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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쟁을 하려는 또하나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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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이 전쟁을 하려는 또하나의 진짜 이유”

‘달러 헤게모니’ 고수, OPEC 원유가 통제 저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반세기 이상 향유한 달러 헤게모니를 고수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쥐고 있는 원유가격 통제력을 빼앗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최근 진보적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어 미국의 전쟁몰이에 숨겨진 또하나의 의도를 엿볼수 있게 하고 있다.

<사진: 달러와 유로동전>

미국의 학자 클락(W. Clark)은 지난 1월 미국 '독립언론센터(Independent Media Center)' 웹사이트에 게재한 에세이 '이라크 전쟁의 실제 이유: 가려진 진실에 대한 거시경제적·지리전략적 분석'을 통해 후세인 제거의 핵심 목표는 석유거래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캐나다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미국 버클리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피터 데일 스콧도 버클리대 웹사이트에 게제한 '부시의 깊은 생각: 석유, 오일달러, 그리고 OPEC의 유로화 문제' 제하의 기고문에서 이와 유사한 분석을 내놓으며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달러 우위를 지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들의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달러의 위기**

1945년 이후 국제 석유거래의 기준이 된 통화는 미국 달러다. 미국은 73년 OPEC의 모든 석유거래를 달러로 한다는 비밀협정을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었다.

이라크를 비롯한 몇몇 나라가 최근 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라크는 2001년 11월 석유거래에 유로화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유유럽라디오(Radio Free Europe)는 2000년 11월 6일 "이라크가 유로화로 거래 통화를 전환한 것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 항의하고 유럽이 미국에 도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라크에 수십만 달러의 손해가 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01년말부터 유로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라크는 상당한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유로화는 달러에 비해 대략 17%의 가치상승이 있었다.

<사진: 이라크 유전>

또하나의 '악의 축' 국가인 이란의 외환보유고도 2002년 유로화가 절반을 넘었고 현재는 석유 거래 통화를 유로화로 전환할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지난해 12월부터 무역에 사용하는 통화를 유로화로 전환했다.

보유 외환을 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꾸는 경향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어 달러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와 중국의 움직임이다.

제3세계 위주의 통신사인 인터프레스 서비스(InterPress Service)는 지난해 "보유 외환에서 달러를 줄이고 유로화와 균형을 맞추려는 베네수엘라와 중국의 외환보유고 다변화 전략을 남미와 아시아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모방하고 있다. 달러나 '경화(硬貨, 모든 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화폐, 주로 달러와 교환할 수 있는 화폐)'가 부족한 개도국들은 베네수엘라를 모방해 물물교환 방식의 무역(바터무역)을 시작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3개국과 이미 바터무역 협정을 맺어 베네수엘라산 석유와 상품의 물물교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주간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지난달 17일자에서 유로화 보유를 두배로 늘인 러시아 중앙은행의 소식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캐나다은행, 중국인민은행, 대만중앙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유로화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유로화는 2003년말까지 전세계 외환보유량의 20%를 차지할 것이다. 달러화가 이라크 전쟁 후 일시적으로 회복되더라도,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계속될 것이고, 유로화의 보유가 조금만 늘어도 시장에는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달러 헤게모니와 미국**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2차 세계대전 후 달러가 누려왔던 소위 '달러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다.

달러 헤게모니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통화가 전세계의 무역 및 금융결제에 이용되는 데 따라 생기는 이점을 말한다. 미국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와 예산 적자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은 바로 달러 헤게모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달러를 보유하고자 경쟁하고, 달러에 대한 의존율을 높이면서 미 실물경제와는 무관하게 미국의 자산가치가 고평가되기 때문이다.

달러 헤게모니가 형성된 이유 중의 하나는 1945년 이후 석유거래에 달러가 쓰였다는 점이다. 석유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의 교역품목이며 전세계 무역액의 약 10%를 차지한다. 소위 '오일 달러'로 불리는 이 달러는 주로 미국 재무부 채권으로 교환되거나 미국 주식·부동산 등 달러 표시 자산과 교환된다. 이와 관련, 아시안 타임스 2002년 4월 11일자 인터넷 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국제 무역은 미국이 달러를 생산하고 나머지 나라들이 달러로 살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게임이다. 세계 각국은 달러를 벌기 위해 수출 경쟁을 한다. 이는 달러로 표시된 외채를 갚기 위한 것이고, 자국 화폐의 교환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를 보유하기 위한 것이다. 자국 화폐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이 거세질수록 이 나라 중앙은행들은 달러 보유고를 더 늘리려 한다. 이는 달러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 달러를 더욱 강한 화폐로 만든다. 이 현상이 달러 헤게모니다.

