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배달호씨의 분신사망사건으로 파업에 대한 사측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이에 따른 재산 가압류가 ‘신종 연좌제’라 불리며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손배 가압류로 인한 피해가 50개 사업장 2천2백22억 9천7백52만4천2백84원에 이른다. 민주노총은 “짧은 기간 동안 조사된 것이라 미처 보고 되지 않은 사업장을 감안할 경우 그 금액은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발전노조의 경우, 1인당 최고 1백2억원까지 가압류를 당했고 장은증권은 부친, 숙부, 조모의 집과 선산까지 모두 가압류 당했다. 건설운송노조와 SBS스포츠채널은 해고자에게도 가압류를 했고, 동광주병원과 한라병원, 시그네틱스는 보증인의 재산 및 부동산까지 가압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압류 액수와 범위, 가정파탄 위협 수준**
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은 “가압류의 범위가 과거에는 노조 조합비에 한정된 반면 최근에는 조합원 개인의 임금, 예금통장, 자동차, 전세금, 집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케 하고 있다”고 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은증권은 노조위원장의 부친과 숙부, 조모의 집뿐만 아니라 선산에까지 손배 가압류를 했고, 동광주병원은 조합원의 가족인 보증인 47명의 부동산에 대해 14억원의 가압류를 했다.
이밖에 제주한라병원은 조합원 6인의 보증인에 대해 재산과 부동산을 가압류했고, 한국시그네틱스도 가족의 주택에 대해 가압류를 하는 등 손배청구가 노조원의 가족에게도 심각한 경제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시그네틱스 조합원 김칠순(여, 35)씨는 입사 후, 임신 육아 문제로 퇴사를 했다가, 2000년 3월 재입사했는데, 입사시 신원보증인인 시골 친정오빠의 집에 대해 1억원의 가압류를 집행당했다.
농업을 하는 김씨의 친정오빠는 집이 가압류를 당하자 대출이 불가능해져 영농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김씨는 “‘사표를 내면 가압류를 풀어준다고 하니 사표를 냈으면 한다’는 친정오빠의 원망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지금은 빚을 내 오빠에게 5백만원을 주고나서 형제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며, 명절에는 고향에도 내려갈 수 없다”고 했다.
제주한라병원노조 오용창 지부장은 “조합원 중에는 가족의 재산까지 가압류 당한 사람이 많다”며 “한 조합원은 과수원이 가압류 당해 부모님이 쓰러져 병져 누으시고 친지간에 불화가 생겨 가족 관계가 붕괴될 지경이다”고 했다.
***노조 탈퇴하면 가압류 풀어줘**
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은 “손배, 가압류의 심각성은 사측이 이를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하는 데 있다”며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사측은 ‘파업하면 손배 들어간다’고 협박하며 사전적으로 노조의 단체 행동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 국장은 또 “일단 파업이 벌어지면 불법파업,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온갖 구실을 붙여 임금 및 재산에 가압류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그 후에는 손배, 가압류를 무기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있다”고 했다.
철도노조는 “2002년 3월 파업으로 인해 15억9천여만원의 조합비를 가압류를 당했다가 이후 협상으로 인해 4월 사측이 이를 취소했으나, 11월 철도노조가 상급노조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꾸자 다시 64억여원의 가압류를 집행했다”며 “이는 강성노조인 민주노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사측의 ‘보복성 조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동발전측, 1인에게 1백2억원까지 청구**
발전노조의 경우 대부분 가압류를 취하했으나 아직 남동발전에 대해서는 가압류를 취하하지 않고 있어, 남동발전의 매각을 앞두고 노조를 가압류로 묶어 반발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기도 있다.
