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은 '놀부의 나라'…흥부가 기가 막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은 '놀부의 나라'…흥부가 기가 막혀!

[공작의 꼬리 경쟁·35] 소득 불평등과 사회 유대 약화

차등화 정책으로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구성원들이 더욱 경쟁적으로 되어갈수록, 이웃이나 친구나 가족의 소중한 공동체의 유대가 깨지고 만다.

놀부 같이 형제 사이에서조차 우의보다 경제적 이해를 앞세우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면, 그 사회는 서로 경쟁하고, 이용하려 하고, 적대시하는 각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협동과 배려, 존경 등의 가치가 깨진 공동체는 각 개인의 삶에 필요한 기본 가치를 약화시키고 결국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 한다.

그러면 차등화 정책이 갖는 부정적 영향과 현실에 나타나는 여러 사회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왜 차등화 정책이 장려되고 강화되고 있는 것인가. 강도 높은 차등화 정책의 동기는 왜 또 누구로부터 나오는가?

서로 믿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차등화

소득이 불균형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은 소득 분배가 불균형할수록 사회의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득 분배가 고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약 70퍼센트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불평등이 심한 싱가포르나 포르투갈은 80퍼센트 이상의 사람이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미래가 서로를 믿는 스웨덴과 같은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서로 믿지 못하는 싱가포르와 같은 사회가 되기를 원하는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분명할 것이다. 차등화로 인한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방치하면서 스웨덴과 같은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 소득이 평등해질수록 신뢰도가 높아진다. ⓒ프레시안

로버트 퍼트넘은 인과의 화살은 두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한다. 소득이 불균등하기 때문에 서로가 신뢰하지 않고, 또는 서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소득의 불균형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소득 불균형이 경쟁 강화로 연결되고, 경쟁 강화는 주위 사람을 이겨야 하는 적수로 여기게 되며, 서로를 믿고 돕기보다는 불신하고 이기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원 간의 마찰이나 긴장의 증가는 또 다시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의도를 약화시킨다. 현재 한국 역시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계층 간의 불신과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누가 사회 자본을 대가로 이익을 추구하는가

생산의 측면에서 자본을 돈으로 표시되는 금전 자본과 노동자의 기술이나 교육에 의하여 결정되는 인간 자본, 자연 환경이 제공하는 자연 자원,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호 협조, 신뢰, 연결망 구성 등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회 자본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을 생산의 유용성에만 근거하여 평가하는 시장 논리의 한계와 그에 따른 오류는 여기서 논의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사회 자본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생산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 신뢰가 저하된다. 그리고 사회 신뢰의 저하는 범죄와 같은 여러 사회 문제와 연결될 것이며,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며, 남을 돕는 관대함 등의 덕목의 약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으로 사회 자본이 잠식되고, 교육과 경제에 필요한 협동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약화시킬 것이다.

사회 자본은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와 같은 개인 소유주가 없고 자본가가 요구하는 이윤과 같은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 자본의 소유주이며, 사회 자본의 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해가 된다. 차등화를 통한 노동의 압박으로 이윤이 증가해서 이익을 보는 집단과 양극화와 같이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통해 소득이 증가해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이 야기하는 사회 자본의 잠식으로 생기는 비용은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된다.

이익을 보는 집단과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이 사회 자본의 잠식에 따른 비용을 무시하고 차등화나 소득 불평등의 강화를 조장하려 하는 동기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한 집단의 이익 동기는 현재 한국에서 강도 높게 진행되는 차등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에 의하여 주도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왜 글로벌 경쟁력, 성장, 효율 등을 내세워 차등화로 모두가 이득을 볼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로 인해 현실로 나타나는 자살, 출산 기피와 같은 많은 사회 문제들이나 사회 자본 잠식 문제는 무시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도 제공할 것이다.

놀부의 나라를 만드는 차등화

이치로 가와치와 브루스 케네디의 연구 결과 역시 소득 불평등이 사회의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소득이 불평등해질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하려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하려한다고 생각한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차등화의 강화는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이용 가치에 의해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 소득이 불평등할수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한국은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사회이다. 그러나 그 공동체 의식은 점점 깨져가고 있다. 공동체 의식은 각자가 고립된 개체가 아니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자신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가운 무관심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은 가족이라는 유대의 확장으로 과거 시골의 동네사람들이 갖는 구성원 간의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일본에 유학 중인 한 한국인이 지하철 아래로 떨어진 한 일본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기사를 보았다. 그 지하철 안에는 대부분이 일본 사람들이었을 텐데, 유독 그 철길 아래로 뛰어 든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일본 사람들에게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고위 인사와 많은 일본인이 그의 장례식에 조의를 표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한국의 공동체 의식은 개인인 나보다는 전체로서의 우리를 중시한다. 그래서 누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청하기도 전에 도와주려 한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이러한 서로 의지하는 사회 상황으로부터 어쩌면 나태해질 수 있는 편안함과 여유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제학자가 이러한 공동체적 의식이 경제 발전에 좋지 않은 전근대적인 사고로 묘사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에서 놀부의 부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이 경제 발전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부는 대책 없이 아이만 많이 낳아 형인 놀부에 의존하려는 나쁜 습성을 가진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에 적합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한다.

이러한 평가는 현대 한국의 변화하는 가치관을 잘 말해주고 있다. 경제 발전이라는 지상 목적에 전근대적인 공동체적 가치관은 하루 빨리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부는 제비를 위해서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지만, 놀부는 돈을 위해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다. 그러한 흥부의 착한 성품과 함께, 부자 형 놀부에게 의존하는 마음 또한 있다. 이 의존하려는 마음이 공동체가 제공하는 편안함인 것이다. 그래서 그 형이 망해서 흥부에게 의존해야 할 때 흥부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의 중심 테마는 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이기심이 아닌 서로를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과거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이 가치를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은 많아지고 있으며, 이미 너무 많이 빨리 폐기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이성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등이 우월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너무 빨리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것을 버리다보니, 우리가 가진 많은 없어서는 안 될 것들까지도 폐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본적인 것까지 부정하다보니, 새로운 가치가 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조차 새기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성장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막연히 경제 성장만 되면, 뭐든지 다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경제 성장이 근원적인 목적이 되고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으로 여긴다. 차등화의 강화로 소득 분배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공동체의 신뢰는 없어지고 구성원들은 놀부로 변해간다. 놀부가 늘어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불행해질 것이며,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 협조나 유대의 사회 자본이 약화되어 결국에는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극단의 차등화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 집단에 의하여 강조되고 또 다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고 있는 '차등화=성장'의 등식은 한 집단의 소득 불평등의 정당화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에 대한 강한 욕구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양극화 현상이 보여주듯이 차등화를 통하여 한 계층의 욕구는 실현되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욕구는 좌절 되어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