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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소속 싸이가 'B급 문화'? 싸이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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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소속 싸이가 'B급 문화'? 싸이는 위대하다!

[정희준의 '어퍼컷'] 싸이, B급의 가면을 벗어라

싸이의 '젠틀맨'이 폭발적 관심을 받으면서 이런저런 논쟁이 뜨겁다. 지나친 선정성과 여성 학대 장면이 그렇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수준을 넘어 약자인 여성을 장난의 대상으로 여기고 학대를 반복하는 '젠틀맨'은 '저질 마초 문화'보다도 저질이다. 싸이와 정형돈이 여성을 내동댕이치고 배를 잡고 신나게 웃는 모습에서는 가학성마저 엿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다수는 싸이를 옹호, 아니 '보호'한다. 이들의 주된 논리는 싸이는 원래 'B급 문화'를 지향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가진 자나 세태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 '젠틀맨'이 불편을 넘어 불쾌하더라도 "출발부터 B급이었던 싸이에게 도덕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라는 식의 의견도 상당수다.

싸이도 자신은 B급 문화를 지향한다면서 "'모범'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모범을 싫어하면 B급인가? 섹스와 쾌락으로 가득한 그의 2집 앨범 '싸2'는 '19금' 노래가 7개에 달했다. 섹스를 노래하고 19금이 많으면 B급인가? 모든 이들 그리고 모든 언론이 싸이는 B급 문화의 '원조'라 하고 '지존'이라 한다. 정말 싸이는 B급 문화에 해당하는 가수인가?

싸이가 B급 문화라고?

B급 문화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인디 문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부상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그러나 B급 문화에 대한 다양한 설명은 있으나 대부분이 동의하는 개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난감함(?)은 우리가 쓰는 'B급 문화'에 조응하는 영어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급 문화는 하위문화, 비주류 문화, 대중문화, (고급 문화에 반하는) 저질 문화, 소수자 문화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이들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또 폭력과 섹스 등 억압된 본능을 자극하는 문화로 억눌린 인간의 본성을 해소시켜 주는 일종의 해방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B급 문화만이 배타적으로 소유한 특징은 아니다.

B급 문화는 저항성을 내포하기도 하고 따라서 기득권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주류와 맞서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정도는 아니다. 비주류로서의 정체성에 순응하고 스스로 B급에 만족한다. 이렇듯 B급 문화를 정의내리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작업이 된다. 많은 학자들이 기대고 있는 영어권 문화 연구에서조차 B급 문화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B급 문화는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부상이 가져온 매우 한국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B급 문화는 '가벼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질 낮은 싸구려 문화'라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B급 문화인가? 애매할 때는 질문을 뒤집어 보면 예상 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무엇이 B급 문화인가'를 '무엇이 B급 문화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자. 그러면 싸이는 B급 문화의 원조, 전도사는커녕 B급 문화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상업주의 미디어의 총아이자 자본의 기획 상품이며 해외 진출을 통한 이윤 창출에 매진하는 가수가 B급 문화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싸이는 B급도 아니고 하위문화도 아니고 언더그라운드 문화도 아니며 저항 문화도 아니다. 100퍼센트 주류 문화이고 상업 문화다.

'B급 문화'로 포장된 '저질 문화'

▲ 싸이는 진짜 'B급 가수'인가? ⓒ뉴시스

B급 문화를 논할 때 중요한 것은 생산 방식이다.

사실 B급 문화의 원형은 1930년대 등장한 미국의 B급 영화(B movie)다. 주류 프로덕션 라인이 아니라 별도의 라인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무명 배우를 활용해 3일 만에 만들기도 하는, 미학적으론 빵점짜리 영화들이다. 1960~70년대 포르노 영화나 슬래셔 무비도 여기에 속한다. 결국 B급 영화의 핵심은 그 내용보다는 제작 체계에 있다.

예술학 분야의 한 교수는 "싸이의 음악이나 뮤직 비디오 생산 방식은 B급일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싸이는 미학적으로 비주류를 표방하지만 제작 체계로는 완전히 A급"이라면서 "'젠틀맨'은 차라리 '저질'이라고 표현해야"지 "YG엔터테인먼트 같은 거대 기획사의 상품을 B급 문화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보다 더 야하고 도전적이지만 스눕독, 에미넴, 레이디가가를 아무도 B급 문화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특히 그는 싸이가 주류 상업 문화로 돈을 벌고 인기를 얻음에도 "그걸 B급이라 포장하려는 의도가 가증스럽다"고 말했다. "B급이라고 내세우면 어딘가 저항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각을 이용해 논란을 합리화 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싸이는 스스로를 B급으로 포장하며 자신의 상업주의와 선정적이고 마초적인 본질을 가린다. 특히 가학 성향의 여성 학대 장면은 <무한도전>의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 등을 내세우고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함과 뒤섞어 물타기 한다. 매우 영리하다. 비난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극단적으로 유치하게 표현해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쁜 문화'다.


