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사람의 길에서 동백은 두 번 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사람의 길에서 동백은 두 번 핀다!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22> 삼칭이 해안 길

내내 청보석의 바다를 보며 걷는 해안 길

평지가 드문 통영에서 삼칭이 해안 길은 더없이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 길을 낸 것이 통영 최고의 해변 길이 됐다. 마리나 리조트에서 영운리까지 4km를 내내 바다만 보며 편안히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진 까닭에 시멘트 포장을 했다. 흙길이 아니라 조금 아쉽지만 시리도록 푸른 청보석의 바다는 그런 아쉬움쯤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니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모처럼 삼칭이 길을 걷는다. 오늘은 이 길에 자전거보다 걷는 사람이 더 많다.

삼칭이란 이름은 삼천진에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 길의 끝자락 마을인 영운리에 삼도수군통제영 수군의 주둔지인 삼천진이 있었다. 진장은 종 9품의 권관(權管)이었다. 권관이란 조선 시대 변경지방 진관(鎭管)의 최하단위인 진보(鎭堡)에 두었던 종9품의 수장(守將)이다. 삼천진은 본래 삼천포에 있었으나 1619년 (광해군 11년) 영운리로 옮겨오며 삼천진이란 이름도 함께 가져왔다. 과거에는 진이 옮겨가면 이름도 옮겨갔다. 선유도에 있던 군산진이 옮겨가면서 군산이란 이름도 따라갔고 경기도 남양에 있던 영종진이 지금의 영종도로 옮겨가면서 이름도 따라갔다. 삼천포란 이름은 고려 시대 개경에서 뱃길로 삼천리 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긴 생머리의 소녀 셋이 마리나리조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되돌아온다. 아마 자전거를 빌려 시간이 다할 때까지 길을 오가며 노는 듯하다. 육상에서 싱그러운 소녀들이 바람을 가르는 동안 바다에서는 흰 돛을 올린 요트들이 바람에 밀려간다. 여객선은 먼바다 섬으로 떠나고 조업 나갔던 어선들은 서둘러 포구로 돌아온다. 통영 공설해수욕장 부근 벤치에서는 청년 둘, 기타를 퉁기며 노래 연습이 한창이다. 사내들 몇은 낚싯대를 던지고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바닷물은 맑고 푸르고 투명하다. 파래와 돌김, 잘피들까지 해변의 물속에는 무성한 초원이 다 드러난다. 초원에 풀을 뜯으러 나온 물고기들 머리 위로 소방헬기 한 대 굉음을 내며 한산도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놀란 물고기들은 물풀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긴다.

▲ 삼칭이길은 자전거길로 만들어졌지만 걷기에도 더없이 좋다. ⓒ강제윤 제공

▲주인을 따라나온 강아지가 딴전을 피우는 모습이 더없이 한가롭다. ⓒ강제윤 제공

병사들의 영혼들을 천도하던 마을 수륙리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복슬 강아지 한 마리는 길을 가다 말고 딴전을 피운다. 태어난 지 45일밖에 안된 신생의 강아지. 어린 생명의 기운으로 이 길도 더욱 생명력 넘친다. 공설해수욕장 부근 길가와 모래밭에서는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연을 날린다. 연을 처음 날려보는지 아이들은 자꾸 연을 떨어드린다. 아이들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높이 날아오르다 추락하고 다시 날아오르고 다시 추락하길 반복하며 점점 더 멀리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길가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선간판이 서 있다. 통영시 명예시민이자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성룡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웃으며 당부한다.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줍는 방법은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진을 찍은 성룡은 자신이 통영시 홍보대사라는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렇거나 말거나, 어떻든 성룡의 당부는 잘 지켜지지 않는 듯싶다. 해안가로 밀려온 부표며 페트병 같은 바다 쓰레기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통영 공설 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이라 이름 하기에 초라할 정도로 작은 해변이다. 그래도 이 마을에는 팬션들이 많다. 여름철에 제법 떠들썩할 것이다.