석유 같은 필수 재화가 달러로 거래돼야 한다는 것은 달러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시킨다. 미국은 73년 이후 만들어진 OPEC라는 카르텔을 묵인하는 대신 오일달러의 순환으로 얻어내는 이득을 챙기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미국의 자본수지흑자는 무역에서의 적자를 메워준다. 또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은 어디에 위치하건 본질적으로 미국 자산이 된다"

<사진: 외환시장>

***유로화 확대가 주는 위협**

달러 헤게모니와 73년 비밀협정은 달러로 표시된 전체 자산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엄청난 외채를 지고도 신용팽창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미국 경제의 불균형은 다른 나라들이 에너지로 석유를 계속 필요로 하고 석유거래를 위해 달러를 비축할 때에나 가능하다.

석유거래에 유로화가 도입되는 것은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에 근본적 위협이 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OPEC가 석유거래를 유로화로 하는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는 악몽과도 같은 것" 이라며 "이라크에 이어 다른 OPEC 회원국들의 유로화 거래 확산을 미국은 막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OPEC가 거래 통화를 신속히 전환했을 때 벌어질 사태를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OPEC가 거래 화폐를 유로화로 바꾸면 석유 수입국들은 보유 달러를 팔고 유로화를 사들일 것이다. 달러 가치는 20~40% 하락할 것이고, 미국 주식 시장과 달러 표시 자산에서 해외 자본이 빠져 나가고, 미 은행들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과 같은 경험을 할 것이고, 경상수지적자폭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며, 예산 적자로 채무불이행 사태까지 맞게 될 것이다"

***OPEC, 석유거래를 유로화로**

문제는 OPEC다.
OPEC는 유로화 석유거래에 대한 희망을 공공연히 밝혀 왔으며, 유럽지역의 빠른 통화 통합을 촉구하기까지 하고 있다.

OPEC의 원유시장 분석 책임자인 자바드 야자니는 2002년 4월 스페인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유럽 언론에 공개되었지만 미국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90년대 말, 외환거래의 80%와 세계 수출 거래의 절반이 달러로 이뤄졌다. 이는 전세계 생산량과 무역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었다. 유럽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규모를 볼 때 이는 유럽에게 불리한 것이고, 유럽연합(EU) 확대계획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여전히 거대한 석유 수입국이긴 하지만, 원유 수출 통계를 보면 유로화 사용 지역이 미국보다 더욱 큰 수입처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로화로 석유를 거래하는 것은 유럽에 당연히 유리하다. 환(換)리스크가 없고, 유로의 수요를 늘려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나라를 제외한 OPEC 회원국들은 일단 달러로 거래를 유지할 것이지만 유로화 도입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OPEC는 유로화를 새로운 통화로 어떻게 정착시킬지 따져보고 있는 중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유로화의 가치와 안정성, 그리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과연 단일 통화를 채택할 것인지이다. 유로화가 달러에 도전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많은 나라에 이익이 될 것이다. 나는 유로화의 성공을 바란다"

이 연설에 비춰보면 OPEC이 유로화로의 전환에 추진력을 얻는 것은 유럽연합이 10개 회원국을 추가로 받는 2004년이 될 것이다. 사실 2002년 말부터 무역거래에 쓰인 유로화의 비중은 달러와 비슷하거나 많다.

***미국의 진짜 목표와 전략**

이라크 전쟁은 군사력으로 OPEC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을 제거하려 하는 것은 엄청난 이라크의 석유를 점령하고, 국제 원유가를 떨어뜨리며, OPEC의 원유가 통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다.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단순하면서도 점차 뚜렷해졌다. 그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목으로 OPEC의 의사결정절차를 붕괴시키고 결국 OPEC라는 석유 카르텔의 유로화 석유거래를 막고자 한다. 미군의 영구적인 주둔은 다른 OPEC 국가들이 거래 통화를 바꿀 경우 이라크와 같은 '체제 변동(regime change)'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할 것이다.

<사진: 훈련중인 전차>

OPEC의 가격 통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첫째, 이라크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이라크가 다시 달러로 석유를 거래하게 할 것이다. 둘째, 이라크 석유 생산을 급격히 늘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라크의 석유는 미국에 직접적인 수익을 주기보다는(not 'moneymaker') OPEC의 가격 통제 체제를 약화시키고 해체시키는 핵심 도구('OPEC breaker')로 사용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조세 정책이 오늘날의 화 불러**

미 행정부는 언론 검열을 통해 이라크가 석유거래 통화를 유로화로 바꾼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통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투자자·소비자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소비자 대출과 소비가 줄어들며, 중동지역의 석유를 포기하고 이라크 전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정부들이 보유 외화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AP 통신과 영국의 옵저버 등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상황이다.

OPEC는 다량으로 유입될 이라크 석유로 인한 가격하락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OPEC는 유로화로의 전환이라는 자구책을 신속히 취할 것이고 이는 달러 헤게모니의 종말과 경제적 최강대국 지위의 종말을 의미한다.

달러의 위상이 이처럼 약화되고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 외환 다변화에 나선 것은 사실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경제·조세 정책 탓이 크다. 부시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재정은 엄청난 적자로 돌아섰으며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힘은 약화되어 투자 신뢰도를 깎아내렸다. 대외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국제조약을 무시하고 유엔·나토 등을 통한 국제 협력을 경멸한 것은 가까운 동맹국들마저 분노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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