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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하느님' vs. MB의 '하나님'…진짜 사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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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하느님' vs. MB의 '하나님'…진짜 사탄은?

[김대중 평전 '새벽'·52] 하느님은 아시리라

하느님은 아시리라

1980년 사형수 김대중은 감옥에서 차분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 품안에 안기는 것이었다. 한 때는 "왜 악인들을 놔두고 나만 거두려 하시냐"며 번민도 했지만 결국 김대중은 마음의 평화를 찾고 원수들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옥중의 수상을 보면 최후를 앞에 둔 비장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대중은 옥중 서신과는 다른 열두 편의 수상을 감옥에서 썼다.)

"나는 박 정권 아래서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은 사람이지만 나에 대한 납치범, 자동차 사고 위장에 의한 암살 음모자들, 기타 모든 악을 행한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의 뜻에 따라 일체 용서할 것을 선언했다. 나는 지금 나를 이러한 지경에 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증오나 보복심을 갖지 않으며 이를 하느님 앞에 조석(朝夕)으로 다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간까지 나의 반대자들로부터 무서운 증오와 모욕과 보복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하느님만은 진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나의 행적대로 심판하실 것이고 우리 국민도 어느 땐가 진실을 알 것이며 역사의 바른 기록은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이 안 계신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국민과 역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나의 일생은 완전한 실패작이었다는 한탄 이외에 나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이겠는가?" (1980년 12월 3일, 미공개 수상)


또 감옥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이 현재 나의 믿음을 지탱하는 최대의 힘이며, 언제나 눈을 그분에게 고정하고 결코 그분의 옷소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항시 기도하기를 '하느님은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제가 믿습니다. 저의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이것이 저를 위하여 최선이 아니면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하심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980년 11월 21일)

훗날 책으로 묶여 나온 <옥중 서신>은 아내와 가족에게 보내졌지만, 그것은 또한 하느님에게 띄운 편지이기도 했다. 신앙 고백이고 기도문이며 성서 해설이었다. <옥중 서신>이 문명 비평과 역사 탐구, 민족과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고찰에만 머물렀다면 단지 지식의 화려한 나열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글들이 신에게 받쳐졌기에 그 안에 울림이 있었다.

김대중에게 예수님은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손을 잡아주셨다. 다시 옥중에서 올린 김대중의 기도를 들어보자.

"주님은 제게 세 번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는 납치 당시 납치자들이 바다에서 저를 꽁꽁 묶어서 이제 막 물에 던지려고 들고 나가려는 순간 제 옆에 서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순간이 제게 삶의 구원이 온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재작년 제가 수사 기관에 있을 때(80년 신군부에 끌려갔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회당장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의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

셋째는, 제가 여기 교도소로 온 직후 꿈에 나타나셨는데 죽음의 곳에 버려지기 위해 발가벗긴 채 혹한 속에서 수레에 실려 교외의 황야로 끌려갔을 때 하늘에서 내린 두 줄기 빛이 저와 저를 끌고 간 일꾼까지 따뜻하게 해주면서 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 모든 저에 대한 사랑이 오직 저로 하여금 이웃과 이 사회를 위한 봉사의 한 도구로 삼으시기 위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1982년 12월 15일)


ⓒ프레시안(손문상)
김대중의 신앙심은 감옥에서 깊어졌다. 감방은 김대중에게 지식을 섭취하는 대학이자 하느님 말씀을 얻는 수도원이었다. 안병무의 <역사와 해석>을 읽고 민중 신학에 새롭게 눈을 떴다. 김대중은 성경의 역사를 통해 교회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민주화 동지가 쓴 <역사와 해석>은 몇 번이나 정독했다. 신부 테야르 드 샤르댕의 저서들을 통해서는 '왜 선과 악이 공존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

"하느님이 만든 이 우주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불행과 죄악이 있다. 인간이 할 일은 하느님과 합심해서 이 세상의 완성을 통한 하느님의 제2의 창조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 완성의 진도에 따라 불행과 죄는 극복되고 최종적 완성을 통해서 제거될 것이다. 그것이 예수 재림의 날이다."

김대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에는 신 앞에 엎드렸다. 겸손하게 '지난 날'을 바쳤다.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도 가족, 비서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또 아내 이희호와 단 둘이 있을 때도 기도드리고 찬양했다. 납치되어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 예수님을 본 후 하루도 기도를 쉰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하느님을 찾았다.

김대중의 깊은 신심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김대중과 일면식도 없었던 김하중이 국민의 정부 의전 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 근무가 내키지 않았다. 대통령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취임식 다음 날 그런 생각을 말끔히 털어냈다. 대통령은 2월 26일 종교계 및 인권 단체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사말을 했고, 그 말은 크리스천 김하중을 감동시켰다.

