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법의 개정 작업이 난항이다. 이중국적 문제에다 국제인권법 위배 논란까지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29일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게 되는 외국국적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수립(1948년) 이후의 외국국적 취득자로 한정한 ‘과거국적주의’는 그 이전의 동포를 차별하는 것이어서 평등권 위배라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위하여 또는 강제징용이나 수탈을 피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중국동포(현재의 중국 조선족)나 구소련동포를 재외동포법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민족적 입장에서나 인도적 견지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구인인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당초 미국국적 동포들에 비해 자신들이 출입국이나 취업 등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자 동일한 혜택을 받으려는 의도로 이 법의 위헌확인 청구를 냈다.
헌재 결정 후 이주영의원(한나라당) 등과 송석찬의원(민주당) 등은 현행 법의 ‘과거국적주의’ 대신에 ‘혈통주의’를 도입해 외국국적동포를 한민족 혈통으로 확대함으로써 중국 조선족도 수혜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이주영의원은 노동시장의 교란을 우려해 외국국적동포의 취업자유 조항을 삭제했다.
중국은 이 같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 리빈(李濱) 주한중국대사를 통해 재외동포법의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거듭 표명하는 한편 중국 조선족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려는 국회의원들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중국은 조선족에게 현행 법을 적용하는 것은 이중국적의 적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리빈 대사는 “중국 조선족은 중국 공민이고 이는 중국의 주권이며 국제법에 따라 한국은 조선족에 대해 속지관할권이나 속인관할권이 모두 없다”며 “중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만큼 한국의 재외동포법 개정 때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확히 표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현행 재외동포법은 외국국적동포에게 ‘사실상 이중국적을 허용한 것과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고 판시하고 있다.
한중수교협상에 참여했던 한 중국 외교관은 “중국정부는 중국 조선족에 대해 두 차례 국적확인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은 명확히 중국 국민이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개정안이 대만정책, 화교정책과 더불어 중국헌법에 명시한 3대 민족정책 중의 하나인 소수민족정책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정 방향에 따라서는 한중간에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인 재외동포법개정대책위는 “재외동포법은 출입국관리와 국내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법으로 이중국적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 개정의 난관은 이뿐만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구랍 21일 국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혈통주의는 국제인권법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으며 시민단체가 이를 반박하는 등 또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인종차별철폐협약 5조는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에 구별 없이 만인의 권리를 법 앞에 평등하게 보장’하도록 되어 있고 그 권리에는 출입국, 주거권, 재산소유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포함되어있다.
국가인권위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외국국적동포가 누리는 다양한 혜택은 ‘인종에 근거를 둔 우선권’이어서 인권 영역의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심리에서 ‘혈통주의는 국제법원칙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출했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혈통주의 입법에 문제가 있다면 당초부터 외국국적동포의 법적 지위보다는 외국인 처우의 전반적 개선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하되 재외동포에 대하여는 정착한 현지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하고 문화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붙였다.
개정대책위는 “국가인권위의 견해는 ‘식민시대 국권의 공백기였던 과거 역사에 대한 고려 없이 재외동포를 외국인이라는 동일 범주에 넣어 대처하려는 몰역사적인 태도임’을 지적하는 전문가의 견해가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개정대책위 관계자는 “정부가 외국국적동포에게 자유로운 출입국과 취업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불법체류를 완화하고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외국인 노동시장과 취업 허용범위 등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시민단체와 의견을 교환하는 등 충분한 검토를 한 후에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과 국가인권위, 시민단체, 중국 간에 개정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으나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법 개정 방향을 표명하지 않고 않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확인 취지는 외국국적동포들 간에 불평등을 지적한 것이지 중국 조선족에게도 반드시 특혜를 주라는 것은 아니다.
이에 정부는 중국 조선족 등도 외국국적동포에 포함시키되 이들에 대한 특혜를 실질적으로 대폭 축소 또는 삭제함으로써 법 개정에 따른 논란을 피해나가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재외동포법의 개정시한은 2003년 12월말이지만 이 법의 혜택을 입고 있는 1만3천여 외국국적동포의 향후 진로를 위해서 개정방향이 조속히 결정되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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