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경쟁의 강도가 높을수록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등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등수의 높고 낮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쟁이 심해지면 소득과 여가의 감소로 잃는 행복보다 등수가 올라감으로써 얻는 행복이 더 크게 되어 사람들은 소득과 여가를 대가로 지불하여 높은 등수를 얻고자 할 것이다. 입시 경쟁에서 주입식 교육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소득과 여가에 따른 나의 행복의 변화는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나의 소득 변화에 따른 서열의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의 등수가 올라갔다는 것은 다른 어느 누구인가의 등수가 내려갔다는 뜻이고, 서열 변화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소득과 여가에 아무런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행복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경쟁의 강도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소득과 여가를 등수를 올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러한 투자는 낭비가 될 수 있으며 사회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등수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가와 소득의 많은 부분을 사용해서 등수를 올리려 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등수만은 높이려 하기도 한다. 즉 여가는 먹고, 자고, 출퇴근하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줄이면서 노력해서 벌은 소득은 노후 대책도 없이 대부분을 자녀들의 입시 경쟁에 투자하는 극단적 경우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등수 자체는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서 소득과 여가만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경쟁을 극도로 강화하면 사람들이 경쟁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그래야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각자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 등수를 올리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하므로 각자의 등수는 올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등수를 올리기 위하여 지불한 희생이 헛되이 되고, 과도한 경쟁으로 각자에 피해만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비용만 지불하고 다들 제자리에 있게 되는 상황이다.
복지와 직장의 근무 시간 단축이 해결책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느 한 사람도 이 경쟁을 포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등수를 높이는 데 치중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이 경쟁을 포기할 경우에 그에 따라서 등수도 떨어져서, 그 사람의 행복은 한참 낮아지게 된다. 즉 개인적으로는 경쟁을 안 할 수도 없고, 하면 할수록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보는 그런 상황이다. 이 상황은 공작의 꼬리 경쟁이나 아이리시엘크의 뿔과도 같은 상황이다.
경쟁이 과도하여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쟁의 강도를 낮추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떻게 경쟁의 강도를 낮출 수 있을까? 경쟁 약화를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리처드 레이야드는 세금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 아이디어는 공해세와 같다. 공해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생산품에 세금을 올림으로써 그 상품이 과도하게 생산되는 것을 막아, 공해도 함께 줄이는 것이다. 소득 격차가 크면 클수록 소득의 서열 경쟁이 강화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니 소득 격차의 심화는 공해와 같은 작용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공해가 클수록 많은 세금을 부과하듯이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득 재분배를 통하여 분배의 균등을 꾀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경쟁의 강도를 낮추고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외에 한국 직장인들의 과다 업무를 줄여서 직장의 수를 늘리는 방법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같은 차별 철폐 등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을 생산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여 분배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 역시 경쟁의 강도를 낮추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레드 퀸 효과
▲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년)의 '레드 퀸(헬레나 본햄 카터). ⓒmoviefanatic.com |
"제자리에 있으려면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해."
최선을 다해서 뛰어 가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몸과 병원체 사이의 경쟁을 들 수 있겠다. 병원체의 침입은 우리의 몸이 면역력을 키우게 하여 병원체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 면역력이 한 발 앞서는 상황도 잠시이고, 병원체는 변이를 거쳐 현존하는 면역력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제 병원체가 다시금 한발 앞서게 된다. 그러면 우리 몸은 다시 변이된 병원체에 대응하는 면역력을 키우게 된다. 결국 병원체와 우리 몸은 열심히 경쟁하여 제자리에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는 상황은 과거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 상황과 유사하다. 군비 경쟁에서 특히 원자탄 개발의 경쟁은 한 때 절정에 이른 적이 있었다. 미국이 원자탄의 성능을 높이고 개수를 늘려서 군비 경쟁에서 앞서간다 싶으면, 그에 대응하여 소련 역시 많은 재원을 투자하여 원자탄을 개발하고 그 개수를 늘렸다. 그 두 나라의 원자탄의 개수를 모두 합치면 지구 몇 개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양이 되었고, 어마어마한 돈이 누가 먼저 쓸 수도 없는 원자탄 생산에 낭비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을 예로 들 수 있다. 경쟁이 강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등수를 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예를 들어 입시 경쟁이 강화되어 어느 학부모가 아이의 사교육 시간을 늘리고 비용도 더 썼다고 하자. 그러나 다른 모든 학부모 또한 자신의 아이의 사교육 시간을 늘리고 비용도 더 쓴다면 대부분은 등수가 그 자리에 머물 확률이 높으며, 모든 사람이 등수를 올리기 위해 투자한 더 많은 돈과 시간은 낭비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여 경쟁에서 이기려하지만 결국은 다들 제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등수 경쟁과 같이 상대 평가로 결정되는 행복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두들 열심히 뛰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구성원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항상 제자리에 있게 마련이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빨리 뛰려고 하며, 더 많은 고통과 비용을 지불하지만 그들 모두는 상대적으로 제자리에 머물게 되므로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쟁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경쟁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만 레드 퀸 효과에 의해 모두들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성장, 세계화, 글로벌 리더 배양, 선진화 등의 구호 아래 차등화를 강화하고 경쟁을 조장하여 경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제자리에 머물기조차 힘들고, 오히려 삶의 의욕 상실, 노령화, 출산 거부, 성장 동력 상실 등으로 사회 전체의 후퇴를 초래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열심히 뛰는데 제자리에 있게 하는 경쟁, 더 빨리 뛸수록 고통만 증가하는 경쟁에서, 이제 남보다 더 빨리 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치열한 경쟁을 하루라도 빨리 완화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이 경제 정책의 경쟁 강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들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대책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책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증요법이 몸에 일어난 변화를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하듯이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근본적인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다. 자살률, 입시 경쟁, 사교육비 증가, 취업 경쟁, 지나친 등록금, 직장인의 과로, 출산율 저하, 노령화, 극단적인 사회 풍조 등등의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경쟁 완화"이다. 경쟁 완화가 되어야만 이런 모든 사회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으로 제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재를 끝내며 한 중학생 소녀가 유서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 소녀의 비극적인 짧은 생의 경험이 다수 한국인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입시 경쟁으로 피폐해가는 학생들, 아이의 미래가 불안한 학부모들,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대학생들,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직장인들, 출산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겪는 삶과 무관한 것인가?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는 그 소녀가 갖는 절망을 대량 생산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소녀와 절망을 나누고 고통스러워한다. 이제 한국은 극단의 경쟁이라는 독소가 가득 찬 거대한 잠수함과 같다. 물 위로 떠올라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 물 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더 경쟁하고 더 성장해야 된다는 기업 논리가 여론을 선도하고 있는 왜곡된 현실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연재를 통하여 과도한 경쟁 논리, 성장 논리, 시장 논리, 기업 논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읽어준 독자들께 감사한다.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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