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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DJ와 마지막 포옹하며 속삭인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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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DJ와 마지막 포옹하며 속삭인 말은…

[김대중 평전 '새벽'·44] 세 번의 포옹

세 번의 포옹

2000년 6월 13일, 특별한 날이 밝았다. 대통령 김대중을 태운 전용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했다. 오전 9시 15분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대통령을 모신 공군 1호기는 곧 38선을 넘게 됩니다. 오른쪽에 북한의 옹진반도 장산곶이 있습니다. 평양의 날씨는 23도입니다."

10시 3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의전 비서관 김하중이 다가왔다. 그는 성실하고 명석해서 재임 중 줄곧 중용했다. 대통령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출영했습니다."

비행기 문이 열렸다. 김대중이 트랩에 섰다. 멀리, 아주 멀리까지 북한 산하를 쳐다봤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북녘의 하늘 아래 남녘의 대통령이 서있었다. 군중들은 꽃술을 흔들었고,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북한 땅을 밟았다. 김정일이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았다.

이때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솟구치는 감동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국정원장 임동원과 그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던 사람들은 끝내 울고 말았다.

김대중은 김정일과 함께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분열을 받았다. 공항 의전 행사를 마치고 김정일이 김대중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검은 색 승용차에 동승했다.

ⓒ프레시안(손문상)

나 또한 이때의 감격을 이렇게 썼다.

"강과 산이 서로 얼싸안고 노래하겠다. 동강난 반도의 허리가 허리를 펴겠다.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달리며 포효하겠다. 청색 바람이 개마고원에 올라가 한바탕 굿판을 벌이겠구나.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분단의 상처들. 아, 그래 이제야 통증이 오는구나. 아픔이 아픔으로 전해지는구나. 이제는 우리의 아픔에도 새살이 돋겠구나. 어쩜 이 땅에도 새 피가 돌겠구나.

가보니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이제야 그들이 우리 생각 속으로 들어왔구나. 그대들은 지구의 어디에 숨어 있다가 꽃 들고 박수치며 이렇게 불쑥 나타났는가. 어디에 있다 연도에서 60만 명이 일시에 환호하는가. 왜 이리 목이 메는가. 왜 이리 가슴이 저미는가. 왜 이리 온몸이 떨리는가.

지난 55년은 진정 무서운 세월이었다. 들출수록 아픈 시간이었다. 갈라져 서로의 침묵을 의심했던 날들. 서로가 두려워 애써 서로를 외면했던 날들. 그래야 편했던 날들.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피가 되어 넘어왔지만, 끊임없이 서로의 심장에 총알을 박았다. 철조망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지뢰를 설치했다. 남(南)은 북(北)을, 북은 남을 묻었다. 틈만 나면 상대방의 사상과 습관, 체제를 장사(葬事)지냈다. 총을 들고 완전한 군인이 되어서야 만났던 우리들. 그러는 사이 숱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김구, 조봉암,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 문익환….

하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 이름 없는 사람들이 반쪽세상을 살다가 세상을 버렸다. 55년 전에 이 땅을 지켰던 사람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외모보다 마음이 더 늙어버린 이산가족들은 요즘 하루를 어떻게 채울까. 저들의 타들어가는 마음에 단비는 과연 올 것인가. 흘릴 눈물마저 말라버린 저들은 '감격의 눈물'을 마지막으로 흘릴 수 있을 것인가.

2000년 6월 13일 햇살 반짝인 오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순안공항에서의 만남.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꼭 반세기 만에 남과 북은 기적처럼 악수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차에 동승했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혹시 이런 얘기는 아니었을까.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지요."
"아닙니다. 간밤에 잠을 좀 설쳤지만 정신은 더 말짱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군요."
"그렇습니까. 찬찬히 살펴보시고 좋은 시간 되십시오"
"이제 이 땅에서 분단의 눈물을 흘리게 해선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그 눈물을 닦아줘야지요."
"와서 보니 정말 좋습니다."
"너무 오래됐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말도 있지요."