"사실 그동안 저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떤 때는 '정의로우시고 공평하신 하느님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악인들만 도와주시고 나를 계속 곤고하게 만드시냐' 울면서 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다 나를 들어 쓰시기 위해 오랫동안 단련시키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저만 아니라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시려는 뜻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이 지금의 환난을 반드시 극복하게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김하중은 그날의 소회를 이렇게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았다. 그는 사랑과 관용과 용서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항상 내 자신의 믿음이 부끄러웠다." (<하느님의 대사 3>)

'하느님의 대사'를 자처하는 전 통일부 장관 김하중의 간증이다. 김대중은 쉬지 않고 기도했으며 범사에 감사했다.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믿었다. 그의 일기에는 '찬미 예수, 건강 백세'라는 말이 도처에 나온다. 예수님 품에서 오래 오래 살기를 원했다.

김대중은 국정 노트에 '대통령 수칙'을 써놓았다.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다짐이었다. 15개항의 수칙에는 법과 질서 준수, 아첨·무능자 배제, 국법 엄수, 국회·야당의 비판 경청, 적극적인 사고 등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열다섯 번째는 역시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느님이 같이 계시다."

김대중은 사망의 골짜기에 떨어졌어도 절망하지 않았다. 기도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기에 의연했다. 김대중은 '마태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좋아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김대중은 일생을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었다. 예수님은 낮은 자로 오시어 가장 비천하게 죽으셨다. 일생을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병든 자, 눈 먼 자, 문둥병자, 절름발이, 귀머거리, 마귀 들린 자들을 고쳐주고 창녀를 용서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예수님은 지배 계급의 위선과 폭정에 맞서 싸우다 정치범으로 몰려 죽으셨다. 그래서 김대중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대중은 진정한 종교는 개인의 죄 뿐 아니라 사회적 죄악에 대해서도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정부에선 종교 갈등이 없었다. 내 종교가 귀하면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했다. 김대중에게 다른 종교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었다. 함께 가는 '이웃'이었다. 김대중은 수시로 7대 종단 대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나라 운영에 협조를 구했다. 옥중 편지에서도 그런 의식의 일단이 들어있다.

"우리 이웃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식이다(그가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한 형제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며, 특히 우리의 도움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의 사랑은 하느님의 계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김대중은 또 손자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다.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 삶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5월 30일)

청와대 민정수석에 목사인 김성재를 임명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시민 사회의 추천도 있었기에 적임자라 판단했지만 그가 목사인 것이 걸렸다. 즉각 불교계 수장인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김 수석을 발탁한 것은 그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불교계에서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토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김대중은 이 땅의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해온 전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3·1 독립 운동 때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대표들이 참여하여 독립 선언을 했고, 민주화 운동 때도 종교 단체들이 합세하여 마침내 독재 정권을 물리쳤다. 김대중은 이런 종교 간 '화해의 공존'을 민족의 자산으로 여겼다.

안타깝게도 김대중의 깊은 신앙심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대중은 일생 사회적 죄악과 맞서 싸웠다. 김재준 강원룡 윤반웅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박종화 김상근 이해동 오충일 목사 등은 행동하는 목회자들이었다. 이들은 험한 시대에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자 십자가를 함께 지고자 했던 믿음의 형제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사회적 악의 무리, 즉 독재 정권과 싸웠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어떤가. 많은 교회들이 성장과 개인의 기복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 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 눈물겨운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 '가난한 이웃'을 잊어버리고 있다. 속세의 온갖 물신(物神)이 교회 속으로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허세를 부리고 예수님 말씀을 비틀어 신도들을 선동하고 있다. 물신을 섬기는 목사의 설교대로라면 부자라야 천국에 가고 가난뱅이는 지옥에 떨어져야 맞다.

그들은 결국 예수라는 허상을 세우고 말씀을 팔아먹는 장사꾼인 셈이다. 우상를 섬기지 말라면서 정작 자신들은 누구보다 큰 우상을 섬기고 있다. 풍요와 쾌락을 좇았던 물신, 바알과 아세라를 모셔두고 있음이다. 한국 교회는 속히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진짜 예수를 찾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약한 자에게 잘해 주는 것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라는 말씀을 받들어야 한다.

기름진 제단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실 것인가. 반역사, 반통일, 반서민의 설교를 어여삐 여기실 것인가. 남의 종교를 적으로 여기고 창을 겨누는 무리들의 광기를 칭찬하실 것인가. 한국 교회는 이제 제대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아직도 김대중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목사의 설교에 가장 중요한 사랑과 용서가 빠져 있다. 세간에서도 듣기 민망한 거짓을 얘기하며 빨갱이,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한다. 왜 그럴까. 우선 김대중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믿음이 왜소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짊어지기에는 죄가 많고, 이웃을 돌보려 하니 힘들고 귀찮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핍박받는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려 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다. 일생 예수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이웃을 챙겼다. 이제 김대중을 향한 돌팔매를 거둘 때가 됐다. 적어도 김대중처럼 간절한 기도를 올려보지 못한 이들은 김대중의 이름을,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탄이 진정 누구인지 하느님은 알고 있으리라. 신앙인이라면 땅 위의 속설보다 하늘의 음성을 들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08년 연말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 이희호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다. 침대 위의 기도는 세상을 뜰 때까지 거르지 않았다.

"하느님! 민주주의, 남북 관계, 서민 경제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저희 나라를 구해 주십시오. 가난한 이웃을 보살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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