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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7억 통지서 받고 그냥 멍했다"

<현장 인터뷰> 손배소ㆍ가압류 중인 발전노조원 가족

"'손해배상 청구 금액 17억원'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그냥 멍했다."

2002년 3월 파업으로 인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한 발전노조원 가족의 말이다.

두산중공업 고 배달호씨 분신을 계기로 파업에 대한 가혹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재산가압류가 '신종노동탄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손배소와 재산가압류로 인해 엄청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는 구(舊)한국전력의 발전노조 노동자와 가족들을 13일 인천의 사택에서 만나 보았다.

지난해 3월 발전산업의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을 했던 구 한국전력의 발전노동조합의 간부와 노조원들은 사측으로부터 4백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현재 사측은 재정상의 흑자와 평화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을 이유로 손배소를 대부분 취하했지만, 아직 노조간부 및 노조원 49명에 대해 16억2천만원의 손배소를 청구해 놓은 상태다.

발전노조 김현진 홍보실장은 "손배소와 가압류가 일반 노조원에게까지 가해질 정도로 가혹하다는 여론에 따라 한전이 지부별로 '노사평화선언' 등의 활동을 통해 손배소 및 가압류를 대부분 풀어줬다. 하지만 노조간부 및 강성으로 지목당하고 있는 몇몇 노조원에 대한 손배소와 가압류를 풀어주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복직돼 근무하고 있는 발전노조 인천화력지부 안만호 부지부장은 "복직이 됐지만 가압류로 인해 급여의 50%만 받고 있다"며 "사측이 어떤 사업장은 일괄적으로 손배소를 취하하고, 어떤 사업장은 손배소를 고수하며, 비열하게 돈으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도 크다.

해고상태인 발전노조 김순섭 수석부위원장 부인 윤연자씨는 "파업 이후에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며 "명동성당에 3개월, 유치장에 3개월, 지금은 복직 투쟁으로 한달에 얼굴 볼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고 했다.

윤씨는 또 "회사에서 손배소를 걸고 가압류가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갖고 있던 차도 급하게 팔았다"며 "현재 해고 상태라 수입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 애들 학원 다니던 것도 다 끊고 동료 노조원들이 모금한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역시 해고상태인 발전노조 조진욱 대외협력실장 부인 김금전씨는 "처음에 손배액 17억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그냥 멍했다"며 "차라리 1천7백만원이면 '큰일이다' 싶겠는데, 17억이라니까 돈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소회했다.

김씨는 "17억이면 평생을 벌어도 갚을까 말까하다. 아마 3대에 걸쳐 임금가압류를 당해야 할 것이다"며 "너무 액수가 크니 돈이 아니라 회사의 으름장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가압류를 당한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이대로 가다가는 길거리로 내앉을 판"이라며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고통스런 심경을 피력했다. 이들은 또 "노동자들은 노동의 현장에 있을 때 가장 신바람이 나는 법"이라며 하루빨리 생산현장에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음은 이날 만난 발전노조 가족들의 육성 전문이다.

***"17억원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그냥 멍했다"**

프레시안: 현재 손배소와 가압류 상태는 어떤가?

안만호(발전노조 인천화력지부 부지부장):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손배소를 취하하고 가압류를 풀어줬다. 그러나 아직 노조간부 및 강성노조원 일부에게 가해진 손배소와 가압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12월 2일 복직하고, 25일 급여명세서를 받아봤는데, 50%가 가압류됐더라. 그러나 지금은 복직이 돼서 상황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직 복직이 안 된 노조원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김금전(발전노조 조진욱 대외협력실장 부인): 현재 남편은 해고 상태라서 어차피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가압류 당할 것도 없다. 처음에 손배액 17억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그냥 멍했다. 차라리, 1천7백만원이면 "큰일이다" 싶겠는데, 17억이라니까 돈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갚아야 할 생각도 들지 않고, 이건 그냥 회사가 으름장을 놓는 것 같다.

