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과 한반도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초대형 태풍이 되어 한반도를 집어 삼킬 것인가? 일시적인 충격으로 끝나고 현상유지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인가?
이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관심의 초점은 김정일 사후의 북한 체제의 미래에 맞춰지고 있다. 절대 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급사와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의 등장이 교차하면서 북한의 앞날에 불확실성이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이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기다리기 전략'으로 후퇴하거나 '북풍'의 유혹에 빠진다면,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불확실성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대북정책 본연의 목표에 집중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
김정은 체제, 핵포기 결단 더욱 어려워질 듯
문제의 초점을 북핵 문제 및 한반도 정세에 맞춰보자. 일단 북핵 해결 가능성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급사로 예정보다 훨씬 빨리 등장한 김정은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세 가지 이유를 떠올릴 수 있다.
첫째는 국가 안보상의 이유이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한미 양국의 대북강경책에 맞서 "핵 억제력"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김 위원장의 사망 및 이를 북한급변사태론과 연계시켜 사고하는 한미 양국의 흐름은 북한의 신생 정권으로 하여금 "핵 억제력"를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낳을 공산이 크다.
둘째는 김정은 정권이 중국으로의 과도한 종속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눈에 띠게 증가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 권력자의 죽음은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중국에 더더욱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역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핵무장이야말로 북한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는데 유용하다고 볼 것이다. 이는 과거 중국-소련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핵무기를 '종이 호랑이'에 비유했던 마오쩌둥이 핵무장을 선택한 데에는 한국전쟁과 대만 해협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핵 위협이 커진 탓도 있었지만,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소련의 안보 우산에 있는 한, 중국의 주권과 정책 자율성은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중소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마오쩌둥과 유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큰 까닭이다.
셋째는 북한 내부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김정은 체제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비핵화를 선택하는 것은 군부의 이해관계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에게 핵포기는 가장 어렵고도 전략적인 선택인데, 김정은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오후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 철책선에서 육군 15사단의 초병이 북녘땅을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게임의 법칙'을 바꿔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김정일이 권좌에 있을 때, 북한과 대타협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핵·개방 3000'을 외쳤던 이명박 정부도, "적대국 지도자와도 대화하겠다"던 오바마 행정부도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북핵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20년간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 다시 외교를 포기하고 관망세로 돌아서거나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치우치면 북핵 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하여 한미 양국 정부에게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북한에게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북미·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핵의 뿌리를 캐내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장을 선택한 모든 나라가 그러했듯이 북한 핵무장의 가장 큰 동기는 국가 안보상의 필요 때문이다. 이 점을 인식하고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북핵 외교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둘째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핵무장이 아니라 남북·북미·북일 관계 정상화에 있다는 인식을 북한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20년간 대외 관계 정상화를 위해 협상과 벼랑끝 전술을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김정은 체제에서 달라질 이유는 없다. 한-미-일 3국이 이 점을 포착한다면, 북핵 해결을 비롯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구축의 문은 조금씩 열릴 수 있다.
셋째는 북한의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과도한 대북 군사 태세를 취하고, 북한 급변사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북한의 강경파를 돕는 일이고, 김정은 체제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거꾸로 한미 양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하고, 북한을 적대하거나 흔들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과 대화에 나선다면, 북한의 신생 정권과 신뢰를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키 리졸브 훈련 중단을 선언해야 하는 이유
특히 한미 양국은 지금부터 매년 3월에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의 중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의 군부와 강경파들은 북한의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진 만큼, '키 리졸브' 훈련을 더욱 규모 있게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을 것이다. 특히 군비 삭감 시대에 접어든 미국 군산복합체 및 이와 결탁된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위협론을 더욱 부풀릴 공산이 크다.
만약 내년 봄에 또 다시 '키 리졸브' 훈련이 실시된다면, 그것도 북한급변사태 대비가 공공연히 유포되면서 강행된다면, 이는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한반도 위기 지수를 급격히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한미 양국이 '키 리졸브' 훈련 중단이라는 전향적인 선택을 발표한다면,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이 북한을 적대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 훈련의 중단 선언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은 바로 한미 양국의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에 있었다. 거꾸로 남북기본합의서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문화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강수를 둔 결정적 원인은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에 있었다.
당시의 교훈을 떠올린다면, 오늘날 한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바로 '키 리졸브' 훈련 중단 발표가 그것이다. 현정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노태우 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도 했던 일을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못 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발표 시점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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