▲통영시 홍보대사인 성룡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을 부탁한다. ⓒ강제윤 제공

충북 번호판을 단 대형버스 옆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은 낮술에 거나하게 취해 구호를 외치다, 노래를 부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가뭇없는 한 시절을 흘려보낸다. 술판 옆에는 멍게 작업용 바지선이 떠 있다. 양식장에서 수확해온 멍게를 모아놓고 선별하는 일손이 바쁘다. 어선 한 척은 일꾼들을 싣고 멍게를 수확하기 위해 양식장으로 떠난다. 이주노동자 일꾼들이 난간도 없는 바지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 통영은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멍게 세상이다. 산 밑 주차장 옆에는 산으로 간 배 한 척, 자동차들과 나란히 정박해 있다. 자전거 도로답게 자전거 대여점도 몇 곳 눈에 띈다. 1인용, 2인용, 자전거 마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걷기도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고 무엇이든 다 좋은 날이다.

공설해수욕장 있는 이 마을은 수륙리다. 삼도수군통제영 시대 죽은 군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수륙제를 행하던 장소라 해서 수륙리란 이름을 얻었다. 이 바다는 얼마나 많은 영혼들의 거처인가. 임진왜란으로 죽은 수천, 수만, 적과 아의 영혼들, 무고한 백성의 영혼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훈련 중 많은 수군이 목숨을 잃었으리라. 전복 따위 해산물 공납을 관청에 바치기 위해 물질하다 숨을 거둔 원혼 또한 부지기수이리라. 억울하거나 죽어 마땅하거나 무관하게 아무튼 원귀가 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천도하던 곳, 수륙리. 그 원혼들의 바다가 오늘은 더없이 평화롭고 무심하고 푸르기만 하다.

본래 수륙재란 수륙(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공양(供養)하는 불교의식이다. 수륙도량(水陸道場) 혹은 수륙법회라고도 한다. 수륙재를 지냐면 떠돌던 넋들이 불보살의 가피를 받아 극락으로 천도 된다고 믿어진다. 수륙재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464년~549년), 달마대사에게 불법을 묻던 그 양나라 황제인 무제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무제는 떠도는 넋들을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 수륙재를 지냈다.

이 땅에서 처음 수륙재가 거행된 것은 고려 광종 2년(970년), 갈양사(葛陽寺)에 개설된 수륙도량에서다. 억불숭유 정책을 취했던 조선 시대에도 초기에는 국가행사로 수륙재를 거행했다. 하지만 중종 때에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국가행사로 거행되는 것이 금지됐다. 이후 민간에서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동백은 두 번 핀다

▲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동백이 올해는 유난히도 붉다. ⓒ강제윤 제공

삼칭이길은 종현산(188m)이라는 아주 나지막한 산 둘레를 돌아간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종(鐘)을 하늘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산 이름이다. 길가 산 밑자락 동백나무에는 동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동백은 나무에도 피었고 땅에도 피었다. 동백은 두 번 핀다. 살아서 한 번 죽어서 한번. 절정의 순간 목을 던지고 통으로 떨어지는 동백은 떨어진 뒤에도 삼사일 동안은 변함없이 붉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붉게 피어나는 꽃. 동백은 잎에 비해 꽃이 작아 나무에 피었을 때는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뒤에는 그 색과 자태를 확연히 드러낸다. 붉은 꽃송이가 더욱 꽃답다. 동백이 목숨을 던진 뒤에도 죽지 않는 것은 생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가 아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다. 생사에 무심하니 죽어서도 죽지 않고 저토록 붉은 것이다.

이 길에서는 지상만이 아니라 바다에도 꽃이 피었다. 바위꽃! 수중의 바위도 온통 녹색의 꽃을 피워 올렸다. 봄은 산과 들만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오는 것이다. 저 바위에 붙은 연두색 파래들은 나무의 연둣빛 새순처럼 아득하고 아련하다. 어떤 바위에 붙어 늘어진 파래는 바위의 머리카락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바위가 스스로 죽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는 것 같다. "보아라 내 머리에도 새 머리카락이 돋아나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존재다!" 바위의 자기선언. 봄이면 무생물마저도, 만물은 저렇듯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온통 안간힘이다.

