. 함께 밥 먹자. 항상 분주하던 충열 씨, 혼자서 분향소를 지켜내듯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지요. 밥 먹고 힘내서 함께 분향소를 지켜요. 털보가 된 수경 씨, 괜찮다는 말, 그만 하시고 인제 그만 수저 들어요. 동조 단식하는 정진우, 이상진, 허영구, 조희주, 신영철님. 마음 바꿔 밥 먹으며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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