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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이 이름 석자는 불멸할 것이니…"

[김대중 평전 '새벽'·끝] 영면

영면

2009년 7월 13일 아침, 김대중이 기침을 했다. 기침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비서 이승현이 투석 치료를 위해 사저로 들어서는 간호부장 김전우를 불러 세웠다.

"대통령님 기침 소리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폐렴 같아요."

그날 김대중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투석 치료도 고통스러워했다. 김대중은 다음 날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가 초청하는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김대중평화센터 국장 장옥추가 그날 발표할 연설문을 또박또박 읽었다.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의 의견을 반영한 원고였다. 김대중은 누워서 이를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핵화를 통한 점진적 관계 개선'이라는, 장기간 소요되는 단계별 접근 방식을 지속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사태가 급박하다. 북한의 핵무장을 조속히 막아야 한다.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 방법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평화 협정, 외교 관계 수립, 경제 협력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핵 폐기를 실현하는 일괄 타결 방식으로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9·19로 돌아가자'는 제목의 연설문이었다. 생애 마지막이며 읽지 못한 연설문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한반도 평화를 걱정했다.

오후에는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주치의 장석일, 의사 정남식 등이 달려왔다. 폐렴이 분명해 보였고, 의료진은 입원을 권유했다. 매우 불길했다.

김대중은 입원하기 전에 비서관들의 주례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중국 국가 부주석 시진핑, 전 국무위원 탕자쉬엔, 인민외교학회장 양원창에게 보내는 감사 서신에 '金大中'이라 서명했다.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퇴임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김대중을 극진히 예우했다. 오후 4시 30분 집을 나섰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길이었다.

김대중은 세브란스 병원 20층 VIP병동 2011호실에 들었다. 공보비서관 최경환이 이를 공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지난 주말부터 감기 기운과 미열이 있어 폐렴 여부에 대한 정밀 검진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로 13일 오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김대중은 자신을 돌보는 의료진에게 사의를 표했다. 저녁 식사도 비교적 잘했다. 그런데 그날 밤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입원 3일째인 7월 15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의 투병은 너무도 힘이 들었다. 매 순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세계에서, 국내에서 많은 무리가 눈물로 기도했지만 김대중은 자꾸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털장갑과 털양말을 짜서 끼워주고 신겨주었지만 김대중의 몸은 자꾸 식어갔다.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새벽. 이희호는 중환자실로 내려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마른 손이 유독 차가웠다. 아내는 고개 숙여 기도했다. 운명의 순간이 오고 있었다. 링거병 거치대에 묵주가 걸려있었다.

아침 일찍 보도진이 몰려들었다. 동교동 사람들이 병원에 집결했다. 아내 이희호가 검은 옷을 입었다. 비서들도 검정 넥타이를 찾았다. 그들의 흐느낌이 2011호 병실 밖까지 흘러나왔다. 소리 내면 부정 탈까봐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렀다.

마침내 거인의 심장이 멎었다. 입원한 지 37일만이었다. 김대중은 한 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비서실장 박지원이 의사들과 함께 보도진 앞에 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여러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셨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하셨습니다."

연세의료원장 박창일이 사인을 밝혔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심장이 멎었고 급성 호흡곤란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셨습니다."

거인이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세계 각국에서 애도 성명이 날아오고 분향소마다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월 20일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입관식이 있었다. 김대중의 마지막 모습은 편안했다. 김대중은 향나무 관에 뉘여졌다. 유족과 측근들 44명이 이를 지켜봤다. 이희호는 슬피 울었다. 자신의 자서전 <동행> 첫 장에 마지막 편지를 써서 관 속에 넣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내 이희호.

장례는 국장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국장은 나라에서 무슨 시혜를 내리듯 결정되었고, 무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김대중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임에도 일요일에 묻혀야 했다. 누군가 울먹이며 말했다.

"서거 후에도 눈치를 봐야 하는가."

