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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쥔 지구의 '신'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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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쥔 지구의 '신'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

SF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창규가 2013년 '프레시안 books'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국내외 과학소설 및 SF 세계와 관련이 있는 교양 과학서를 소개할 '기계 나비의 꿈'은 현실에서 이 기사에 접속할 독자 여러분을 잠시간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본 코너는 4주에 한 번 만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픽션이란 어떤 매체에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든 간에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 가능성의 역할과 효율이 극대화된 것이 SF이다. 따라서 SF를 정형화하려는 시도는 오만하고 동시에 작가와 감상자 모두에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SF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SF에는 '기술의 격차'라는 필수적 요소가 등장한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에서 가장 큰 문제도 과학 지식과 기술의 격차다. 할리우드 생산품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외계인 이야기는 지구 침공이고, 어느 한쪽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침공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지구인 측이 즉석에서 생각해 낸 기지로 우위에 있는 외계인을 이기면서 끝난다.

조금 더 주제 의식을 가진 SF에서는 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입장 차이, 계급 차이를 다룬다. 최근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말해보자면 기술의 독점은 곧 힘의 독점이다. 또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정보는 곧 힘이며, 정보의 불균형은 권력의 불균형이다.

기술차가 야기한 무력과 정보의 불균형. 하지만 이 둘이 한 몸임은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 둘 다 못 가진 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육체와 정신을 모두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신들의 사회>(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행복한책읽기
SF 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는 앞서 얘기한 기술과 권력의 불균형을 배경에 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야기의 공간 배경인 행성에는 신이 여럿 존재한다. 그 들은 스스로가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신들이라고 자처한다. 신들은 그 이름에 걸맞은 물리적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 환각을 자유롭게 만드는 능력, 전자기력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불을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들을 우러르며 사는 인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모습은 초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기술 발달의 결과이다.

이 행성은 지구가 아니다. (본문에서 지구라고 표현하진 않지만 아마도 지구임에 분명한) '우라스'라는 행성이 멸망하면서 우주선으로 탈출한 무리들이 새로 정착한 장소이다. 그들은 이 행성에 살던 원주생물들을 처치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첨단 기술을 이용해 육체에서 육체로 건너뛰며 일종의 영생을 누린다. 또한 인위적으로 개발한 물리적 능력을 강화한다. 그러는 동안 거쳐 온 육체들 간의 관계로 후손들이 태어난다. 최초의 탈출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기술을 후손에게 전해주지 않았고, 그 결과 신과 인간이라는 구분 또는 기술(에 대한 정보)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구분이 탄생한 것이다. 신들은 '윤회'를 자동화된 기술로 구현해 대중(인간)에게 제공하고, 헌납한 재화가 많을수록, 충성스러울수록 인간에 가깝게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 생명의 연장을 무기로 삼아서 지배 구조를 굳힌 것이다.

주인공 '샘'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샘은 최초의 탈출자, 즉 1세대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자기력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이 되어 편히 살기에 충분했건만 샘은 그런 혜택을 사양하고 지배 원리인 힌두교에 따르는 대신 불교를 설파한다. 그리고 붓다를 연기하면서 신들에 대한 저항을 이끈다. 샘은 인간들에게 기술을 개방하는 것이 저항 운동의 목표이자 자신의 목표라고 공언하고 다닌다.

작가인 로저 젤라즈니는 지식의 공유와 계층 해소에 이르는 길을 그리면서 그 중심인물을 가진 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설정했다. 주인공인 샘의 적들 또한 가진 자들이다. 작가도 소설 속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샘'의 진짜 동기는 어쩌면 단순한 반항 의식이나 무료함에서 탈출하고픈 정신적 사치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설정은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SF에서는 매우 고전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초인물의 구조를 따름으로써(이 소설은 고전적이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기는 하다. 1967년 작이므로) 대중적인 흥미도는 급상승한다. 그리고 영웅 무협담으로 볼 때 <신들의 사회>는 꽤 세련되며, 재미도 최상급에 속한다. 하지만 계급 해소를 부르짖는 자의 주된 활동이 결국은 상위 계급의 말살/복수/전쟁이라는 점은, 작중에서 샘이 '사기꾼'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란한 초인 모험담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렇듯 <신들의 사회>는 계급의 문제, 기술 편중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의 옷소매를 잡아끄는 무게 추는 영웅들의 개인적인 고뇌와 활약 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잠깐. 이 책을 독파하고 현란한 SF식 신화를 읽었다고 책장을 덮으며 뇌까지 덮어버리기 전에 생각해보자. 지금 인터넷 상에서 이 서평을 읽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느 계층에 속할까? <신들의 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지배층에 속하지도 않겠지만, 우리는 손가락만 몇 번 꼼지락거리면 남과 즉시 소통하고 꽤 많은 대중에게 자신의 뜻을 내보일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그 정도의 기술은 누리고 있다.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정보가 힘'이라는 말에 인터넷 회선 제공 업체나 이동 통신사의 광고 문구 이상의 진실이 들어있다면, 우리에게는 적어도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는 것 이상의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신들의 사회>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정보와 기술의 사각지대에 있지는 않은 우리는 이 힘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온갖 거창한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걸 전부 글로 옮기지는 않을 생각이다. <신들의 사회>에서 샘이 겪었듯이 섣부른 과장은 어리석은 기대를 품게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기술을 이용해서 이 세계의 구조를 더 많이 파악하고, 왜곡을 꿰뚫어보는 것이야말로 첫걸음으로 적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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