발전노조 이영우 동서발전 부본부장은 “조합원들이 파업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엄청난 가압류액 때문에 가족들의 눈치를 보느라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강우 국장은 “거액의 가압류, 손배청구는 소송비용, 인지대 등 엄청난 비용을 수반해 노조측의 민사적 대응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며 “결국 돈을 무기로 자본가들이 소송마저도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발전노조의 경우 남동본부 위원장 등 노조간부 4명에게 1인당 1백2억원의 가압류를 했다”며 “개개인이 받은 손배소 금액을 모두 합치면 실제 사측이 주장하는 손해액의 수십배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손배 가압류, ‘신종 노동탄압’으로 등장**
노사분쟁에서 손배 가압류가 늘어난 데 대해 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은 “일반적으로 노동조합활동으로 인한 형사처벌의 경우 그 대상이 노조 지도부와 주요간부에 한정되는 반면, 민사상 손배 가압류는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손쉽게 확대할 수 있고, 심리적 물질적 압박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손낙구 실장은 “DJ정부 들어서부터 노동쟁의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이 이전보다 감소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의 쟁의 개입이 줄어들자, 경영자 측이 손배 가압류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손 실장은 또 “손배 가압류가 불법파업에만 가해지지 않고, 대체근로인력 투입 저지하는 과정에서의 ‘업무방해’, 분쟁과정에서의 ‘명예훼손’에 까지 적용돼 노조의 운신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했다.
***“사법부의 무분별한 판결도 문제”**
손 실장은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된 데에는 사법부의 책임도 크다”며 “직권중재조항 등 법률 자체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사측의 입장에서만 판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노총은 “손배 가압류로 인해 야기된 고 배달호씨의 분신사망과 같은 비극적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먼저 공공부문에서의 손배 가압류를 철회하고, 기업에 대해서도 행정지도 등을 취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문제해결을 위해 ▲‘불법파업’의 빌미가 되는 악법 조항(직권중재조항 등) 철폐 ▲민형사상 면책범위의 확대와 ‘업무방해죄’ 적용의 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대상과 범위의 제한 ▲신원보증제도의 폐지 등을 요구했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시댁식구들에게 미안할 따름"**
가압류의 문제점은 실제로 가압류로 고통받고 있는 노조원들의 육성을 들어보면 그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는다.
다음은 손배 가압류로 고통 받고 있는 제주한라병원 노조원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들이다.
한라병원노조는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2002년 파업을 벌였고, 사측은 업무방해, 불법파업, 명예훼손, 의료법위반 등으로 고소, 고발했고, 현재 노조와 조합원들은 총 46억원 가량의 손배소송 및 가압류를 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 손해배상 청구금액 10억여원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사슬이 되어 나를 올가미처럼 감싸안아서 평생 고통받게 할 만큼의 액수이다. 정말 말도 안된다. 벗어나고 싶다. 두산 중공업 조합원 고 배달호 열사도 나랑 같은 심정이었을까? 나는 오늘도 올가미에 질려 허우적대고 있다. 김성수 원장이 하루빨리 정신차려서 빨리 이 사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정모씨)
"얼마 전에는 법원에 출두 명령을 받아 법원에 갔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는데 배상금액이 10억원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너무 떨렸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직접 변론해야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법원의 권위적인 모습과 법은 가진자의 편에 서있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재판날이 2월 27일로 연기되었지만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비정규직 윤모씨)
"가압류 라는 게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의 고통으로 다가올 때는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내로써 남편에게 미안하고 엄마로써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며느리로써 시댁식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가진자들이 갖고 있는 힘을 휘두르는건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그 힘으로 인해 가진 것 없는 우리는 더욱 힘들어 진다는게 옳지 않다 생각이 든다. 하루빨리 파업이 종료되어 병원에서 환자들과 엄마로써 아내로써 며느리로써 밝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규직 김모씨)
"무노동 무임금으로 시작된지 3개월째 되던 날 해고를 시키더니 월급, 상여금, 퇴직금에 50% 가압류를 걸면서 근무 6년차인 나의 통장에 약 2백 80만원의 돈이 들어왔다. 근무 6년차인 나에게 고작 3백만원도 안되는 돈이라니 어떻게 내가 일했었는데 너무나도 억울하고 허탈했다." (정규직 오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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