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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이고 장검 빼든 미국, 헛힘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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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이고 장검 빼든 미국, 헛힘만 썼다"

[9.11 10주년, 세계의 시각]<5> 조지프 나이 "'테러와의 전쟁', 잘못된 이름"

다음은 '소프트 파워'(문화적 영향력 등의 연성권력)라는 개념을 창안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9.11 10주년을 맞아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한 칼럼의 내용이다.

나이 교수는 노암 촘스키 교수나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 중동전문 기자 등의 다른 평자와는 달리 9.11 이후 안보 개선을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에 비교적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범세계적인 관점이나 전쟁터가 된 중동 민중의 관점을 앞세우기보다 미국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나이 교수는 알카에다 등 소규모의 비국가 행위자들에 맞서 미국이라는 거인이 칼을 빼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비판하며 중동에 특수부대나 항공모함을 보내기보다는 미국의 정당성과 이념을 설파하는데 더 힘을 쏟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칭 또한 '이슬람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며 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실수였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미국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현재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의 하나인 나이 교수의 글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정책적 실용주의 관점에서의 비판을 보여준다. 아래는 나이 교수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 지방의 건설 현장에서 아프간 노동자들이 미군 헬기를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9.11 10주년, 세계의 시각' 시리즈

<1> 스티글리츠 "대테러전쟁, 일상화된 테러 위협과 빚만 남겼다
<2> 로버트 피스크 "알카에다가 미국을 반대하는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
<3> 촘스키 "파키스탄 핵무기가 위험해져"
<4> 라이오넬 바버 "테러와의 전쟁이 '중국의 시대' 열었다"

고양이에게 쥐가 덤벼들었던 날, 그 후의 10년
(Ten years after the mouse roared)


10년 전 미국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은 미국과 전세계에 크나큰 충격을 던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뭘까?

미국 정부 건물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은 9.11이 미국의 안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도, 엄격해졌던 이민 제한은 다소 완화됐고, 9.11 직후의 히스테리적인 반응도 가라앉았다. 미 국토안보부와 국가정보국(DNI), 대테러센터(CTC) 등 새로 설립된 기구들이 미 정부를 바꿔놓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미국인들의 개인적 자유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고 미국 내에서는 더 이상의 대규모 공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민들의 일상생활은 복구됐다.

그러나 이 때문에 9.11이 가지는 장기적 의미가 간과돼서는 안된다. 필자가 <권력의 미래>(The Future of Power, 2010)에서 주장했듯 세계 정보화 시대의 주요 변화 중 하나는 비국가 행위자의 위상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알카에다는 1941년 일본 정부가 진주만에서 죽인 것보다 더 많은 미국인들을 죽였다. '전쟁의 사유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소련으로부터의 핵 공격에 [오늘날 알카에다의 공격에 대해서보다] 기술적으로 더 취약했다. 그러나 '상호확신파괴'(MAD) 전략이 이 취약성을 보완해 균형을 맞췄다. 강력했던 소련의 군사력도 미국보다 더 강하지는 않았다. [MAD 전략이란 두 강대국 중 한쪽이 핵무기 선제공격을 가한다면 이는 상대방의 보복공격을 불러와 둘 모두 파멸할 것이 뻔하기에 오히려 평화가 유지된다는 개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he terror)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에서는 두 가지 불균형이 알카에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첫째, 정보 불균형이다.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목표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미국은 9.11 이전까지 테러 조직의 정체성이나 위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미 정부의 몇몇 보고서에서는 비국가 행위자들이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예견도 있었지만 이들의 결론이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둘째, 집중력에서의 불균형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목표를 가진 거대한 국가는 소규모 행위자들에게 집중하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 반면, 소규모 행위자들은 뚜렷하게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미국의 정보 시스템 내에는 이미 알카에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있었지만 미국은 다양한 기관들로부터 수집된 이 정보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보와 집중력의 불균형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부여한 강점이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완벽한 안보' 같은 것은 없으며 역사적으로 봐도 테러의 물결이 사라지는 데는 한 세대가 소요된다. 하지만 알카에다 최고지도자의 제거나 미국의 정보역량 강화, 국경 보안 강화,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의 협력 강화 등은 분명히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9.11이 우리에게 주는 더 큰 교훈은 정보화 시대에서의 '서사'[narrative, 설득력]와 소프트 파워의 역할이다. 전통적인 분석에 따르면 [상대방보다] 더 강한 군대나 더 큰 국력이 승리를 가져온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의 결과는 누가 더 나은 서사를 갖고 있느냐에도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경쟁이다. 테러리즘 또한 서사이며 정치적 드라마다.

소규모 행위자는 거대한 행위자와 군사력으로 경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폭력을 이용해 그 타격 대상이 되는 국가의 소프트 파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사를 생산해 내고 세계적인 의제(agenda)를 설정할 수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서사를 만드는 데 능숙했다. 빈 라덴은 자신이 바랐던 만큼 미국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10년 간 세계의 의제를 지배하는 데는 성공했다. 또 미국이 초기에 보인 무능 때문에 빈 라덴은 미국에 필요 이상의 비용 지출을 강요할 수 있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 선포라는 전술적 실수를 저질렀다. 미국에 전쟁을 선언한 알카에다만을 대상으로 한 구도를 잡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미국의 폭넓은 행동 모두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졌다. 이라크전은 비싼 대가를 치른 어리석은 전쟁이었고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게다가 많은 무슬림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슬람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미국의 의도가 아니었지만 빈 라덴의 적절한 노력으로 인해 핵심적인 이슬람 국가들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악화됐다.

전쟁 비용으로 지출한 수 조 달러는 오늘날 미국을 병들게 한 재정 적자 사태를 불러왔다. [이로써] 빈 라덴은 미국의 '하드 파워'에도 손상을 입혔다. 9.11의 진정한 대가는 기회 비용이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세계 경제는 서서히 그 중심지를 아시아로 옮겼지만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선택한 실수에 발이 묶여 있었다.

9.11의 핵심적 교훈은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군사력도 필수적이지만 정통성과 사상이라는 소프트 파워 또한 승리의 필수적 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알카에다가 자신들의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했던 주요 이슬람 국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스마트 파워'[역시 나이 교수가 창안한 개념으로 하드 파워와 스마트 파워의 조화를 강조한다. 오바마 행정부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평가된다] 전략은 소프트 파워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반세기 전 주장한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미국에 있어서 9.11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다.

"점령을 위한 전쟁(land war of occupation)에 개입하지 말고 미국의 경제력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둘 것!"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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