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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은 공화국인가 제국인가”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 주재 미 대리대사의 경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것은 대량살상무기 때문도, 테러리즘 때문도,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도 아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목적은 중동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루려는 제국주의적 야욕 때문이다”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바그다드 주재 미 대리대사(chargé d'affaires)로, 미국 외교관 중에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조지프 윌슨의 일성이다.

조지프 윌슨은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The Nation)에 기고한 ‘공화국인가 제국인가(Republic or Empire?)' 제하의 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제국주의”로 규정,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공화국적 전통과 뿌리를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신보수주의자는 제국주의자”**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윌슨이 꼽은 것은 미 공화당 내 신보수주의자들이다.

해외에서의 군사행동을 피하는 정책을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공화당이 침략적인 대외정책을 취하게 된 것은 부시 행정부 들어 정부를 장악한 신보수주의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윌슨은 “미국의 군장성들과 외교관들이 식민지시대 총독처럼 걸프지역을 활보하고 있다”고 꼬집고 부시행정부는 “아랍 국가를 정복하고, 점령하고, 그곳에 꼭두각시 지도자를 세울 때에야 만족할 수 있는 극단적인 오만함에 빠져있다”고 비난했다.

윌슨은 1차 걸프전에서 미국의 정책을 지지했던 자신을 회고하며 “그때는 후세인이 유엔헌장을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에 정당한 공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현재 준비되는 공격을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이라크 무장해제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보이는 유엔조차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정권을 세우려는 것 역시 명확한 제국주의적 태도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윌슨은 “미국은 이미 걸프지역 아랍국가들의 헤게모니를 확보했다”며 “독립에 대한 아랍의 열망은 레바논 소말리아 북아일랜드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아랍의 여러 나라들을 이미 자신의 휘하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면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어 미국의 국제적 지배력은 약화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현역 상원의원의 이라크 공격 비판에 이어, 상황은 이제 이라크 주재 미국 외교관이었던 사람이 ‘미 제국주의’를 들고 나오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유엔무기사찰단은 1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치 못했다”는 2차 보고서를 제출했다. 미국내외의 잇단 호소와 비판, 국제사회의 해결노력이 부시의 전쟁준비와 맞붙고 있다.

다음은 네이션 최신호(3월 3일자)에 실린 기고문의 전문이다.


***'공화국인가 제국인가'/ The Nation 3월 3일자**

‘사막의 방패’작전이 진행되던 1990년, 바그다드에 머물던 미국 외교관이었던 나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미국이 쓰는 완력을 옹호했다. 후세인은 유엔헌장을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위협해서라도 그의 침공을 되돌려놓을 수 있길 바랐다. 미국의 과감한 전략은 “인간방패”라 할 수 있었던 1백50명의 미국인 인질을 무사방면하게 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 것은 안타까웠으나 이듬해 벌어진 ‘사막의 폭풍’작전은 후세인의 비타협적 태도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 작전은 유엔의 승인으로 이뤄진 제재조치였고 광범위한 나라가 참가하는 다국적군에 의해 수행된 것이었다. 목표는 한가지로 뚜렷했고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다가오는 이라크 군사작전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나 부시 미 행정부는 몇가지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전쟁은 대량살상무기(WMD) 때문이 아니다. 주권침탈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무기사찰은 이미 알고 있던 데까지 샅샅이 파헤쳐 후세인의 계획을 중단시키고 있다. 이번 전쟁은 테러리즘 때문도 아니다. 전쟁이 더 많은 테러를 불러온다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 민중들의 해방을 위한 전쟁도 역시 아니다. 이 전쟁의 근본 목적은 중동에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이루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려는 것이다.

미국은 크루즈 미사일 한 방도 쏘지 않고 이미 걸프지역과 서남아시아지역에 거대한 군사기반을 구축, 이를 통해 주변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입지를 마련했다. 미군 장성들과 외교관들은 식민지시대 총독처럼 그 지역을 활보해왔고 힘없는 정부를 꼬드겨 그들의 영토에 미국인들의 접근과 군사적전을 허락토록 했다.

그곳에 세워진 군 기지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공격의 교두보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웃 나라들을 두려워하는 이들 국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이들 국가들이 전쟁을 벌일 경우 미국의 자동개입을 강요하는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하고 있다. 쿠웨이트 북부지역은 미군에게 할양되었고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에는 엄청난 군대가 주둔했다. 십년전에는 강건너 불구경이나 했던 곳이 미군의 군화와 전진사령기지로 채워졌다. 미국의 안보우산을 약속받은 역내 국가들은 이제 미국이 정책을 지시하거나 반(反)서방파들에게 재갈을 물리라고 할 날만을 기다릴 것이다. 미국은 걸프지역 아랍국가들의 헤게모니를 이미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세인이 꿈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침공을 받지 않아도 그는 이미 끝난 상태다. 그는 포위되어 있고 그의 대통령궁은 (무기사찰을 위해 들어온) 외국인들로 붐비고 있다. 콜린 파월이 유엔에서 명백히 보여주었듯, 미국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듣는다. 이라크 무장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는 1990년대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후세인에게 압력을 가하라는 조지 부시의 강력한 요구도 그 한 요인이다. 그러나 영국의 추리소설가 존 르 까레가 “미국은 역사적 광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일갈했듯, 미국의 작태를 우려하는 나라들은 미국의 야망을 제어할 수 있는 하나의 기구인 유엔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미 제국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해외에서의 군사적 모험을 피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했던 공화당의 대외정책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영향력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해 걸프 지역에서의 혁명적 변화를 강제하려고 한다. 매파들에게 걸프지역에서 미국의 우위 확보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을 아니다. 정복하고, 점령하고, 꼭두각시 지도자를 권좌에 앉힐 때에나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이 지역을 유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장악이 핵심이다. 새로운 제국주의자들은 미국의 세계관을 흉내나 내는 정부가 그 지역 전체에 이식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살떨리는 야망이고 극단적인 오만함이다. 미국에 의해 떠받들여지는 반민주정권에 불만을 갖은 아랍인들은 언젠가는 미국의 직접지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아랍 세계의 미래 지도자는 독립을 꿈꾸는 토마스 제퍼슨이 아니라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 더 많게 될 것이다.

도를 넘어서면 엄청난 위험이 뒤따른다. 무력을 통해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랍세계에 저항의 씨를 뿌릴 수 있고, 미국의 정치적 의지와 힘은 고통스러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독립에 대한 아랍의 열망은 어떤 지역만큼이나 크다. 매파들은 이것을 2차대전후 일본, 독일의 독립 열망과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레바논 소말리아 북아일랜드의 독립열망과 더 유사한 것이다.

두려움이 분노로, 그리고 미국의 지배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바뀌면서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은 침식당할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해외에서 받는 적대적 처우에 이미 불만을 품고 있다. 아랍인들은 미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해외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다. 국제투자가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유리한 투자처가 아니다. 차입에 의존하는 미 행정부이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신뢰도는 심각히 손상되었고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전쟁이 설령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의 제국주의자들은 이미 그들이 원했던 대부분을 달성했다. 그것 중에는 바람직한 것도 있다. 국제사회가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용서치 않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다가올 이라크 전쟁과 오랜 이라크 점령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미국은 군사력과 재정, 국제적 지위 측면에서 심각한 대가를 치르면서 미국의 공화국적인 뿌리와 전통이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에 관한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수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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