새천년의 초여름, 새 길이 열렸다. 그 길 위로 남쪽에서, 북쪽에서 새 바람이 달려갈 것이다. 우리에게 만남 이상의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리에게 만남 이상의 중요한 게 무엇인가. 이제 남은 건 믿음과 기다림이다. 포옹이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경향신문> 2000년 6월 14일자)


하지만 두 사람은 차 안에서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환영 열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차량은 천리마거리, 김일성 동상이 서있는 만수대 언덕, 모란봉 천리마 동상, 개선문, 금수산기념궁전을 지나갔다. 가도 가도 사람물결이었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남과 북의 정상은 접견실에서 환담을 나눴다. 이 광경은 실시간 지구촌에 퍼져나갔다. 은둔의 지도자 김정일이 세계에 처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김정일은 거침이 없었다.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을 환영 안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감동한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김정일은 이어서 예사롭지 않은 인사말을 했다.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 사열까지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께서 왜 방북했는지, 김 위원장이 왜 승낙했는지 의문들이 대단합니다. 2박 3일 동안 우리가 대답해줘야 합니다."

이 인사말로 김정일은 서방 세계의 잘못된 정보가 만들어낸 유령의 집에서 빠져 나왔다. '성격이 음울하고 잔인해서 기쁨조들과 밤마다 술판을 벌이는 방탕한' 인물이 아니었다. 김정일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에 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상대가 김대중이기에 그는 부풀어 있었다. 김대중은 인사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를 설득할 자신감이 생겼다.

김대중의 평양 방문은 가장 뜨거운 지구촌 뉴스였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프레스 센터가 차려졌다. 289개 매체(외신 173개사), 1275명(외신기자 503명)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순안공항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을 때에는 1000여명의 기자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다음날 김대중, 김정일 정상 회담이 백화원에서 있었다. 남측에서는 국정원장 임동원, 외교안보수석 황원탁, 경제수석 이기호가 배석했다. 북측에서는 대남비서 김용순 혼자만 나왔다.

김대중은 이미 친서에 적시하고 특사 임동원을 통해 밝힌 4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의제마다 설명을 곁들였다. 끝으로 김정일의 남쪽으로의 답방을 요청하며 자신의 바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정식으로 초청합니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감 위원장이 서울에 와야 한다는 여론이 81퍼센트나 됩니다. 조만간 서울을 꼭 한 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나이 이제 일흔여섯 살입니다. 대통령 임기는 2년 8개월 남았습니다. 30~40년 동안 숱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죽을 고비까지 넘기면서 나름대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뜻을 2년 8개월 사이에 김 위원장과 함께 꼭 이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길을 바꾸지 못하도록 단단히 해 두고 싶습니다. 그게 나의 소원입니다."

김대중은 간절히 호소했다. 그래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바꾸지 못할 금자탑을 쌓자고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해도 한나라당이 차기에 다시 집권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께서는 한나라당이 차기에 집권하면 대북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나라당이 야당이다 보니 정략적으로 그러는 거지 만약 집권한다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 연합은 그들도 주장한 것이고 남북이 평화 공존하자는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대답은 결과적으로 허언이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대북 정책은 강경으로 일관했다. 만일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면 김정일은 김대중에게 분명 따졌을 것이다.

회담 도중에 김정일은 '비밀 사항'이라며 매우 주목할 발언을 했다. 주한 미군 문제였다.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김대중은 속으로 놀랐다. 김정일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안보를 보장해주는 영원한 우방은 없으며, 결국 맹방이라는 중국도 믿을 수 없다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민족 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변 강국들이 패권 싸움을 하면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주게 되지만,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 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에게도 안정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남과 북은 합의문을 작성해야했다. 김정일은 합의문에는 선언적인 것만 넣고 나머지는 당국 간 장관급 회담에 일임하자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큼지막한 것들은 이미 7·4 공동 성명이나 남북 기본 합의서에 들어 있었다. 이제 실천적 과제에 합의해야 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내용을 명기하고 김정일의 답방도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를 둘러싸고 장시간 공방이 오갔다. 북측은 김정일의 서울 방문에는 부정적이었다. 그 말만 나오면 김정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김대중은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면에 호소했다.

"동방예의지국 지도자답게 연장자를 굉장히 존중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내가 김 위원장하고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이를 좀 더 먹은 건데, 나이 많은 내가 먼저 평양에 왔는데 김 위원장께서 서울에 안 오면 되겠습니까. 서울에 오시면 크게 환영하고 환대할 것입니다."

