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행보는 많은 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일류 기업이라고 자부하는 삼성 아래에 이렇게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데 많은 이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수리 요청이 많은 성수기에는 하루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리 요청이 적은 비성수기에는 안 그래도 얇은 월급봉투가 더욱 쪼그라들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삼성 직원이면 노조 필요 없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과연 그럴까.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더라도, 국가와 법이 알아서 삼성에 노동법 준수를 명령할까. 노동조합이 없어도, 삼성이 알아서 이 노동자들의 서글픈 사연에 귀를 기울일까. <편집자>
▲지난 14일 열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출범식 모습. ⓒ연합뉴스 |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유행한다.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거인들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높은 담을 쌓지만 뚫린다. '조사병단'이라는 일종의 특공대를 만들어 거인에 맞서 싸운다. 많은 사람들이 '거인은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공포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삼성은 노동조합에 일종의 '진격의 거인'이다. 삼성에 맞서 노조를 만들려다 대부분 잡아먹혔다. 꽤 오래전 삼성일반노조가 생겼지만 극히 소수다. 희귀성 질환으로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지만 착취의 최후 결과인 죽음 이후에는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과 반올림이 싸움을 이어나간다. 2년 전에는 삼성노조가 생겨 금속노조에 올해 가입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탄생했다.
"아휴, 고생길이네. 삼성에 맞서 싸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심심치 않게 접하는 반응이다. "삼성이라면 주목받으니까 다들 달라붙는 것 아니냐. 더 어려운 노동자들도 있는데."이런 반응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지를 안다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없다. 그들의 처지는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승리하기는 어려운 싸움"이라는 꽤 분석적인 평가도 나온다. '진격의 삼성'에 맞서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조사병단'의 신세인 것일까?
'철저한 개인주의'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라인의 제조업 노동자들이 아니다. 모두 각각의 기술을 가지고 개인에게 할당된 고장 수리 업무를, 고객을 혼자 찾아가거나 혹은 찾아온 고객을 만나 처리한다. 특히 외근직의 경우는. 아침 조회 때나 동료를 보고 간혹 퇴근 전에 업무 보고를 할 때 동료를 만난다. 그래서 철저한 개인적 노동이라고 분석한다. 개인적인 노동 속에서 집단적 힘이 나오겠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삼성의 관리 방식은 개인주의를 극대화한다. 임금은 철저히 개인당 실적에 따른다. 처리 건수에 따라 다르고 처리한 수리의 까다로운 정도에 따라서 다르다. 기본급의 개념은 사실상 없다. 그저 실적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개인주의를 극대화하는 삼성의 노무 관리가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무력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지난달 부산 동래부터 저항이 불붙어 지난 14일 노조 결성에까지 이르렀을까. 그들의 노동이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 서비스 센터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받는 수리 대행료는 건수에 따라 표준화되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관리에 따라 각 처리 건수를 할당받고 처리한 건수와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정도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가 결정한 보수를 받는다. 그리고 전국에 퍼져 있는 이들의 업무 실적은 삼성전자서비스에 그대로 집계된다. 비록 지역마다 다른 법인의 센터 사장들에게 고용되어 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동일한 노동 조건도 분명히 있다. 그러다 보니 동래센터의 분노는 포항센터의 분노로 이어지고, 곧 전국의 분노로 이어졌다.
"개인주의적 노동을 하면, 개인적 이익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는 분석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내가 만나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중에는 연봉이 꽤 높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왜 노조를 시작했을까?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저야 먹고살 만합니다. 그러나 후배들을 보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입이 돌아갈 정도로 하루 17시간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토록 일했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돈"이 아니었다. "고객에 대한 봉사와 헌신의 기쁨이 컸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이들은 '이익'만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로 고장 난 제품을 고쳤을 때 기뻐하는 고객의 모습을 통해 느껴지는 '노동의 성취감'을 중시한다.
아직은 모른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개인의 이익에 따라 흔들릴 것인지, 아니면 조직력이 커져 삼성전자서비스와 제대로 '맞짱'을 뜰 것인지. 그러나 내가 만나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안에는 '이익'을 넘어선 뭔가가 분명히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성 밖의 노동자들,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 밖의 사람들이다. 실제로는 '삼성 공화국'이라는 성 안에서 일하지만 주소는 성 밖에 있기에 이들은 '위장 도급'을 주장한다. 현대자동차도 그렇지만, 자본은 외부화 전략을 통해 사람들을 성 밖으로 몰아낸 후 이들을 철저히 착취한다. 성 밖의 반란은 별 상관없다는 식이다. 물 위의 우아한 백조가 물 속의 발을 열심히 움직이듯 실제로는 은밀한 지시를 통해 노조에 대응한다는 판단들이 많다. '노조를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센터는 폐업된다'는 도급업체 사장들의 하소연도 그간 수차례 공개됐다.
이건 현대차가 비정규직에게 사용한 방법과 같다. 물론 현대차 비정규직은 한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고,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은 삼성 밖에 있는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므로, 두 노동자가 일하는 물리적 공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프터서비스 특성상 회사와 고객의 연결망은 필수다. 삼성전자서비스 도급업체들은 이 필수 체계 안에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들이 직접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행동을 '우리와 무관하다'고 외면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과 부정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각 서비스 센터를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만큼, 직접 개입한 것이 드러날 경우 '친부모'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성 밖의 반란은 약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절실한 우산, 그런데…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면 "주체들이 각오하고 결단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한다. 철저한 감시와 통제, 사회 곳곳에 스며든 기업 권력의 지배 시스템 앞에서 벌이는 저항은 소수의 노동자들에겐 '고통'이다. 따라서 지금 절실한 것은, 이미 저항을 결단한 삼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그 지배 시스템에 맞설 저항 시스템이다.
에버랜드 노동자를 중심으로 2년 전 탄생한 삼성지회는 1년 반을 버티다 그들을 지켜줄 시스템이 필요했기에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임에도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는 전국에 산재한 서비스 센터의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전국에 펼쳐진 조직망을 통해 각 지역 서비스 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고, 전국의 조합원들과 만나 노조 결성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상투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해선 성공할 수 없다.
국정원 문제로 난리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 '기업 권력'에 밟힌 지 이미 오래다. 수많은 노동 시민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일터다. 이들은 자신의 일터, 즉 '기업'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독재'를 보고, 또 참는다. 진짜 민주주의를 일으키려면 기업 권력을 뚫어야 한다. 이를 외면하는 경제 민주주의는 헛방이다. 삼성이 진정한 일류가 되려면 기업 안의 독재를 버리고 기업 내 민주주의를 허용해야 한다.
장마철이다. 지금 다시 솟아오른 노동자들 위로 장맛비처럼 삼성전자서비스의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개인 면담하면서 탈퇴를 압박한다. 각 서비스 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곧바로 반응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절실함'이 묻어나온다. 진보 단체들이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듯 하는 그런 상투적 연대는 도움이 안 된다. 삼성 비정규직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구성된 연대 시스템이다. 빌어먹을 연대, 그 절실한 연대의 우산을 기꺼이 좀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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