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핵, 6자회담 동향
북한 비핵화 노력은 9.19 공동성명에서 시작된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공약한 사실상 최초의 공동 합의이다. 그러나 공동성명 이행은 BDA 문제, 북한 미사일 발사(2006.7), 핵실험(2006.10) 등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2기 부시 행정부는 중간선거(2006.11)에서 공화당이 패배하자 대북협상을 서둘렀다. 2007년 2.13 합의를 통해 1단계의 구체적 이행방식이 마련되었고, 2007년 10.3 합의를 통해 2단계 조치의 이행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신고에 따른 검증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으로 6자회담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2009년 4월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 2호를 발사하였고, 5월에는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한미일이 중심이 된 UN 안보리 대북제재의안 1874호가 채택되자 북한은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추가 확보 등 핵능력 증대의 길로 나아갔다. 이후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은 기간 동안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능력을 강화해 왔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2010년 11월, 북한은 미국 헤커 박사에게 영변 내 2000기의 고속 원심분리기와 우라늄 농축 공장, 소형 경수로 건설 현장을 공개하였다. 물론 우라늄 농축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002년부터 본격 제기된 북한의 우라늄 농축(UEP) 문제가 비로소 현실화됨으로써 북핵협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개발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 기존 6자회담 기제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장
미국의 부시 전 행정부는 9.19 공동성명 이후 진행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을 서둘렀다. 결국 핵 프로그램의 신고 및 검증 문제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임기를 마무리하였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 폐기보다는 비확산에 중점을 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전략적 인내'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의 반발을 불러왔다. UEP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재선을 준비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최근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재인식한 듯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난 2-3년간 북핵협상이 거의 전무했었고 북한의 핵능력이 계속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 및 정치권의 비판도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미국은 King 대북인권특사 방북 등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내 보이면서 올해 7월 ARF를 계기로 남북 비핵화 접촉, 보스워스-김계관 간 북미대화를 진행하였다. 19개월 만에 열렸던 북미간 대화에서 양측의 큰 입장변화는 없었으나 양자간 탐색을 통해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서는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앞으로 언제, 어떤 변화된 입장에서 제2, 제3의 북미대화가 전개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추가 북미대화, 나아가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의제와 쟁점 등이 과거와는 다른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성과에 대한 예측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가장 쟁점이 되어있는 UEP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UN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 우라늄 핵개발이 불법 핵 활동이라고 명백히 규정한 후, 북한과의 협상에 임하고자 노력해 왔다. 또한 6자회담 재개의 사전조치로서 북한에 직접적으로 UEP 개발의 포기를 명확히 하도록 압박을 하고 있다. UEP 문제가 북한이 포기해야 하는 핵 프로그램의 하나로서 분명한 6자회담의 의제가 되지 않으면 6자회담 재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두고 북미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전개되는 갑갑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도 역시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비핵ㆍ개방 3000 구상' 제시를 통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연계를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타협과 파행, 진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과거 북핵 협상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이른바 '그랜드 바겐' 구상을 내놓았다. 북한의 행동에 대한 보상은 불가역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조치는 가역적이라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 포기는커녕 제2차 핵실험, 대청교전과 연평도 사태 등을 일으킴으로써 북핵문제의 해결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도 어렵게 되었다. 천안함ㆍ연평도 문제의 해결도 안 된 상황에서 며칠 전에는 북한이 금강산 지역의 우리기업 재산처리의 절차를 일방적으로 진행시킴으로써 남북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가고 있다. 향후 북핵협상이 북미 양자대화 분위기로 진행되어 나갈 경우,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 남북관계 모두 어려워지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내년도 선거 등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주장은 거의 일관되어 왔다. 첫째,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종식과 핵 위협 제거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둘째, "조선반도의 핵문제가 해결되려면,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셋째, "우라늄 농축과 경수로 건설은 전력생산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다"는 것이다. 요약컨대 북한은 북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체결, 경수로 제공 등을 일관되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미대화 접촉에서도 북한은 UEP 문제는 평화적인 핵 활동이라고 반박하고, 조속한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비핵화 문제와는 별도로 식량지원 문제를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남북한과 미국의 입장과는 별개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명확하다. 한반도 평화 안정, 북한의 돌출행동 방지, 미국의 한반도 상황 개입 억제를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여 풀자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문제를 UN 안보리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를 통해 조속한 6자회담의 개최에 동의하였다.