싸이 vs. <나는 꼼수다>

싸이의 성공 이후 많은 이들이 B급 문화를 말하는데 개념의 혼란이 심하다. 특히 저항이나 일탈을 담고 있으면 무조건 B급 문화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언급했듯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 방식, 그리고 자본이나 시장과의 친밀도이다.

펑크나 힙합 음악도 시작은 비주류였고 과거엔 B급 문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상업 자본주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음반 산업의 품에 안긴 이후로는 더 이상 B급 문화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갱스터, 누아르, 슬래셔 영화들이 대중화되고 상업화되면 더 이상 B급 영화라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베르트 로드리게스의 영화를 아무도 B급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거대 기획사의 뒷받침을 받으며 방송 출연도 골라 하고 모든 언론이 집중적으로 다뤄주고 서울시의 배려로 서울광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고 해외 홍보를 위해 출국하는 가수의 모습은 B급 문화일 수 없다. 1년에 수백억 원을 번다면 그는 B급 아티스트가 아니다. 온 국민의 응원을 받는 B급 아티스트가 싸이 말고 지구 어디에 또 있겠는가. 국위를 선양하고 경제 효과까지 창출하는 문화가 B급 문화 맞나.

출발부터 B급 문화였고 일관되게 B급 문화였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도 B급 문화로 남은 것은 <나는 꼼수다>가 유일하다. '저질'의 측면에서도 싸이와 <나는 꼼수다>는 막상막하다. 그러나 제작 방식과 상업성에 있어서 이들 둘은 비교불가다. 싸이는 철저한 시장 조사와 마케팅 전략에 의존해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대본도 없이 모여 욕지거리와 함께 제멋대로 지껄여댔고 졸면서, 자면서, 먹는 동시에 싸면서 싸구려 저질 작품을 만들었다.

깊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B급 아티스트?

이들 둘을 구별 짓는 또 다른 하나가 있다. '저질'로서의 일관됨 외에도 <나는 꼼수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끝까지 견지했다. 비키니 파문 때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다른 일에서도 사법 처리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싸이는 그 반대였다.

싸이는 스스로 '모범'이나 '건전'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언급했듯이 그의 노래는 19금 천지다. 그러나 그도 상업적 성공, 그리고 '미국 진출' 앞에선 순하디 순한 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후회하고 사과하고 반성했다. 돈 앞에서 기성 체제에 순응하는 것, 이것도 새로운 B급 문화의 특징인가?

그는 2002년 한 공연에서 미군 장갑차 모형을 무대 바닥에 집어던졌고, 2004년 넥스트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면서 미국을 공격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작년(2012년) 미국에서 '강남 스타일'이 성공하고 나서 그의 반미 공연과 가사가 문제가 됐다. 가사에서 그는 '이라크 포로를 고문한 미군의 딸, 어머니, 며느리까지 죽이라'고 했는데 심지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라'고까지 했다. 당연히 미국 주류 언론이 기사화했다.

그러자 싸이는 놀라운 변신을 했다. 단번에 지금까지의 싸이와는 전혀 다른, '굴종의 싸이'가 된 것이다. 곧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로 미국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나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주둔 중인 미군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그 가사의 의미는 사실 '반미'가 아니라 '반전'이었다고 꽤 복잡하게 설명했다. 나아가 '미군 앞에서의 공연이 영광이었다'고 표현하고 '그러한 가사를 쓴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깊은 유감이며 영원히 죄송할 거'라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과를 받아줄 것을 호소했다.

싸이는 지난 13일 있었던 공연에서 다시 한 번 변신한다. 그는 공연 말미에 "해외에서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느냐"고 걱정들을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망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며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신곡 홍보를 위해 미국 방문 중이다.

5만 관중 앞에서 3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단독 콘서트의 주인공 싸이. 이러한 싸이를 체제에 도전하는 아이콘으로 보는 사람들. 싸이의 '저질 문화'를 'B급 문화'라 강변하며 그를 보호하는 사람들. 싸이의 완벽한 승리다. 그대는 위대하다, 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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