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과 재보선 후 재경선을 공언한 노 후보 입장에서 8.8 재보선은 운명의 한판 승부다. 그러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김 대통령의 두 아들 홍업씨와 홍걸씨 구속의 여진 외에도 6.29 서해교전, 장상 국무총리 서리 임명을 둘러싼 논란, '마늘협상' 은폐 파문, 약값 로비의혹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기사회생을 꿈꾸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내세웠던 개혁성·도덕성을 공천의 제 1잣대로 삼겠다는 원칙에 기반, 서울 3곳을 전원 '재야' 출신으로 공천하는 등 '개혁인사'를 집중배치했다. 한편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는 광주 북갑엔 '구정치인'이라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상현 고문을 후보로 확정했다. 또 전주 군산엔 재경부 장관 출신의 강봉균 후보가 나선다.
이렇게 일견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재보선 후보들의 면면은 복잡한 민주당의 속사정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듯 하다.
***이목희, 유인태·장기표 등과 함께 내세운 '재야 카드'**
<표 민주당 8.8 재보선 공천자 명단>
서울 금천의 이목희 후보는 민주당이 지난 18일 광주 북갑 김상현 후보, 전북 군산 강봉균 후보와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공천을 확정지은 후보다.
이 후보는 김천고와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한국노동연구소장, 제2기 노사정위 상무위원, 제3기 노사정위 사무처장을 거쳤고, 81년과 91년에 '제3자 개입금지' 혐의로 두차례 투옥됐을 정도로 20여년간 노동운동에 전념해 왔다. 이 후보로서는 이번 출마가 '첫 외도'인 셈이다.
당초 김중권 전 고문의 추대가 예상되던 지역에 민주당은 노동운동가 출신의 새 인물을 내세웠다. 유권자 19만 2천명 중 노동자가 8만 7천명, 영세 자영업자가 1만 6천명에 이르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낙점이다. 이 후보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삶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아온 내 삶의 궤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 후보는 노무현 후보와도 인연이 깊다. 두 사람은 노사정 위원회에서 함께 일했다.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노 후보가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을 선택할 때 상의할 정도로 두 사람의 신뢰는 돈독하다. 이 후보는 "나는 그때 노 후보의 생각에 동의하며 무조건 내려가라고 했는데, '찬성하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며 고마움을 표했다"고 말했다.
한나당은 이 지역에 농민운동가 출신인 이우재 전 의원을 내세워 '농민운동가'와 '노동운동가'의 대결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지난 4.13 총선에서 낙선한 뒤 지구당위원장직을 맡아 꾸준히 표밭관리를 해온 이우재 후보에 비해 '외지인'이며 '정치 신인'인 이목희 후보가 아직까지는 상당히 밀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 지역엔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도 출마, 이 후보 입장에선 '대립각'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후보가 그동안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노동계내 진보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이우재 후보에 대해 후보 자신과 장남은 병역 면제를 받았고 차남은 제2국민역(방위) 출신이라는 점과 지난 15대 총선때 '안기부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에서 2억원의 안기부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와 함께 서울 종로에 유인태 전 의원, 영등포을에 장기표 푸른정치연합 전 대표를 후보로 내세웠다. 서울 지역 3곳 모두에 재야 출신 개혁 성향의 후보를 내세운 셈이다.
또 인천 서·강화을의 시민운동가 출신 치과의사인 신동근 후보, 부산 해운대·기장갑의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최인호 후보, 부산진갑의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이세일 후보, 경기 하남의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문학진 후보 등도 민주당의 '개혁성'을 드러내기 위한 '카드'다.
***'마당발' 김상현, 노 후보 병풍 역할 기대**
이와 동시에 민주당은 지난 2000 총선에서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대상에 올랐을 정도로 '구정치'의 상징적 인물인 김상현 상임고문을 당선 1순위 지역인 광주북갑 후보로 확정했다.
1997년 김 대통령과 전당대회에서 맞선 이래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으며, 16대 공천에서 탈락했던 김 고문의 공천은 당내 기류 변화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김 고문의 공천을 노 후보와 연계시키는 해석들이 많다. 지난 3월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김 고문이 '노풍' 점화에 일정정도 역할을 한 데 대한 일종의 '보은' 성격과 함께, 재보선 이후 예상되는 당내 갈등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수습해 달라는 노 후보 측의 기대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고문이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항상 비주류 측에 서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노 후보의 '탈 DJ' 행보와 연계시키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자타가 공인하는 '마당발' 김 고문이 재보선에 당선돼 원내 복귀가 성사되면 민주당의 세력판도에도 일정정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대선후보 재경선 등 임박한 현안 뿐아니라 추후 당권의 향배와 관련해서도 김 고문의 역할이 주목된다. 최고위원 경선 2위인 정대철 최고위원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는 김 고문이 노 후보의 '병풍' 역할을 자임하면서 신주류 끌어안기에 나설 경우, 한화갑 대표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김 고문이 오히려 노 후보의 정치적 정통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6.13 지방선거 후보경선 과정에서 광주 민심이 일부 돌아선 것을 고려할 때 적절치 못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대두된다.
이에 대해 김 고문은 "개혁성으로 따지자면 내가 개혁의 선구자"라면서 "허탈감에 빠져 있는 광주시민들이 나에게 정치의 중심에 서서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4일 후보자 등록 마감을 계기로 8.8 재보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한다. 그리고 민주당 이인제 의원, 김중권 전 대표, 이한동 전 총리,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정몽준 의원 등 '반(反) 노무현' 세력이 재보선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 안팎의 세력 판도, 등돌린 민심, 잇딴 '악재' 등 때문에 민주당 공천은 시끄러웠고 후보 확정 이후에도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잇따라 무소속 출마를 하는 등 후유증이 심하다. 이 모든 악재들을 극복하고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과 노 후보가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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