3. 향후 전망
북핵문제의 해결 전망을 매우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 이른바 '가능론'은 북한이 핵무기를 수단으로 하여 체제보장과 경제실리를 추구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반대로 '회의론'은 북한이 명목상으로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등을 운운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핵보유국으로서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제네바 합의나 9.19 공동성명, 2.13 합의 등은 북한이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지연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정책결정 집단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전환하여 6자회담 재개 등 섣부른 대화에 동의할 경우 북한의 협상칩만 높여주고 핵활동을 재개하는 기존의 행동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9.19 공동성명에서 규정한 "포기해야 할 모든 핵 프로그램"에 UEP 문제가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북미간 입장이 충돌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입장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는가? 그에 대해서는 매우 낮다고 본다. 북한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물리적 기반은 자위적 핵 억제력과 선군정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기반을 현재 추진하고 있는 3대 세습의 근간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모든 핵위협, 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폐되고,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마지막 순간에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에 이어 최근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북한 정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비아의 경우 자진 핵 포기를 통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 바 있지만 결국 독재정권의 말로는 비참하였다. 세습정권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 있어서는 핵무기는 외부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체제 보위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향후 북핵문제와 6자회담 전망은 어두운 것인가? 결론적으로 2012년 선거 일정을 앞둔 각 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협상의 방향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핵폐기가 현 시점에서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추가 핵실험, 군사도발, 핵확산 방지에 초점을 두고 제한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고 할 것이다. 북한도 정치적 변동을 앞둔 미국, 한국 등의 입장을 잘 알고 대응할 것이다.
최근 UEP 카드는 내년 정치적 변동을 앞둔 미국, 한국 등을 압박하면서 식량, 제재 해제 등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시 내년도 정권 교체가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추가적인 북미 접촉이나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미대화가 앞서 나가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우선 추가 북미대화, 6자회담 재개 등 사안에 있어 한미간 공조를 강화하면서 우리도 추가적인 남북 핵 당국간 접촉을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남북 접촉이 북미 대화와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단순 요식 행위가 아니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상승작용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북한이 6자회담과 북미대화에 공을 들일 경우 여지없이 남북관계를 소외시켰다는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도 대북 지원 등을 매개로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연계의 연결고리를 보다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군사적 부분과 비군사적 부분으로 나누어 천안함ㆍ연평도 문제,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는 군사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고, 남북교류와 인도적 협력 문제는 비군사적 대화 채널을 이용한다면 남북관계의 단계적 회복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도 동북아 정세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이고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유연하게 파도를 넘어가는 전략적인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하겠다.
지난 15개월 사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 차례의 중국방문과 한 차례의 러시아 방문을 단행하였다. 김 위원장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은 듯하다. 어쩌면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을 받으려는 전략적 목적이 중국과 러시아로 궤도가 수정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을 받았다면 앞으로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경제적 지원을 지렛대로 해서 북한을 관리해 온 측면이 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고,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렛대를 상실한다면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있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신냉전 구도의 형성은 역사적 퇴보이다. 늦었지만 역사적 퇴보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의 철폐와 화해협력정책으로의 복원이 그 출발점이다. 남북관계 발전이 중심축이 되어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균형적 발전을 이끈다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증진을 통한 평화통일은 그리 먼 훗날이 아닐 것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1년 9·10월호(제15호)에 실린 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발리 비핵화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입니다. (☞전체보기)
* 원제 :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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