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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뒷짐' 풀어야 성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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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뒷짐' 풀어야 성과 나온다

[기자의 눈] 민생 과제도 '정치' 통해야 풀린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가 사실상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갔지만 정국 경색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은 원내 사안을 보이콧하지는 않고 있지만, 서울시청 앞의 '천막 당사'는 유지되고 있고 특검을 주장하는 일부 당내 목소리도 들린다. 여당도 강경하다. "단독 국회도 불사하겠다"(20일 최경환 원내대표)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정국이 표류하는 가운데 청와대는 뒷짐만 지고 있다. 국회의 일은 국회에서 풀어야 하며, 청와대는 '정쟁'과 무관하다는 태도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지난 6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윗분의 뜻을 받들어"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포함하는 5자 회담을 역제안한 이후 더 이상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은 청와대의 셈법이 맞을 수 있다. 대선 패배 이후 야권의 지리멸렬에 유권자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세법 개정안 논란 등 집권세력에 불리한 이슈들이 제기된 가운데서도 새누리당 39%, 민주당 21%(16일 한국갤럽 조사)라는 정당지지도가 이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 역시 5월 이후 50%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청와대의 편이 아니다. 결국 국정에 대한 책임은 야당이 아닌 집권세력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는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이 되는 날이다. 그 1주일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후반기에는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실행과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후반기에는 예산안 심의가 무엇보다 큰 의제다. 이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또 9월 정기국회에서는 세법 개정안 등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필수적 법안들이 처리돼야 한다.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국회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부패·비리 척결도 경제 법안 처리도 "정치권과 국민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만",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적극 도울 때만" 가능하다.

박 대통령 스스로 "하반기 주택정책의 최대 역점"으로 꼽은 전월세난 해결도 국회를 거쳐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전월세난의 심각함을 인식해서,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4.1 부동산대책' 핵심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드린다"고 박 대통령이 촉구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부드린다"고만 해서는 일이 풀리지 않는다. 여당이 "단독국회 불사"를 외쳐 봤자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날치기 통과'는 불가능해졌다. 야당을 이대로 방치하고서는 여야와 정부가 함께 망하는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는 그러나 "당부"하는 것 외에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는다. 여야정 5자회담 제안은 일찍이 민주당에 의해 거부됐지만 청와대는 "유감스럽다", "안타깝다"고 공박하며 "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것"이라고 한 것이 전부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아무런 접촉을 하지는 않았던 MB정부의 대북정책이 연상될 지경이다. 야당을 북한 대하듯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서 "후반기에는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실행과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의 한 축인 야당의 협조 없이는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는 야당 대표의 회동 요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는 민주당이 김기춘 실장의 5자 회담 제안을 거부한 7일 이후 지금껏 놀랍게도 아무런 추가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5자 회동을 하자는) 그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더 드릴 말씀이 없다"는 수준이다. 21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대해 "언급할 게 없다"고만 했다.

20일에는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 활성화와 고용 확대, 세수 확보 등을 위한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협조 당부를 3차례나 하자, 한 기자가 청와대 관계자에게 물었다. "결국 야당에 대한 협조 요청 아니냐? 그러면 야당 대표와 만날 필요성이 커진 것 아니냐?" 돌아온 답은 이랬다. "(두 사안은) 별개다."

아무래도 청와대는 국정조사가 국회에서 완전히 마무리되고 정치적 논란이 수그러들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감이 익어야 떨어지지'라는 식의 태도다. 그러나 집권세력을 포함한 보수진영 내에서도 청와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직간접적으로 나온다. 청와대 밖에서는 감이 익다 못해 곯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1일자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여야, 이제 마주앉을 때다' 제하 사설에서 "대통령이 국회에 법안 처리를 재촉하며 현 정국을 구경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19일자 <중앙일보>도 역시 사설을 통해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이 나설 때가 됐다"고 촉구했다.

여당 내에서도 이제 '때가 됐다'고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의화 전 국회부의장은 21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정원 개혁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서, 당 지도부가 직접 대통령을 뵙고 건의해야 한다"며 "그 (건의) 내용은 3자 회담을 수용해서 현안을 해결하고, 어차피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대선 공약 실천 등 국회의 도움이 필요한 여러 사안이 생길 텐데 그때 가서 5자 회담을 하는 단계적 접근 방법"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5자 회담 당사자가 될 최경환 원내대표도 '나는 빠져도 좋다'며 한 발 물러섰다. 최 원내대표는 21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3자든 5자든, 만나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문은 최 원내대표가 최근 참모들과의 대화에서 "3자 회담 성사를 위해 나 자신은 빠져 있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후반기 국정과제 성공을 위해서라는 현실적 필요도 있고, 여당과 보수진영 내의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이미 조건은 갖춰졌다. 박 대통령의 결심만 남은 셈이다. 정치를 '정쟁'으로만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 문제 해결도 야당과 마주앉는 정치적 해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장외 투쟁을 이끌었던 스스로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야당의 심정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보인다. 정의화 의원이 "야당이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들어오도록 야당에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한 의미가 여기 겹쳐진다. 여야 대치국면의 출구는 정중한 예를 갖춰 마주앉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열쇠는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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