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최대 경제도시 상파울루 등 몇몇 도시에서 시내버스 요금 인상 계획이 발표되면서 시작된 시위가 열흘만에 전국 20여개 도시 25만여 명의 시민들이 나선 대규모 시위로 확산된 채 계속되고 있다.
당황한 브라질 정부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시위대 규모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시위대에 찬사를 보내며 달래기에 나섰다.
▲ 브라질 전역 20여개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9일(현지시간) 밤 브라질리아에서도 수만 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
대통령이 시위대에 찬사, 요금 인상도 철회했지만...
그래도 시위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19일(현지시간) 상파울루 당국을 시작으로 요금인상도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하지만 요금 철회로 시위가 진정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이번 브라질의 시위는 언뜻 보기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규정짓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시내버스 요금을 3헤알(약 1570원)에서 3.2헤알로 약 100원 정도 인상한 것이 시위의 불길을 댕기는 불씨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시내버스 요금 인상 철회가 시위의 유일한 목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도 아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현정권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좌파정당 노동자당에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좌파게릴라 출신인 지우마 호세프가 이끌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아직 55%가 넘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젊은층이 주도하고 있고, 중산층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의 부패 등 브라질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을 폭발시키고 있다.
<가디언>은 브라질 시위에 대해 "전통적인 좌우 이분법으로 시위 참가자들을 분류할 수 없다"면서 "시위대의 요구를 하나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시민의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디언>은 "브라질의 정치는 정실주의에 지배되고 있으며, 사회복지나 기반시설은 끔찍할 정도로 낙후돼 있는 반면 세금 부담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즉, 대부분의 국민은 마치 시민이 아닌 것처럼 대우받고 있으며, 내는 세금보다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극심한 불평등 사회, 월드컵대회에는 천문학적 예산 투입
이번 시위는 이런 불만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고조되다가 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맞아 폭발했다.
정부가 최저임금이 월 35만 원에 불과한 수준이 보여주듯 빈부격차가 극심한 브라질의 현실은 도외시하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에 세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 사상 최대 규모라는 280억 헤알(약 14조 5000억 원)을 축구장 건설 등 월드컵대회 준비에 쓴다는 사실이 공분을 사고 있다. 돈 많이 썼다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5조 원 정도라는 점에서 천문학적인 규모다.
브라질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타이나라 프레이타스는 <CNN> 인터뷰에서 "터키와 그리스 국민이 벌인 반정부 시위가 우리를 일깨웠다"면서 "브라질 월드컵은 가난한 국민을 본체만체하며 부패한 정부와 국제축구협회(FIFA)의 이익을 위해 세금을 쏟아붓는 행사"라고 말했다. 시위대들은 "학교와 병원이나 FIFA 기준에 맞게 지어라"고 외치고 있다.
브라질에서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는 최근 10년간 0.5를 넘어섰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0.4를 넘으면 언제라도 폭동이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수준을 뜻한다.
스태그플레이션 속 환율 폭등·증시폭락
설상가상으로 경제신흥대국의 면모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4%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던 브라질 경제는 지난해 1% 미만 성장에 그친 데 이어 올해도 2.5%에 못 미치는 저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은 5.8%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양적완화'라는 통화팽창 정책으로 몰려들었던 외국의 투자도 양적완화가 끝물을 맞고 있다는 관측에서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급기야 국제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경제성장이 회복세를 보이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Baa2인 브라질의 신용등급 전망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미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가디언>은 "진정한 개혁이 없으면, 시위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균열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면서 "평화적 시위 참가자들에게도 폭력적인 진압을 한 상파울루의 시위현장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국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억지를 부린다면, 시민의 권리를 찾으려는 시위는 혁명적인 양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번 시위의 중심은 중산층들이라는 점에서 지금으로서는 '아랍의 봄'이 아니라 '월가 점령 시위' 같은 성격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보다 위협적인 성격으로 변할 잠재적 요인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은 그 요인들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 또 하나는 경제다.
통신은 "브라질의 헤알화 환율이 최근 폭등하고 있으며, 증시는 올해 들어 20% 폭락했다"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경제 위축으로 실업률이 올라라면 사회불안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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