윤연자(발전노조 김순섭 수석부위원정 부인): 그 당시 회사에서 손배소를 걸고 가압류가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갖고 있던 차도 급하게 팔았다. 급하게 파는 바람에 시가보다 2백만원이나 싸게 팔았다. 현재 해고 상태라 수입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 애들 학원 다니던 것도 다 끊고,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 까먹으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저축액도 이제 바닥이 났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남편이 빨리 복직해, 급여의 50%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손배소와 가압류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나?

안만호: 당연히 불만일 수밖에 없다. 파업당시 인천지역 화력 발전소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지 않았다. 전력이 생산되지 않은 상태의 파업에 대해 엄청난 액수의 영업손실액을 청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사측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의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흑자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김금전: 처음에는 노동운동을 하고 파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노동자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사측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처사를 당하다보니, 왜 노동운동을 하는지,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남편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느끼고 가족들도 큰 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윤연자: 사택 마당에 천막을 쳐 놓고, 몇날 몇일을 투쟁했다. 남편은 불법파업 주동자라고 해서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며 명동성당에 3개월간 농성하다가 유치장에 3개월 동안 갔다 왔다. 지금은 해고 상태로 발전노조 중앙에서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한 번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나서서 했을 뿐이다.

***"가족들에게 제일 미안"**

프레시안: 가압류와 해고 등으로 생활이 어렵지 않은가?

윤연자: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수입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으로 먹고 살아왔다. 그나마 이제 바닥이 나가고 있는데, 동료 노조원들이 도와줘서 그럭저럭 생활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언제까지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김금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한전 사택이다. 이거라도 있으니까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해고 판결을 받으면 이 집마저도 쫓겨날 판이다. 손배소 액수 까지 떠안고 집마저 잃고 길바닥에 내 앉는다면 그건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된다.

안만호: 자식놈이 고3인데 이번에 수능시험을 봤다. 그런데 성적이 영 시원찮게 나왔다. 좋은 대학 보내려고 했는데, 지난 1년 내내 아빠가 회사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정직 상태로 지내다 보니 가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크다. 나도 그런데 어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겠나. 한창 힘들 때는 부부싸움하는 집들도 무지하게 많았다. 사측의 요구에 투항하는 서약서 쓰고 복직한 것도 결국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이 한 몸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 배달호씨 분신, "남의 일 같지 않다"**

프레시안: 故 배달호씨 분신사망 소식을 접하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윤연자: 어찌 그 심정을 모르겠는가. 우리는 그 분 심정 전적으로 이해한다.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돈으로 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짓인지 가진 사람들은 잘 모를거다.

김금전: 그 소식 접하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꼭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안만호: 차라리 감방을 몇 달 갔다 오라면 갔다 오겠다. 그러나 몇 억씩 되는 돈을 노동자에게 때려 버리는 것은 나가 죽으라는 소리하고 똑같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도 없는 돈을 갚으라고 해 놓으니,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프레시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만호: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살기 위해서는 민노당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민노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그러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노무현 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오늘날의 노무현이 있기까지 누가 밀어줬는가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발전산업의 민영화를 다시 검토해줬으면 한다. 발전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당장 전기생산 안되면 국가가 멈춰버린다. 필수 공익사업장이라고 해서 파업도 못하게 해 놓고 파업하면 불법이라고 잡아가고 손배소 몇 억씩 때리는 판에, 필수 공익사업장을 민간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전기 값도 엄청나게 오를 것이 뻔하다.

***'국민이 대통령' 약속 지켰으면**

김금전: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한다는 것 들었다. 그러나 이런 말이 국민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정말 가진 것 없고, 핍박 받으면서도 열심히 일하며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윤연자: 우선, 남편을 비롯한 우리 발전노조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이 됐으면 좋겠다. 일해야 하는 사람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른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손배소를 취하하고 다시는 이런 사측의 일방적인 압력행사가 없도록 힘써줬으면 좋겠다.

안만호: 그 심정 내가 잘 안다. 8개월 동안 해고상태에 있다가 복직해서 일을 시작하니 사는 맛이 절로 났다. 그 전에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물론 힘들고 열악한 작업환경이지만, 노동자는 노동의 현장에 있을 때 가장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빨리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소중한 작업장을 버리고 파업의 현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을 노당선자가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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