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재보선 후보 등록 마감일(23일)을 닷새 앞둔 18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13개 지역 공천자를 확정지어 정치권은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했다. 민주노동당도 서울 종로, 서울 영등포을, 경남 마산·합포 등 3군데에 후보를 냈다.
그러나 단 한곳, 자민련만은 후보를 한명도 내지 못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선거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정당투표에서 6.5%의 지지율로 8.1%를 얻은 민노당에 밀려 제4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은 이번 재보선에는 단 1명의 후보조차 내지 못하면서 날개 없는 수직추락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재보선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자민련**
자민련 김학원 총무는 18일 아침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8.8 재보선 공천과 관련, "아직 특별한 사람을 공천할 계획은 없다"며 "후보 등록 마감 전에 좋은 분들이 지원하면 공천할 수도 있지만 적절한 사람이 없다면 구태여 공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8.8재보선 자민련 불출마 선언이다.
자민련은 이력서를 접수시킨 정치지망생들이 극소수 있지만 지명도나 당선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판단,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련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을 충남 1곳에서만 당선시키는 대참패를 경험해야 했다. 선거 막판에 김종필 총재가 '충청도 핫바지론'을 다시 내세우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겼지만 대전시장과 충북지사를 한나라당에 내주고 말았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충청권 15곳을 제외하면 경기지역 1곳에서만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충남과 충북 지역의 자민련 당선자 총 수는 1998년 선거 당시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에 정가에선 "자민련 후보로 출마하느니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승산이 높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민노당 "제3당 입지 굳히겠다"**
자민련의 몰락상은 민주노동당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6.13선거에서 일약 제3당으로 떠오른 민주노동당은 상승 여세를 몰아 이번 재보선에서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에는 양연수 전 전국노점상연합 회장과 이선희 전 여성위원장 중 한 사람이 18일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된다. 민노당은 종로에서 한나라당 및 민주당과 뚜렷이 대비되는 후보 정체성을 중심으로 진보정당 본연의 정책 대결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최규엽 지구당 위원장이 출마하는 서울 금천지역에서도 중소사업장이 밀집해 있다는 지역적 특성에 기반, '서민·노동자 후보'라는 점을 앞세워 서민층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경남 마산·합포에는 80년대 노동운동가로 유명한 주대환 지구당 위원장이 출마한다. 민노당은 이 지역에서 시민단체와 함께 펼친 김현철씨 출마 반대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나라당의 지역주의에 맞설 유일 야당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방침이다.
노회찬 사무총장은 "각 지역이 모두 한국정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므로 우리 당의 본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보이며 당당히 선거에 임하겠다"며 "지방선거에서 얻은 8% 지지율을 웃도는 득표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민련, 유권자가 등돌리자 정파간 물밑협상으로 활로 모색?**
자민련의 이번 8.8선거 불참은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김종필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 등에서 "자민련은 이번 재보선에 해당지역이 없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 '충청도 지역당'임을 자인하는 패배주의적 발언이었다.
자민련은 그대신 물밑 작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는 듯 싶다. 유권자가 등을 돌렸으니, 정파간 물밑 협상을 통해 존재이유를 분명히 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개헌론, 정계개편론 등 연말 대선을 맞아 '정치권 흔들기'용으로 제기되는 모든 논의에서 자민련은 항상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 총재는 서해교전 이후 바빠졌다. 이를 계기로 퇴역장성 모임인 성우회를 비롯해 재향군인회, 참전전우회 등 군 관련 관계자들과 잇따라 만난 것을 비롯해 지난 15일에는 허화평 전 의원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는 등 5.6공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김 총재는 이들을 대상으로 '보수권 결집'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김 총재는 또 이인제 민주당 의원과 정몽준 무소속 의원에게도 구애의 손짓을 계속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이한동 전 총리도 포함된 상태다.
***신국환 파문 등 잇따른 몰락상**
지난 15일 밤 신라호텔에서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취재 기자들을 폭행하는 등 물의를 빚었던 사건도 이런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날 모임의 주역은 김종필 총재와 이한동 전 총리 등으로 기자들에게 회동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비밀모임이었다. 이 전 총리가 "나에게도 꿈이 있다"며 '대권행보'를 시사해왔고 김 총재도 지방선거 패배후 정치적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의미가 짙은 자리였다. 여기에 신 장관이 참석했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7.11 개각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던 내각의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회동사실이 드러난 사실을 모른 채 나오던 신 장관은 취재진을 보자마자 화장실에서 30여분간이나 피신했고, 그 후까지 자신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TV 기자들을 보자 분을 참지 못하고 "이 XX" 운운하며 폭언과 폭행을 했다.
신 장관은 지난 2000년 8월 '자민련 몫'으로 산자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지난해 9월 DJP 공조가 깨지면서 교체된 뒤 그해 11월 자민련을 탈당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 특위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다가 DJP 공조가 다시 복원되자, 지난 1월 다시 산자부장관에 임명됐다. 전형적인 '왔다갔다'였다.
지방선거 이후 자민련이 창당후 최대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위기는 정공법으로 풀어야 해법이 나오는 법이다. 선거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자민련이 과연 정파간 주고받기를 통해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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