한참을 생각에 몰두해 걷는데 갑자기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벨이 울린다. 꼬마 아가씨가 길을 비켜 달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오늘 이 길에는 어른보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더 많다. 이보다 더 많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길. 사람을 배려하는 길. 이런 사람의 길이 더 많아질 때 우리의 아이들도 더 인간답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자동차를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어른들처럼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난폭 운전을 일삼지는 않을 것이다. 야만의 길은 야만을 만들고 사람의 길은 사람을 만든다!

사랑도 하염없다

▲ 선녀와 병사 간에 슬픈 사랑의 전설이 깃든 복바위. ⓒ강제윤 제공

등대 유료 낚시터를 지나자 멀찍이 사람의 형상을 한 바위가 길가에 우뚝 서 있다. 무슨 전설이라도 들어있음 직하나 나는 그 이야기를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 형상의 바위를 돌아서자 거대한 절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 있다. 절벽에는 동굴이 하나 있다. 동굴은 깊지 않지만 넓다. 수십 명 비를 피하고도 남을만한 넓이다. 필시 파도가 만든 동굴이리라. 동굴 안에는 조금 전까지 치성을 드리다 간 흔적이 역력하다. 촛불이 4개나 켜져 있고 제단도 있다. 무당들의 기도처인 듯하다. 민간 신앙의 성소인 것이다. 지나가던 노인에게 물으니 "무당들이 손 비비는 곳'이라 알려준다. 잘 봐달라고 "용왕 멕이고 용왕한테 손 비비며 비는 곳"이란다. 굴 입구에는 떨어진 돌들이 뒹굴고 낙석 주의 안내판과 출입금지 금줄이 처져 있는데, 목숨을 걸고라도 빌어야 할 기원이란 또 얼마나 간절한 기원일 것인가.

굴이 있는 길을 돌아서자 작은 바위섬 세 개가 명승의 풍경을 연출한다. 둘은 바다에 있고 하나는 도로가 나면서 뭍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 바위들이 삼칭이 마을의 복바위다. 바위에는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옥황상제의 근위병 셋이 선녀 셋과 지상에 내려와 몰래 사랑을 나누다 들켰다. 성난 옥황상제는 불벼락을 내려 그들을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이 전설은 마치 울릉도 삼선암과 장수 바위에 얽힌 전설을 빼다 박았다.

울릉도의 빼어난 경치에 매혹된 세 선녀는 자주 울릉도 바다에 내려와 놀다 가곤 했다. 어느 날 두 언니 선녀는 막내 선녀가 호위 장수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고 들키기 전에 하늘로 돌아가려 했지만 하늘로 돌아갈 시간을 놓쳐 버렸고 이들을 지켜보던 옥황상제는 질투에 눈이 멀어 세 선녀와 장수를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 천상천하 온 우주의 주인 옥황상제마저도 질투에 눈이 멀어 사리분별을 잃게 하는 것이 사랑인가. 오늘 나그네는 삼칭이 해안 길 끝자락에서 하염없다. 하늘도 하염없고 바다도 하염없고 마침내 사랑도 하염없다.

□ <통영학교>, <섬학교> 5월 답사 안내
강제윤 시인이 이끄는 인문학습원 <통영학교>와 <섬학교>가 5월 답사를 떠납니다.

통영학교 5월 답사
일시 : 17일(석가탄신일), 18일 / 장소 : 통영 일대
☞ 자세한 답사 내용 보기 : "청보석 바닷길 따라...제철 해물천국으로"

섬학교 5월 답사
일시 : 4일~5일 / 장소 : 서해 비경 굴업도
☞ 자세한 답사 내용 보기 : "서해 바다에 떠오른 환상(幻想)...굴업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