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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가 먹히리라는 건 '민주주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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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란 제재가 먹히리라는 건 '민주주의의 착각'"

[해외시각] 英 언론인 "제재는 이란 지도부에만 좋은 일"

미국과 서방의 대(對) 이란 제재로 긴장은 높아만 간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이란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 법안에 서명했고 유럽도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도 기죽지 않고 핵개발 성과를 선전하고 원유 운송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응했다.

그 결과 이란 리알화 가치는 폭락했고 국제 원유값은 폭등했다. 원유값 상승으로 미국과 세계의 경기회복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스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유약하다'는 공화당의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제재 법안에서 이란과 거래하든지 자신과 거래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일하라고 세계에 엄포를 놨다.

미국의 이같은 조치는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굴복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란 핵문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핵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지정학적 연원이 있기도 하지만, 제재는 핵 프로그램의 중단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저명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는 3일(현지시간) 기고에서 "미국의 명령에 따라 이란에 무력 위협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며 분쟁을 초래할 뿐"이라며 제재 등 외부로부터의 압박은 오히려 이란 내 강경파들의 입지만 강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핵문제로 인해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유효한 지적이다.

젠킨스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정권이 국내적으로 극심한 비난을 받게 돼 지지기반을 잃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면서, 이란을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외부 제재에는 민주주의 국가처럼 반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이란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 압박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했고 국제 원유가는 폭등했다. 사진은 지난 연말 호르무즈 인근에서 행해진 이란 해군의 훈련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아미르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 ⓒAP=연합뉴스

영국은 왜 이란 제재에 박차를 가하는가?

"개는 먹다가 뱉어 놓은 먹이로 다시 돌아오고, 암퇘지는 뒹굴던 진흙탕을 다시 찾는다. 불에 데인 바보의 손가락은 떨리면서도 다시 불길로 다가간다"

루이야드 키플링이 옳았다. 영국은 이라크에서는 빠져나왔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빠져나오려고 용을 쓰고 있다. 그런데 또 왜 이란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나?

영국 지도자들도 더 강화된 제재로 인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멈춰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무아마르 카다피를 몰아낸 것은 제재가 아니라 오직 전쟁이었다. 이란은 지난 33년 간 제재를 받았다. 그 외에는 서방이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제재는 결과를 내지 못했고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등 의도치 않은 효과만 냈다.

미국은 최근 이란에 대한 새로운 상업 및 금융 제재를 발표했다. 누구라도 이란과 사업을 한다면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친이스라엘 로비스트들에게 자신이 터프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만 한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위험한 게임에 발을 맞춰 이란의 원유 수출을 금지할 것인지를 이달 내로 결정해야만 한다. 이런 위협은 이란으로 하여금 페르시아만에서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경기침체의 와중에 벌어진 이같은 위협은 극도로 멍청한 짓이다. 핵무장 국가들과 그 동맹국들에 둘러싸인 이란이 언젠가부터는 자신도 비슷한 능력을 추구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 물질적으로 충분하지만 불안정한 정권이 '최종적 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안정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지만 핵보유국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반도, 베트남, 포클랜드, 체첸, 카슈미르와 중동의 수많은 국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지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핵무기가 언급됐고 이는 오히려 전쟁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어떤 멍청이들은 '지나치게 조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군비 경쟁의 모토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이유로 핵능력을 갖췄고 이란 역시 같은 이유로 핵을 원한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은 이란의 작업을 연기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전쟁 위협을 가중시킬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긴장 고조를 피하는 것이다. 긴장이 고조되면 호전성이 확대돼 서방 지도자들이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굴복할 수도 있다.

지난 30년 간 서방의 숙제는 이란의 근본주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핵에 대한 갈망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친서방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서방의 시도는 이란-이라크 전쟁과 아프간의 탈레반-파키스탄 정권 등으로 인해 수립된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현재 서방의 이라크 점령은 이란으로 하여금 이라크에 전례없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이란의 영향력은 아프간 서부에도 미치고 있고 걸프 국가 내 반정부 운동에 대한 지원도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의 잘난 아랍 전문가들은 다 어디 가셨나?

제재가 오랫동안 계속됐다는 것은 이란이 제재국들을 대결 국면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방이 가한 제재는 잠재적 적개심이나 전쟁으로 향하는 전주곡이다. 제재는 그 대상이 되는 정권에 임전 태세를 갖추게 했고 권력과 돈을 그 지배 엘리트들에게 몰아 줬다. 1990년대 바그다드와 트리폴리에서 그랬듯, 지금 테헤란에서 제재는 아무도 몰아내지 못했고 단지 권력자와 장군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또 제재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했을 뿐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상인과 전문직 계층도 굶주리게 했다. 제재는 중산층의 외국 유출을 가속화했고 결과적으로 정치적 다원주의나 야당 세력의 출현 전망을 어둡게 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한다. 강력한 제재는 "이란의 경제적 붕괴를 촉진시키고 정권 내 균열을 심화시킬 것이며 상대적으로 온건한 세력은 핵무기를 추구하는 대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는 제재에 직면한 전체주의 국가가 마치 민주주의 국가처럼 반응할 것이라고 여기는 '민주주의적 착각'이다. 제재는 그런 과정을 촉발시키지 않으며 단지 장벽을 만들 뿐이다. 게다가 핵 프로그램을 방해하기 위한 암살 음모는 이란 과학자 사회를 분노하게 했다.

어떤 나라든 외부의 위협에 순응하리라는 생각은 엉터리다. 미국이나 영국의 어떤 언사도 불안정한 권좌에 앉아 있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위치를 더 공고히 해줄 뿐이라는 가정이야말로 합리적이다.

서방의 위협은 혁명수비대 내의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을 자극할 것이고 야권을 침묵하게 할 뿐이다. 이란 출신 망명자들은 제재를 지지할지 모르나 망명자들의 입장이 고국의 정치 상황에 신뢰할 만한 지침이 되는 일은 드물다.

경제 제재는 겁쟁이의 외교다. 제재는 마치 도덕적으로 고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위험(risk)을 적게 감당하면서도 세계를 어지럽히는 방법일 뿐이다. 게다가 제재는 군사주의자들을 부추겨 공공연한 분쟁으로 사태가 악화되도록 할 위험성도 있다.

영국은 코소보 전쟁, 걸프전 등에 참여하며 막대한 지출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원조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하자고 할 때마다 덩달아 칼춤이나 추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바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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