그러자 김정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때 임동원이 나섰다.

"이렇게 합의하면 어떻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정중히 요청했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앞으로 편리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일단 이 정도로 합의하고 방문 날짜는 다시 협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모두 김정일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 회담은 정점에 이르렀다. 이제 누구의 명의로 선언문에 서명할 것인지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김정일이 의견을 내놨다.

"그럼 수표(서명) 문제는 상부의 뜻을 받들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용순과 대한민국 국정원장 임동원이 하는 걸로 합시다."

"안 됩니다. 김 위원장과 내 이름으로 서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을 그려놓고 눈을 그리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수표는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하고 합의 내용을 제가 보증하는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은 다시 정색을 하고 반대했다. 다시 김정일이 여러 가지 말로 김대중을 설득했다.

"과거 7·4 공동 성명도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 이런 식으로 한 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

이때 김대중은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준비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통렬한 반격이었다.

"그때는 이후락 씨가 왔지만 지금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와서 정상 회담을 한 것입니다.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임동원이 이를 거들었다. 우리 민족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문건임을 강조하며 두 정상의 서명은 당연하다고 설득했다. 답변이 곤궁해진 김정일이 갑자기 농을 건넸다.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집요하군요."

김대중은 농을 농으로 받으며 다그쳤다. 기상천외의 기지였다.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 씨 아니오. 그렇게 합시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참석자 모두 웃었다. 회담이 끝났다. 남북 공동 선언문은 그렇게 타결되었다.저녁 7시였다.

정상 회담은 이렇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금수산 궁전 참배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은 아태위 부위원장 송호경에게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통령님의 금수산 궁전 참배는 안 됩니다. 북측에서 계속 요구한다면 한광옥 비서실장과 내가 대신 참배하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 이를 밝히고 구속되겠습니다."

임동원 또한 애가 탔다. 김정일이 함께 참배하러 가자고 대통령의 소매를 끌면 난감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었다. 임동원은 임동옥을 만나 김정일에게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메시지는 서울에서 준비해간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입지를 좋게 해줘야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측이 원하는 경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금수산 궁전에 참배하면 김 대통령의 지도력이 상처를 받게 되고, 정상 회담의 의미는 퇴색되며 합의 사항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측의 태도가 바뀌었다. 정상 회담 후 북측은 더 이상 금수산 궁전 참배를 요청하지 않았다. 수행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아마 김정일이 이런 남쪽 상황을 이해하고 미리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남과 북이 모여 만찬을 벌였다. 만찬장은 감동으로 출렁거렸다. 김정일이 큰소리로 말했다.

"어이 국방위원들 어딨어, 모두 대통령님께 한 잔씩 올리라우."

인민군 장성들이 줄 지어 김대중에게 술을 따랐다. 남과 북의 불신과 미움을 씻어내는 상징적인 광경이었다. 특별 수행원 시인 고은은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 년 최고의 얼굴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 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


만찬이 끝나고 다시 백화원 영빈관에 돌아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남북 공동 선언 조인식이 있었다. 김대중, 김정일이 서명했다. 대표단 모두 숨을 죽였다. 서명이 끝나고 김대중과 김정일이 손을 맞잡아 들어올렸다. 민족의 새벽을 여는 쾌거였다.

김대중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자리에 눕자 지난 하루가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 그 하루를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려왔다. 김대중은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부었다. 평생 가장 긴 날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고 있었다.

6월 15일, 남과 북에 전혀 새로운 날이 밝았다. 김정일은 오찬 연회를 열었다. 송별회 같은 것이었다. 연회장에서 김정일이 말했다.

"인민군 총사령관으로서 오늘 12시부로 전방에서 대남 비방 방송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남과 북은 그렇게 상호 비방 방송을 중단했다. 모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다시 남으로 가야 했다. 김정일과 함께 차에 올랐다. 수십 만 명이 연도에 나와 꽃술을 흔들었다. 순안공항에 도착, 출영 나온 북측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마지막 김정일만 남았다. 김대중과 김정일이 포옹했다. 김정일이 귓속말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남과 북의 정상은 세 번 포옹했다. 김대중이 트랩에 올라 뒤돌아봤다. 김정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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