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태'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25시간의 공백.
가장 긴밀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는 대통령-청와대 비서실 간 업무가 하루 이상 오리무중이었고, 늘 대통령 옆에 있어야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밤 LA 동포 만찬 간담회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 행방을 궁금해 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한국 시각으로 9일 오후 4시 55분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귀국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4박 6일 방미 일정을 끝까지 동행하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시각,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는 '한국 고위공직자가 인턴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10일 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11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12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어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찬 간담회를 가진 박근혜 대통령은 예정된 1시간 30분에서 50분가량을 넘긴 오후 7시 50분께 자리를 끝냈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간담회가 있던 날(15일) 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가 녹음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진행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전홍기혜 현 <프레시안> 편집국장, 10년 이상 여의도 정치 밥을 먹은 임경구 정치팀장, 그리고 현재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를 출입하는 곽재훈 기자가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밀도 있게 분석했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 미국 방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행 전용기 내에서 수행원 및 기자들과 인사하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뒤에 윤창중 전 대변인이 서 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문화일보> 논설위원 시절 쓴 칼럼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성추행 사건'의 장본인이 된 지금, 윤창중 전 대변인이 생각하는 박근혜 정권의 수준이 궁금하다. ⓒ연합뉴스 |
윤창중 부재 25시간, '조직적 기망' 발생?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부분 행사에는 대변인이 동석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8일 밤,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LA 동포 만찬 간담회에 윤창중 전 대변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윤창중 전 대변인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을까? 물었다면, 현지 관계자들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이철희 소장은 "대변인이 눈앞에 안 보이면 당연히 물어봤을 것"이라며 "(10일 이남기 홍보수석이) 기자들에게 대답했듯 만약 '부인이 아파서 돌아갔습니다'라고 했다면 대통령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철희 소장은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 앞에서 거짓 해명을 했다면 "(이는 대통령) 기망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해명은 누구 지시로 이뤄졌을까? 홍보수석이 자의적으로 한 결정일까, 아니면 국내에 있는 비서실장의 지침을 받은 것일까.
이남기 홍보수석은 워싱턴에서 LA로 이동하면서 당시 상황을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재훈 기자는 "보도를 종합하면, (이 수석이) 그때 한국에 전화해서 '윤창중 전 대변인이 한국에 들어갈 테니 들어가면 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허 비서실장에게) 이야기를 해서 조사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런데 윤창중 전 대변인이 워싱턴에서 귀국 비행기를 탄 시점은 8일 오후 1시 35분, 대통령이 LA행 비행기를 탄 시점은 오후 3시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워싱턴에서 한국까지 15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윤창중 전 대변인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까지는 약 20시간의 공백이 생긴다. 결국 허태열 비서실장은 20시간 동안 관련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철희 소장은 "대통령 부재시 국내 상황은 비상체제다. 상황이 발생하면 비서실장에게 바로 보고돼 비서실장이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다"며 "만약 (대통령에게 윤창중 전 대변인 부재와 관련해 어떤) 보고가 들어갔다면 이남기 홍보수석이 자의적으로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니고, 비서실 전체가 이 문제를 그렇게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대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에 대해) 조직적인 기망(欺罔)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홍기혜 국장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라며 "사건을 접한 청와대 관계자 중 남자 행정관들은 '별일 아니고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엄청난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고, 청와대는 결국 덮으려고 하다가 집단적인 기망에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창중 사태, 개인의 문제로 끝낼 수 있었다?
8일 오전 미국 경찰이 성추행 신고를 받고 호텔에 왔을 때 윤창중 전 대변인의 신변을 경찰에 바로 인도했다면, 이번 사태가 개인의 문제로 끝났을까?
이철희 소장은 "그 자리에서 경찰에 인도하고 '이 사람이 잘못했다', '대통령이 이 사람 자르라고 했다'며 손 털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만약 홍보수석이고 비서실장이면, 대통령에게 가는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판단력 문제를 언급했다. "'정상회담인데다 현직 대변인이, 그것도 권력관계에 있는 인턴직원을 어떻게 했다'는 것은 단순 사실만 나열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전홍기혜 국장은 "청와대 관료들이 독립적인 브레인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일단 사건을 축소시키더라도 사실을 보고하면서 대통령을 설득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할까, 윤창중 전 대변인을 (대통령이) 되게 예뻐하는데, 나보다 더 예뻐하는데'라는 생각에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임경구 팀장은 '청와대 참모진의 집단적인 책임의식 방기'를 꼬집었다. 임경구 팀장은 "청와대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집단적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하는데 "전혀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윤창중 전 대변인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때 방으로 찾아간 게 그 선에서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이 사과하기 위해 인턴직원의 방을 찾아갔다'라는 말이 나왔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사랑하는 마음 떠나…
'윤창중 사태'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될까? 의견은 2대 2로 나뉘었다.
임경구 팀장과 곽재훈 기자는 이번 사태가 정권 유지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경구 팀장은 "보수 정부는 완충지대가 상당히 넓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비를 보면 이번 건으로 보수 정부가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전홍기혜 국장과 이철희 소장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무너졌다'는데 동의했다. 전홍기혜 국장은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다"면서도 "일반인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굉장히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민심을 다시 데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로 돌아섰다"고 진단했다.
이철희 소장은 "심리적 기대치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이 "(박근혜) 정권의 진면목, 민낯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사람들이 체감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벌써 상당한 거리를 두기 시작할 것"이라며 "(정권 운영이) 상당히 힘든 과정으로 들어갔다"고 예상했다.
한편, 이철희 소장은 박근혜 정부 지지율이 "단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지만 "다시 안 올라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국민들이) 마음을 열고 안 열고의 차이"라며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정권으로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난 13일부터 사흘 동안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주에 비해 5퍼센트 포인트 하락한 51퍼센트로 나타났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7퍼센트로 조사됐다. 잘못하는 이유로 응답자의 55퍼센트가 '인사 잘못, 검증되지 않은 인사' 등용을 꼽았으며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국민 소통에 미흡하다'와 같은 응답이 뒤를 이었다.
▲ <이쑤시개> 출연진. 왼쪽부터 임경구 팀장 - 곽재훈 기자 - 전홍기혜 국장 - 이철희 소장 - 박인규 대표 ⓒ프레시안(이명선) |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윤창중 부재 25시간, '대통령 기망' 없었나"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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