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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양적완화' 후폭풍 …금값 1400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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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양적완화' 후폭풍 …금값 1400달러 돌파

버냉키, '일본식 디플레이션' 고민 깊어간다

미국의 중앙은행 Fed가 향후 6000억 달러의 달러를 찍어내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조치를 결정한 뒤 후폭풍이 가시화되고 있다.

달러 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불과 며칠 사이에 국제금값이 6%나 오르며 1온스당 1400달러를 넘어서며 다시 사상 최고가 행진을 시작했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물 금값 선물은 1온스당 1403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금 현물은 장중 가격이 1410달러까지 올라갔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이번 양적완화 강행으로 달러 약세가 유도돼 환율시장을 교란하고, 값싼 달러 자금이 디른 나라들로 흘러가 자산거품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 이후 달러 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금값이 온스당 1400달러를 넘어섰다. ⓒ로이터=뉴시스
크루그먼이 버냉키 동정하는 이유

이에 대해 벤 버냉키 Fed 의장은 디플레이션 위협이 상존하는 미국 경제 상황을 거론하며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양적완화 조치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부채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도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정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 등 저명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동반되지 않은 양적완화 조치는 부작용만 초래하고, 실물경제를 자극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실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만일 버냉키의 미국 경제진단도 맞고, 스티글리츠 교수 등의 비판도 맞다면 미국은 일본식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그런 위험이 높아질 수록 버냉키는 더 큰 규모의 양적완화도 불사하겠다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프린스턴 경제학과 교수 시절 일본의 디플레이션 과정을 연구하며 '디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명성을 쌓은 버냉키는 일단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얼마나 헤어나오기 힘든지 알고 있는 학자로 꼽힌다.

하지만 정작 미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디플레이션 위협을 양적완화로 극복하려면, 미국의 경제규모상 지금보다 몇 배의 '충격적인 규모'를 쏟아붓는 방식이 아니라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며,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득세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양적완화'가 실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버냉키는 대공황 때 Fed가 충분한 통화를 공급하지 않아 대공황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또 그렇게 하고 있다"며 미국이 일본식 디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소신을 펴지 못하는 버냉키의 처지를 동정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버냉키가 누구보다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그 위협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정통한 학자이자 관료라는 점은 늘 인정해 왔다.

두 학자가 '살아있는 디플레이션 표본'으로 깊이 연구해온 일본 경제는, 정책당국자라면 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디플레이션을 피하고 싶어 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페섹 "일본 디플레이션, 아주 오래 지속될 것"

특히 일본 경제에 정통한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담당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일본에서 디플레이션이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해 충격을 주고 있다.

예전부터 그는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에 맞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최근 일본의 소비 행태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 소감을 바탕으로 한층 더 심한 비관론을 내놓은 것이다.

페섹에 따르면, 과거에는 최신 유행 상품이나 세계적인 명품에 수십만~수백만원을 꺼리낌없이 쓰던 일본인들이 지금은 대형할인점에 몰리고, 술도 미국식 대중술집 체인점의 맥주로 해결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 할인점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현상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면서 "일본의 가격 하락 현상이 경기순환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본의 소비 형태가 가격의 바닥을 향한 경주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페섹은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의 중앙은행 뱅크오브재팬(BOJ)이 아무리 많은 엔화를 찍어내도 디플레이션은 심화된다"면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뢰 회복인데, 일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BOJ는 오는 11일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일단 1500억엔(18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할 예정이다. 지난달 5조엔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3조5000억엔 규모의 국채를 매입할 것이라는 '일본판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실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BOJ 내부보고서조차 이런 규모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페섹에 따르면, 일본의 기업들은 다시 성장할 것이라고 믿지 않아 투자와 고용을 회피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도 앞날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극복이 신뢰의 문제에 달려있다면,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사태가 장기화되는 동안 일본의 정치판도 동맥경화에 걸린 상태다. 현재 일본은 최고지도자인 총리가 평균 8개월마다 바뀌고 있다.

페섹은 디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한 관건은 일본 사람들이 저축으로 쌓아둔 15조 달러를 소비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향후 몇 년 동안 디플레이션이 극복되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상황에서는 도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프레카리아트 양산하는 암물한 경제

특히 페섹은 일본에서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미래가 불안해 돈을 쓰기보다 저축하려고 애를 쓰는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프레카리아트는 원래 '불안정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프레카리(Precari)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진 이탈리아의 저소득층을 폭넓게 지칭한 개념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프레카리아트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에 이른다. 이들의 특징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자기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는 의욕과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점이다. ILO는 한국도 높은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을 근거로 프레카리아트가 급증하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들은 미래를 설계할 의욕을 상실해 전통적인 3S(스포츠,스크린,섹스)정책의 대상이자 소모적인 인터넷 소비자로 전락하기 쉽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대표로서 프레카리아트 문제를 부각시켜온 가이 스탠딩 영국 배스대 교수는 특히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나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이들이 '새로운 위험 계급'(New Dangerous Class)'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프레카리아트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심하기 때문에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 경제적 약자 등에 대해 적대적이기 쉽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파시즘 같은 극단적 정치체제를 선동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가이 스탠딩 교수는 우려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사회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이 가져오는 가장 골치아픈 부작용은 출산율 감소다. 일본의 출산율은 1.2명이 조금 넘는다.

문제는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을 뒤따르는 모양새를 보여온 한국이다. 이미 출산율은 일본보다 적을 정도로 악성이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극심한 자산거품 뒤에 왔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신흥시장에는 자산거품 경계경보가 발령돼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을 걱정이 앞서지만, 글로벌 디플레이션 위협에 대한 경고는 지속되고 있다.

한국도 어느 순간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일본의 경제상황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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