그래도 무리지어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가신 님의 뜻을 헤아리자고 했다. 그렇게 김대중의 마지막 가는 길도 가슴을 졸여야 했다.

영결식은 23일 오후 국회 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렸다. 김대중이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던 곳이었다. 북한 노동당 비서 김기남이 조문단을 이끌고 남으로 왔다. 전 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 전 중국 국무위원 탕자쉬안, 전 일본 중의원의장 고노 요헤이, 주한 러시아 대사 글레프 이바셴초프, 영국 교통장관 앤드루 아도니스 등이 참석했다. 세계 각국에서 장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여성재단 이사장 박영숙이 추도사를 읽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독재 정권 아래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총과 칼이 가슴을 겨누어도 임께서는 의연하게 일어나셨습니다.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하시고 늘 죽음이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셨습니다. 역사와 국민을 믿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통령을 인동초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익은 열매가 겨울 눈 속에서 더욱 붉었으니 인동초는 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험한 곳에 계셨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은 강철 같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의 믿음대로, 예언대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한 일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도 당신이 고마운 줄 몰랐습니다. 이제 살펴보니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당신만한 지도자를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라에 큰 일이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국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입니까. 당신께서 떠나시니 알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당신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알겠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 피어났습니다. 당신께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신이 일구어낸 민주 사회는 분명 이전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진정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여성부를 신설하고, 정보 고속도로를 완성하여 정보 기술 강국을 만들었습니다. 주변을 맴돌던 한국 외교를 국제 무대 한 가운데로 끌고 나가 나라의 격을 높이셨습니다. 재임 중 이미 한류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흘렀고, 월드컵 4강의 함성에 세계인이 놀랐습니다. 문화를 개방하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인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말씀대로 깨어있겠습니다. 우리들이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습니다. 이 땅에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면 당신은 하늘 저 편에서 무지개로 뜰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은 진정 위대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불멸할 것이니 이제 역사 속에서 쉬십시오.

대통령님, 당신의 국민들이 울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저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김대중이 없는 시대가 실로 두렵지만 이제 놓아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벌써 그립습니다. 늘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영결식장에 뜨거운 햇살이 쏟아졌다. 참석자 모두 땀에 젖었다. 장의 행렬이 영결식장을 서서히 빠져나와 동교동 사저와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손자가 김대중의 영정을 들고 할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었다. 도서관 집무실 책상에는 읽다만 책들이 놓여있고 한 곳에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다. 벽에는 김대중이 늘 살펴보던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사저로 들어서자 명창 안숙선이 만가를 불렀다. 곤한 몸을 뉘었던 침실을 돌아 서재에 이르니 인공투석기가 소리 없이 서있었다. 벽에는 젊은 날 포효하던 유세 사진이 영정을 내려다봤다. 비좁은 목욕탕에는 간이의자와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김대중이 남긴 것들이었다.

영정은 한국 현대사의 맥박이 뛰던 바로 그 집 '동교동'을 나왔다. 영구차가 시청 앞 서울광장에 이르자 수만 명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김대중을 맞았다.

안장식은 23일 오후 5시가 넘어 서울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됐다. 오후 6시쯤 묘소에서 하관식이 거행됐다. 관 속에는 김대중의 손수건과 성경, 이희호가 쓴 마지막 편지, 전 생애를 기록한 지석이 들어있었다. 국화꽃을 바치는 이희호의 손이 떨렸다.

이희호의 눈물이 떨어진 관이 유택으로 내려갔다. 산 자들이 돌아가며 흙을 뿌렸다. 위대했지만 그래도 고단했던 생을 덮었다. 저 남쪽 하의도에서 가져온 흙도 관 위에 뿌려졌다. 나도 흙 한줌을 보탰다. 김대중의 유택은 온통 오색토였다. 신이 좋은 흙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덮어주었다.

멀리 하늘은 푸르고, 지상의 눈물은 맑았다.

김대중 평전 <새벽>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대중 평전 <새벽>은 사계절출판사에서 새롭게 보완하여 8월초에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김택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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