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의 안개속 행보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추진중인, 임기제 책임총리제를 골자로 하는 이원집정제적 권력 균점과 이를 전제로 한 통합신당에의 참여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정의원은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과도 여러 차례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뒤 상당히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져, 늦어도 9월초에는 대선 출마 및 신당 참여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출마할 생각이 있다. 무소속보다는..."**
정몽준 의원은 13일 오전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 참석차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는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론조사에서 저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나오니까 책임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당선 가능성을 검토하겠지만 당선 가능성이 없어도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게 정치개혁과 대선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가 있다면 출마할 생각이 있다"고 출마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정의원은 또 출마방식과 관련,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시원시원해서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게 정당중심이기 때문에 (무소속 출마가) 불리하다면 생각을 해보겠다"고 말해 민주당이 추진중인 신당에의 합류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의 신당창당 논의과 관련, "개인적으로 분권적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이와 관련, 신당의 외부인사 영입을 맡은 당발전위원장인 민주당의 박상천 최고위원과도 12일 만나 신당이 검토중인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개헌 등 권력분산형 개헌구상을 집중 설명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원은 회동 사실을 확인해준 뒤 "박 최고위원이 신당이 생각하는 개헌안을 설명하며 법사위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며 "개헌안의 골자는 대통령이 총리해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제도화하는 내용으로 분권적 대통령제로 표현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어 "신당의 개헌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분권형 권력구조의 핵심은 책임총리제"**
정의원은 이에 앞서 1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출마 및 신당참여 여부에 대해 “9월초쯤에 함께 밝히겠다”고 말했다. “9월 중순께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하던 종전의 입장보다 일정이 다소 앞당겨진 것이다.
민주당 재경선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참여 경선제로 후보를 뽑아 놓고 재경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노무현 후보가 참여하는 경선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애기냐는 질문엔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경선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정의원은 또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대해 “분권형 권력구조의 핵심은 책임총리제”라며 “대통령이 함부로 총리를 해임할 수 없도록 하는 책임총리제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에서 정강정책으로 삼으려는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찬성이다.
민주당은 신당 대통령후보를 뽑을 국민경선의 1위 당선자를 대통령후보, 2위 당선자를 총리후보로 확정한 뒤, 집권에 성공하면 권력을 양분한다는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이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의원은 신당 참여와 관련해 “지난달 하순 미국 방문 전에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과 만나 전반적 얘기를 나눴다”며 민주당과의 접촉사실을 먼저 공개하기도 했다.
***MJ신당 창당후 민주신당과 당 대 당 통합**
이같은 정몽준 의원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가능하다.
'책임총리제를 골간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 찬성', '노후보와의 재경선 가능성 시사', '9월초로의 대선출마 일정 앞당김'.
이전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골격을 갖춘 구상이다.
정의원이 생각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과연 뭘까? 현재 가능성은 세 가지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정 의원이 민주당의 영입 제의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당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곧바로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에 합류해 노무현 후보와 경선을 벌이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정몽준 의원의 최근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정의원의 신당 합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의 복잡한 난기류와, 이럴 경우 정의원이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정몽준 의원과 민주당이 각각 독자적인 신당을 만든 뒤 지분 50 대 50의 합당을 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현재 무소속으로 독자 정치세력으 구축하지 못한 상태인 정의원은 독자적 세력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정의원은 이미 언제라도 신당 출범이 가능할 정도로 암암리에 전국 규모의 조직과 상당한 자금을 마련해 놓은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두번째 시나리오를 선호하고 있다. 한대표는 신당 추진 방식에 대해 “민주당 외부에 독자적인 신당을 만든 뒤 기존 민주당과 통합하는 ‘당 대 당’ 통합 방식”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는 1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후보선출 방식은 당 대 당 통합후 국민경선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것은 신당을 창당해 통합한 후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세번째 시나리오는 민주당과 손잡지 않고 독자신당을 꾸려 연말대선에 독자출마하는 길이다. 이럴 경우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기존 제도정치권에 실망한 부동층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협공을 받아 지지율이 급락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요동치고 있는 정치권에서 아직 세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현실화될 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두번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최종적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는 '정풍(鄭風)'의 지속 여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수사, 민주당 주도 신당의 성공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말 대선까지 남은 시한이 불과 넉달밖에 안되는만큼 정의원은 자신의 말처럼 늦어도 9월초에는 최종단안을 내려야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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