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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햇볕 정책의 원조는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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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햇볕 정책의 원조는 미국이다!"

[김대중 평전 '새벽'·36] 미국의 외투를 벗기다

대통령 김대중은 1998년 4월 국제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영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였다. 각국의 정상들은 김대중을 만나고 싶어 했다. 회담 요청이 줄을 이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는 예정에 없던 회담을 가졌다. 언제 어디라도 상관없으니 시간만 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

촌음을 다투며 정상 회담을 했다.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숨이 가빴다. 그래도 감회가 새로웠다. 순간순간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독재자들의 신분 세탁이나 국내 선전용 회담에 익숙했던 외교관들은 김대중이란 인물이 자랑스러웠고, 한편으로는 그 이름의 힘에 놀랐다. 대한민국은 반체제 민주 투사를 지도자로 선출한 나라, 그래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룩한 나라였다. 외교관들은 비로소 국격(國格)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김대중은 준비된 외교관이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외교적 식견이 깊었다. 우물 속에 있으면서도 천문도를 그렸다. 세계 지도를 머리와 가슴에 품고 있었다. 평생을 야당 생활만 해오던 김대중에게 이런 면모가 있음이 경이로웠다. 정상 외교 때의 김대중은 늘 힘이 넘쳤다. 회담은 예정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김대중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었다. 정상들은 불굴의 삶 자체에 경의를 표했다.

김대중은 현란하거나 추상적인 레토릭(수사)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화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이런 대화를 특히 서구 정상들이 좋아했다. 정상들과 대화할 때는 나름의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되도록이면 상대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 상대와 의견이 같을 때는 "내 의견과 같다"고 말해주는 것, 회담 성공은 상대의 덕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김대중은 절제된 입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입에 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김대중을 만나고 나오는 사람들은 그래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미국은 두 번씩이나 김대중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김대중은 기내에서 1982년 12월 미국으로 망명을 떠날 때가 떠올랐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날아가면서 얼마나 두려웠던가. 그때 아내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대표하여 수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아내 이희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대중은 새삼 출국 전에 가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이 생각났다.

"오래 살아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김대중을 '돌아온 영웅'으로 묘사했다.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된 삶을 깊이 있게 보도했다. 미국은 김대중에게 여전히 기회의 땅이었다. 망명 시절에는 민주화의 원군(援軍)을 얻으려했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달러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또 햇볕 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했다. 김대중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이루는 것, 그것은 김대중의 표현대로 '대통령으로서의 사명 1조 1항'이었다. 그 비원은 '햇볕'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협력 없이는 햇볕 정책을 펼 수 없었다.

김대중은 취임사에서 이미 북한에 대해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을 흡수할 생각이 없다,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3대 원칙을 천명했다. 그리고 3·1절 기념사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한 특사 파견을 북한에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럴수록 햇볕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필요했다. 어떻게든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지지를 끌어내야 했다.

ⓒ프레시안( 손문상)

1998년 6월 9일 백악관에 들어갔다. 클린턴 대통령이 환영사를 했다. 의례적인 덕담이 아니었다. 클린턴은 인간 김대중에게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우리는 특기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독재 체제 하에서 정치범이었던 폴란드의 바웬사, 체코슬로바키아의 하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그리고 오랫동안 정권으로부터 부당하고 가혹한 탄압을 받다가 결국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등 자유의 영웅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바웬사는 폴란드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하벨과 만델라도 그들 조국의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50년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인 여야 정권 교체 후에 오늘 대통령으로 여기에 서 계십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인권의 개척자이고, 용기 있는 생존자이며, 세계를 위해 더 좋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미국의 동반자입니다."

환영사는 각별했다. 김대중은 예감이 좋았다.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단독 정상 회담을 가졌다. 김대중은 물음을 기다렸다. 그것은 대북 정책에 대한 클린턴의 질문이었다. 예상대로 클린턴이 물었다.

"당신의 햇볕 정책이란 무엇입니까."

김대중은 준비된 답변을 시작했다.

"햇볕 정책은 사실 미국의 성공에서 배운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극단적인 냉전 체제를 유지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무기 경쟁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멸의 위기감만 고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데탕트 정책으로 바꿨고, 경제 협력과 교류를 했습니다. 그리고 15년 정도 지나니 세계를 양분해서 지배하던 소련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외부에서 총 한방 쏘지 않고, 안에서 폭동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붕괴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 역사에 일찍이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중국과 베트남의 예도 들었다. 전쟁 범죄 국가로 적대시했을 때는 강경 대치했지만 외교 정상화를 통해 개방을 유도하자 친미 국가로 탈바꿈했음을 설명했다. 반대로 미국이 쿠바를 40년 동안 봉쇄하고 압박했지만 지금까지 굴복시키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김대중의 매듭 말은 명쾌했다.

"공산주의는 문을 열면 망하고 닫으면 강해집니다. 우리는 소련, 중국, 베트남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집니다. 공산주의를 대할 때는 군사적 힘으로 다른 도발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개방을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햇볕 정책은 미국의 대외 정책을 통해 이미 검증을 마친 것입니다."

클린턴은 오래 깊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대외 정책이 미국을 압도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앞으로 한국 외교사에 빛날 '말(言)의 탑'이었다. 클린턴이 말했다.

"김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으로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는 김 대통령께서 주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습니다."

이로써 분단 후 처음으로 대북 정책에 주도권을 확보했다. 대미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이었다. 김대중의 눈에 비친 클린턴은 순수하고 솔직했다. 클린턴은 의회를 잘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미국은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햇볕 정책은 미국 내 보수층, 특히 네오콘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에게 북한 지도부는 '무조건 악'이었다. 김대중은 의회 연설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연설 원고는 한국에서부터 고치고 또 고쳤다. 의회 연설 전날 밤에야 비로소 원고를 완성했다.

정상 회담 다음 날,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김대중은 미국이 두 번이나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햇볕 정책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북한을 화해로 이끌기 위해서 한미 양국은 강력한 안보 태세에 바탕을 두고 개방을 유도하는 '햇볕 정책'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 선의와 진실을 가지고 대함으로써, 북한이 의구심을 떨치고 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유연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지나가는 행인의 코트를 벗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바람보다는 햇볕이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의 햇볕에 결국 미국도 외투를 벗었다. 그 후 한반도에는 '김대중의 태양'이 이글거렸다. 남과 북은 서로 모자를 벗었다. 적어도 먹구름을 타고 대통령 조지 부시가 나타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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