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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오르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혁명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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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오르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혁명은 어디로 갔나"

총선 연기 소식 '기름 부은 격'…"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난 2월 11일 이집트 민중의 분노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이집트에서 다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최고군사위원회가 이끌고 있는 이집트 과도정부는 당초 오는 9월로 예정됐던 총선이 10~11월로 연기될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지난 3월 최고군사위원회가 약속한 '6개월 후 총선'이 몇 달 지연되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 연기 소식은 '이집트 혁명의 성지'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3만 명이 운집해 최고군사위원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해졌다. 무바라크의 퇴진 이후 수천 명 규모의 시위는 산발적으로 있어 왔지만, 수만 명이 6일째 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바라크는 물러났지만 지난 수 개월 간 이집트에서 정국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는 여전히 구체제 인사들이 중심이다. 대표적으로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최고군사위원회 의장은 무바라크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 때문인지 무바라크 정권 부역자들과,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거나 지시한 인물들에 대한 심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규모의 시위는 일상적인 풍경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혁명'으로 권력의 중심에 등장한 군사위원회는 시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4월 8일에는 무바라크 퇴진 이후 처음으로 시위 진압 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8~29일에도 타흐리르 광장에 5000여 명이 모여 군사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가 보안군과 충돌해 1000여명이 다쳤다.

그러던 이달 4일 이집트 법원은 시위를 무력진압하며 17명을 살해하고 350명을 다치게 한 경찰들에게 보석 판결을 내렸다. 다음날 법원은 부정부패 협의로 기소된 무바라크 정권 각료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8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고, 수만 명이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했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연좌시위에 돌입했다. 알렉산드리아 등 지방에서도 시위는 이어졌다.

시위대는 이제 전 정권 부역자들의 처벌 뿐 아니라,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는 군사위원회가 시민들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다. 광장 여기저기에는 '군부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런 가운데 선거 연기 방침까지 발표된 것이어서 반발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12일자 칼럼을 통해 이집트 현재 정국은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피스크는 "무바라크는 물러났지만, 새로운 질서는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변화를 요구하는 이집트 시민들은 다시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이같은 사회 혼란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며 시위대 중 일부의 과격한 행동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이슬람주의 그룹과 군부가 결탁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는 '혁명의 과실'이 일부에게 독차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다음은 그의 칼럼의 주요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히리르 광장이 시위의 물결로 메워진 13일(현지시간), 한 시위자에 의해 머리 위로 들어올려진 아이가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다시 분노로 타오르는 타흐리르 광장, 싸워 얻어낸 혁명은 어디로 갔는가?

이집트 혁명에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는-왜 '최고' 군사위원회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중년의 무슬림형제단 단원이나 살라피즘(이슬람 개혁) 주의자들에게 아첨을 늘어놓고 있고, 장군들도 사이비 이슬람주의자들과 수다만 떨고 있다.

반면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젊은이들과 자유주의자,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은 무시당하고 있다. 경제는 붕괴하고 있고 도시의 거리는 매일 밤 무정부 상태다. 어둠 속에서는 종파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경찰들은 다시 더러운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이렇게 나쁘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면 카이로의 거리를 거닐어 보거나 타흐리르 광장을 돌아다니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바라크 체제의 오래된 인물들은 여전히 총리, 장관 자리를 꿰차고 있으며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모하메드 탄타위 최고군사위원회 위원장 역시 무바라크의 어릴적 친구이자 충신이었다. (탄타위는 그럼에도 무바라크에게 퇴진을 강요했지만) 타흐리르 광장에는 탄타위와 구체제 인물들의 사진이 등장했고 지난 2월의 외침도 되살아났다. "우리는 정권의 종말을 원한다"는 외침이다.

혁명에 참여했던 소규모 집단들은 도로로 둘러싸인 '교통의 섬' 타흐리르 광장에 텐트를 치고, 먼지 위에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앉아 나세르주의, 종파주의, 기독교적 시민 권리 조합 등에 대한 토론을 나누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이나 살라피스트들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카이로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파흐디 필립(26) 씨는 "우리는 군사위원회가 무바라크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며 "죄지은 자들[무바라크 정권 부역자들]에 대한 심판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900명에 가까운 이집트 시민들이 혁명 기간 중 경찰과 보안군에 의해 살해됐지만 단 한 명의 경찰관만이 시위대 살해 혐의로 (궐석) 재판을 받았다. 지난달 순교자들의 유족이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지만 경찰은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갔다.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경찰은 시위대에게 돌을 던지고, 곤봉으로 때리고,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소위 '국가인권위원회'라고 불리는 자들은 양측 모두를 비난했다. 그들은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고, 트럭으로 실어날라야 할 분량의 돌이 젊은이들에게 던져지기 위해 지난달 28일 타흐리르 광장에 등장했다고 말했다.

