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9일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외국으로 나간 재외동포(특히 외국국적 동포)에게만 이 법률을 적용토록 한 것이 평등권 위배라며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낸 중국 조선족 동포나 이를 지원해온 시민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현재 사실상 재미동포에게만 적용돼온 이 법이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갔던 재일동포나 사할린 거주 동포, 독립운동 등으로 중국이나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던 동포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은 99년 법 제정 당시 중국이나 러시아와 외교적인 문제가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이다.
재외동포법은 한국 국민이 아니더라도 외국국적을 가진 동포에게는 최장 2년간의 체류 및 체류 연장, 취업 및 경제활동의 자유, 부동산 금융 외국환거래 등에서 특혜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 입법에서 그 대상자를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자’로 한정함으로써 1948년 정부 수립 전(주로 일제시대)에 국외로 이주했던 중국 일본 구소련 등에 있는 외국국적 동포를 배제했다.
이들을 제외한 것은 ‘중국 등의 항의’에 따른 것인데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불일치 결정 취지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예컨대 혜택을 주려면 재미동포나 재중동포에게 평등하게 주라는 취지이지 재중동포에게 반드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헌법소원을 낸 조선족 동포나 이를 지원한 시민단체들이 기대한 대로 중국 거주 ‘조선족’들도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 직결된다.
이 법의 제정 당시 중국이 강하게 항의하고 법무부가 입법과정에서 이를 수용한 점을 되짚어야 한다.
중국의 조선족 등 소수민족 정책은 헌법에 그 지위를 명시해놓을 정도로 체제 성립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6.25전쟁 중인 1950년 9월 재중 조선인에 관해 ‘그들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북한과의 연결을 인정했으나 그해 10월 티베트를 침공한 후 바뀌었다. 50년대 북한과 재중 조선인의 국적을 일괄해 중국으로 변경하기로 협정을 맺고 이들에게 소수민족의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철저하게 중국 국민으로 간주했다.
티베트 및 대만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은 같은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어떠한 경우이든 중국국가체제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선족의 이탈은 티베트와 대만의 이탈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국민인 조선족에 대해 어떠한 종류든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데에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재외동포법의 개정 문제는 중국의 국가체제와 직결돼있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중국 내 조선족의 법적인 지위 문제는 오랫동안 거론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중국 내 조선족은 자진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법리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중국과의 수교가 없었기에 북한과 중국이 맺은 협정은 ‘법리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중국과의 수교 전 법무부 관계자들은 중국 내 조선족이 국적을 회복해달라고 신청할 경우 ‘법리상으로’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고 우려했었으나 이들이 귀환할 수 없었기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수교 시 한국이 현실적인 상태를 고려해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음으로써 중국 내 조선족이 중국 국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 마당에 한국이 중국국민에 대해 선별적으로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데 대해 중국 정부가 항의해도 달리 대응할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의견을 내지 않고 있으나 결정 취지에 따라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일부 비공식 견해를 보이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헌법소원을 낸 중국 조선족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법무부가 법을 개정할 경우 외국국적 동포에 대해 명문으로 법적인 혜택을 부여하기보다는 법은 선언적으로 하고 행정 조치로 혜택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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