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나온 인사개편안에서는 비서실장과 9명의 수석비서관 등 10명의 핵심 참모 가운데 5명이 교체됐다. 수석급 인사는 대부분 해당 분야 경력과 전문성을 위주로 한 인선이란 평이다. 신임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 박준우 전 주EU 대사를 임명한 것이 의외인 정도다. 하나로텔레콤 회장을 지낸 윤창번 미래전략수석을 제외하면 새로 임명된 수석급 4명 가운데 3명이 관료 출신이란 점도 특징이다. 박 수석은 외무공무원, 홍경식 민정수석은 검찰공무원 출신이고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보건복지부 차관과 기조실장을 지냈다.
때문에 '쇄신'보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철학이 그대로 관철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이나 집권 초반 인사의 특징인 관료 중용, 그리고 박 대통령이 신임하는 측근 실세 그룹에 대한 기용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인선 구상이 나왔을 것으로 보이는 여름 휴가 기간 중, 막후 실세 그룹과의 교감이 있지 않았나 하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인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향후 정국 구상도 어느 정도 점쳐진다. 박 대통령은 여름 휴가 이후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문제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출구를 모색하면서 하반기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 살리기에에 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실장은 검사 출신 원로 정치인으로 경제통이라는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다. 2005년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에서 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내긴 했지만, 당 내에서도 보수 색채가 너무 짙다는 평이 일반적이었다. '민생'에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아낼 상징적 인사는 되지 못한다.
여야 간의 타협을 이끌어 정치적 현안에 대한 '출구'를 찾아낼 정무형 인선 역시 아니다. 오히려 김 실장은 2004년 3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주도한 인물로, 야당의 강한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제1야당인 민주당의 최대 계파는 이른바 '친노'이며, 의석수 5석의 제3야당 정의당 당수는 노무현 정부 대변인을 지낸 천호선 대표다.
게다가 김 실장은 1994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검장과 안기부 부산지부장 등 부산 지방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선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적극 부추기자는 내용의 대화를 나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다. 현재 야당이 가장 민감하게 제기하는 이슈가 바로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이고 보면, 야당의 심리적 상처(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부분마저 있다.
결국 경제를 이끌 정책통도, 여야의 원만한 타협을 지원할 정무형 인선도 아닌 김 실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힌 것은 박 대통령 특유의 '강행돌파'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여야 대립을 원만하게 조정하고 '민생'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국면 전환을 추동할 동력이 이번 인사에서 마련됐는지는 장담하기 힘든 부분이다.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의 현안 조정 능력 역시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06년 9월 한 출판기념회에서 악수를 나누는 박근혜 대통령(당시 국회의원)과 김기춘 비서실장. ⓒ연합뉴스 |
또 김 실장이 법무장관을 지낸 검찰 원로인사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검찰에 대한 영향력 확대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검찰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등 민감한 시국사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내각의 수장인 정홍원 총리도 김 실장과 마찬가지로 공안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앞서 정 총리와 황교안 법무장관의 기용을 박 대통령에게 천거한 이도 김 실장이라는 설이 나돌기도 했었다.
총리와 법무장관 인선이 김 실장의 천거에 의한 것이라는 관측은 정권 초반, 아니 집권 이전부터 '파워 맨'으로 불린 그의 위상을 반영한다. 특히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2대에 걸친 것이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 '상청회' 회장 출신인 김 실장은 1972년 유신 당시 검사로서 유신헌법의 초안을 마련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74년에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 기구였던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대공수사국 부장으로 근무했다. 육영수 전 영부인 암살범인 문세광에 대한 심문을 담당한 것도 중정 파견근무 당시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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