1100명 이상의 민간인, 군인,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더 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할까 우려한 탄타위의 '최고' 군사위원회는 총 1050만 파운드(약 18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설립해 혁명 기간 중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자들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카이로에서 신문을 편 순간(신문들은 마침내 자유를 얻기는 했으나 대부분 파산 상태다) 필자는 컬러로 인쇄된 탄타위의 사진과 함께 그가 새로운 '정보장관'을 임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야권 출신 인사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탄타위는 겨우 몇 달 전 정보부를 완전히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과도정부 당국자들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정보부가 폐쇄되기 전에 언론의 '민주적' 의무 수행을 돕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탄타위는 무바라크의 낡은 수법을 따라하고 있다. [정보부는 국정홍보 등을 맡고 있는 부처로,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는 사실상 언론 '통제'를 담당했다]

혁명으로 지키겠다고 한 법 질서의 붕괴 외에 이집트 신문들이 무엇을 보도할 수 있을까. 카이로의 카스르 엘아이니 병원이 담당하는 좁은 구역에서만도 매일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응급 환자로 오는 사람이 30명에 달할 정도다.

매주 목, 금요일에는 이런 환자가 50명에 달한다. 타흐리르 광장의 젊은이들은 '음모론'을 제기했다. 거리에서 경찰을 철수시켜 사람들이 스스로 불러온 혼란을 맛보게 되면 곧 다시 경찰국가를 원하게 되리라는 [과도정부의] 음모라는 것이다.

이집트 고위당국자들은 '이집트는 관광객들에게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국영 이집트항공은 대담하게 2월초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찍은 영상과 함께 '새로운 이집트'라는 광고를 내걸었지만 4달 동안 1억400만 파운드(1760억 원)의 손실을 봤다.

카이로 시내의 매리어트 호텔에는 1040실이 있지만 겨우 24명의 숙박객이 들었다. 옷가게를 보고 있는 필자의 지인은 "전에는 혁명이 좋았지만 지금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약 일주일 전, 금요 시위를 계획한 시위대가 노점상들에게 칼과 돌로 공격받는 일도 일어났다. 이에 대해 언제나 들리는 이야기는 모든 것이 권력자들에게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주의 그룹들은 혁명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최근의 시위에 단 한 차례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집트 언론인들도 우려하는 반응이다. 필자가 그들을 만났을 때, 그 중의 한 유명한 언론인을 알아본 커피숍 직원이 팬이라며 이집트의 부패를 폭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자 그는 걱정스러워했다. 그는 '민간인 폭동'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즉 지금 정부나 법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은 다시 경찰서를 불지르기 원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또 이들이 전한 이야기 중 하나는 필자도 타흐리르 광장에서 직접 들었을 만큼 널리 퍼진 것이었다. 일부 젊은이들은 만약 지난 1, 2월에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보안 당국자들이 재판에 부쳐지지 않으면 수에즈 운하를 봉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무바크에게 사형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집트 '최고' 군사위원회는 무바라크가 죽기 전에는 재판을 시작하거나 사업에 착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언론인은 "군사위원회는 무바라크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무바라크가 비켜남으로써 그들이 무바라크의 아들들에게 손을 댈 수 있도록, '숨쉴 공간'을 열어주기를 바란다"면서 "탄타위는 폭도들이 자신에게 올까봐 걱정하고 있지만 만약 무바라크가 죽으면 친절한 이집트인들이 자기를 용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늙었고, 군인이고, 일정 정도 냉각기도 지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택 연금 중인 무바라크가 최소 한 번 이상 비밀 진료를 받으러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왔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고 그가 권력에서 물러난 과정에 대한 폭로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나만 들면, 한 유명한 이집트 작가는 무바라크가 탄타위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아흐메드 샤피그 총리와의 충돌 이후에야 사임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무바라크는 그의 아들 가말과 알라가 [무바라크가 피신한 요양지] 샤름 엘셰이크로 오기 전에는 은퇴 성명을 발표하지 말아달라고 그들에게 애원했다고 한다. 아들들이 체포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쨌든 체포도 실패했지만) 가말이 뭔가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를까 해서였다. 가말은 혁명 며칠 전 무바라크가 술레이만을 부통령에 지명했을 때도 반대한 바 있다.

이집트 혁명의 강점은 지도자가 없고, 따라서 [정권에서] 누구를 체포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또한 약점으로 드러났다. 리더가 없으니, 혁명 이후의 상황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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